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집현전 타파를 외친 가리온 이제 세종의 편은 누구?

Shain 2011. 11. 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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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는 세종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중심인물이자 주체인 것은 맞지만 왕자와 공주들,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 또 이름이 적히지 않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그 조력 세력의 일부를 소이(신세경)을 비롯한 목야(신소율) 등의 궁녀로 설정했습니다. 또 실존인물인 집현전 정인지(박혁권), 가상 인물 무휼(조진웅) 등도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를 아는 사람들로 설정했습니다. 학사들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개발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덟 명 뿐이라 언급하기도 했었지요.

반전 아닌 반전, 너무도 정기준 같았지만 너무도 정기준 같지 않았던 가리온(윤제문)의 정체가 3대 밀본 본원으로 드러나자 우의정 이신적(안석환)은 기겁하며 놀랍니다. 도담댁(송옥숙)이 자신과 상의 한마디 없이 위원령을 내린 걸 불쾌하게 여기던 직제학 심종수(한상진)도 의외의 인물이 정기준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맙니다. 도성 내 유일한 백정으로 늘 조정 가까이에 있었고 이신적도 형사반장 못지 않은 조말생(이재용)도 정기준의 얼굴을 알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공손한 가리온이 정기준 임을 몰라봤습니다.

가리온에게 중요한 밀명을 내리려던 세종, 이제 '후음'은 누가 상형하나

해맑게 웃으며 가리온을 찾아가는 세종(한석규)은 더욱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기준이 아무리 어린 시절 치욕을 준 장본인이고 살인까지 저지르며 '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조롱하는 사이코패스같은 인물이라지만 드러나지 않고 숨죽이고 살 때는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의정을 비롯한 관료들과 사대부들이 그의 조직원입니다. 암살자 윤평(이수혁) 뿐만 아니라 정무군이라는 조직까지 정기준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세종은 밀명을 아무에게도 폭로하지 않은 가리온을 신임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자신을 비웃던 어린 정기준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성삼문(현우)과 박팽년(김기범)에게 새로 만든 글자의 평가를 들으려 하던 세종은 칭찬 한마디 듣지 못하고 냉정하고 날카로운 젊은 학자들에게 '후음(喉音, 목구멍소리)'를 상형하지 못했음을 지적받습니다. 이렇게 그를 주변에서 격려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세종을 힘들게 하는 적, 똘복 강채윤(장혁)과 가리온 정기준이 이 외로운 제왕을 무너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세종은 사람좋은 얼굴로 고기를 썰던 가리온에게 '후음'의 상형 문제를 논의하려 했습니다. 가리온은 야밤에 자신을 만나러 온 세종에게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겠지요. 정기준이 속으로 세종을 조롱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밀본지서를 가진 강채윤, 똘복을 찾고 있는 밀본

한글 반포를 앞둔 시점이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시대적 배경은 1443년경일 것입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1418년쯤 상왕 태종(백윤식)이 정도광(전노민)과 윤서진(서범식)을 죽였으니 가리온은 거의 24년 간 숨어지내온 셈입니다. 어린 세종과 입씨름을 하던 그때에는 쫓겨다녔기 때문에 반촌에 있었다지만 아버지 정도광이 죽은 시점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정확치 않습니다. 밀본의 씨를 말리려는 조말생과 태종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몰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묘사중인 밀본의 체계를 어느 조직을 본떴는지는 모르지만, 얇고 검은 천을 쓰고 본원을 모신채 회합을 가지는 그 모습은 흡사 특수 목적을 띈 비밀 결사대 같기도 하고 의식을 치르는 종교단체같기도 합니다. 본원을 '알현'하라는 표현까지 쓰다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 비밀 결사조직이기 때문에 '밀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도전의 후계라는 증명, 밀본지서인지도 모릅니다. 종교단체에서도 교주가 중요하고 종교의 창시자를 중시하듯 일단 회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밀본지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짐작이 되더군요.

강채윤에게는 밀본지서와 대등한 무게를 지닌 유서가 든 복주머니

강채윤도 자신이 갖고 있던 밀본지서가 어떤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모르고 살았듯 가리온과 밀본도 똘복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을 겁니다. 밀본이 '똘복'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유서에 그의 이름이 쓰여 있거나 똘복의 어릴적 동무인 소이를 통해 알아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이는 똘복에게 준 '복(福)'자가 쓰인 주머니를 하나 더 만들어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을 때 마다 가리온을 통해 수면 성분이 든 약재를 얻어가곤 했습니다. 또 소이는 어쩐 일인지 가리온을 신뢰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가리온은 밀본이 뒤를 쫓는 똘복이 강채윤인 것을 알고 있을까요? 최소한 주자소에서 화재가 났을 때 윤평이 자신의 얼굴을 본 소이를 살려둔 이유는 이제 납득이 될 것도 같습니다. 가리온을 통해 소이와 모종의 친분이 있었음을 들었을테고 소이가 다시 만들어 지닌 복주머니가 어릴 때 정기준이 죽어가던 윤서진에게 받은 복주머니와 같은 모양임을 가리온이 알아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소이를 그 화재 현장에서 죽이는 것 보다 살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사철의 자작극 때문에 드러난 정기준, 백정을 나무라던 조말생은 눈치챌 것인가

조말생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가리온은 윤평(이수혁)이 도망가게 해주겠다고 나섰음에도 생각이 바뀌었다며 얻어맞으며 잡혀갑니다. 너무도 초라하고 가엽게 배후를 추궁당하는 그의 모습은 천한 사람들의 삶에 원한이 많은 채윤의 마음도 움직였고 가리온을 믿고 일을 맡길까 고민하던 세종의 마음도 움직였습니다. 가리온이 일부러 잡혀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세종의 진영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만은 사실인 것입니다. 발음기관을 본떠 문자를 만들다 '후음'의 상형에서 막힌 세종이 가리온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습니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 주인공을 두고 '일방적인 편들기'를 한다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지금 세종은 큰 뜻을 품고 한글을 반포하려 합니다. 남몰래 문자를 만들어 성삼문, 박팽년 두 학자의 검증을 받고 자신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억울한 백성 소이와 똘복을 판관으로 둔 그의 앞길은 점점 더 험난해지기만 합니다. 도무지 세종의 편을 들어 가리온의 밀본과 맞설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시청자들은 알 수 없는 도담댁, 이방지(우현), 무휼, 정도전의 연결고리가 세종을 더욱 옥죌 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세종의 판관들은 언제쯤 세종의 편이 되어줄 것인가

예고편을 보니 이방지는 정도전의 호위무사로 밀본지서를 빼돌렸답니다. 그런 그가 강채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도담댁은 신분이 낮은 사람임에도 어쩐지 정도전의 일이라면 목숨을 걸 정도로 완벽을 추구합니다. 무휼은 분명 도담댁도 알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무휼의 이름을 그리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종에게 죽었던 세종의 외숙부 이름도 민무휼이고 '이방지' 역시 태종 이방원과 이름이 비슷한데(보통은 그런 경우 항렬이 같지요) 왜 그렇게까지 설정해둔 것인지 그 부분도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24부작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가리온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드라마의 미스터리는 제 2라운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대로 밀본을 상대하기엔 세종의 힘이 너무도 미약합니다. 이방지의 제자 강채윤은 가리온과 밀본을 두고 선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명나라의 스파이를 경계하는, 무술의 달인 심종수에게 반전이 숨어있을 것도 같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누군가 세종의 편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세종의 열세일 수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날카롭고 지적인 천재, 유학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던 정기준이 장성수(류승수)의 시신에 마음 아파하는 왕을 보며 비웃는 사이코가 된 것은 좀 아쉽지만 두 축의 대결은 볼만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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