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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사람은 다루는 일이기에 때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살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의사의 손길에 씻은듯이 병이 낫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질병을 고치는 그들이 경이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은 질병이 낫지 않아도 고통을 함께 하는 직업이 의사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많은 슬픔을 목격하는 사람 역시 의사들입니다. 비록 환자와 같이 울어주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를 봐야한다는 건 그들에게도 힘겨운 일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허준'이나 '대장금' 또는 '종합병원'같은 의사들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었나 봅니다. 물론 '허준'이나 '대장금'은 사극 포맷이라 '의학'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사람의 위대한 의료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을 이해하고 참고 견디고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이었지만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가 되어 다시 태어난 인물들, '허준'의 스승으로 연출된 '유의태'나 '대장금'의 스승인 '장덕'같은 사람들은 의사의 사명이 무엇인지 주인공들이게 깨닫게 만드는 인물들입니다.

'심야병원'에서 근무하는 불안한 눈빛의 허준과 순수한 의사 홍나경.

김여진이 연기한 '대장금'의 '장덕'은 제주 의녀 출신으로 조선 성종 때의 사람입니다. 치통에 신통한 재주가 있어 널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극중에서는 제주 관아에서 놀라운 의술을 펼치는 괴짜 의녀로 등장하는데 장금에게 들려준 그녀의 인생이 기막힙니다. 제주도에서 종종 들러 치료해주곤 하는 중병 환자가 본래 장덕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장덕의 집안을 망하게 하고 자신을 노비로 만든 불구대천의 원수를 죽일 것이냐 살릴 것이냐를 두고 장덕은 고민합니다. 그리고 복수를 꿈꾸는 장금에게도 그 문제를 고민해보라 이야기하지요.

이 드라마 '심야병원'에서 주인공 이름이 허준(윤태영)이길래 명의라는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싶어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옛날 사람이든 현대인이든 악인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두고 고민해봤을 법 합니다. 병원이 딱히 없었던 과거에는 그런 복수의 유혹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극인 이 드라마 '심야병원'의 무대도 무법이 가능한, 의사가 고의로 의료사고를 낼 수 있는 그런 공간입니다. 조폭 두목이 들키지 않고 몰래 간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 '심야병원'이란 특수한 장소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의술로 복수할 것이냐 사람을 살릴 것이냐. 장덕과 장금의 선택.

아무리 조폭 두목, 동방파 보스 구동만(최정우)이 날고 기는 암흑가의 황제라 해도 일단 수술대 위에 누으면 칼자루 잡은 사람은 허준이 됩니다. 힘없는 관비 장덕이 의녀이기에 원수의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듯 허준은 자신의 원수일 수도 있는 구동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그러나 구동만이 허준의 원수인지 아닌지 확실히 답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인물을 의심할 수 있고 모든 인물이 마음의 비밀을 감춘 채 서로 경계하며 미스터리를 추적할 뿐입니다.

구동만이 자신의 아내 한재희(왕빛나)를 죽인 원수라면 허준은 그를 살릴 것인가. 구동만이 아내를 죽인 원수가 아니라도 사회의 암적 존재인 조폭 두목을 살려둬야 하나. 아직은 착하고 인정많은 의사인 홍나경(류현경)처럼 그 누구라도 병원에 들어오면 살려야 한다고 믿는, 그런 순수한 의사가 될 수 없는 허준은 오로지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이 왜 일어난 것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아내를 죽인 그 남자, 허준에게 송곳으로 손을 찔린 그 남자를 찾아 왜 아내를 죽여야만 했는지 묻고 싶을 뿐입니다.

허준도 모르는 동방파 내부의 문제들, 최광국과 구동만.

전체 10부작인 이 드라마는 주로 가족 드라마나 멜로물로 채워져 있는 주말극 중 유일하게 어두운 느낌을 주는 추리극이기도 합니다. 간이식 수술을 받고 살고 싶지만 서열 다툼과 원한 때문에 비밀리에 수술을 하고 싶다는 구동만은 아내를 주인 범인을 알려주겠다며 허준을 불러 심야병원을 개원하게 합니다. 정상적인 병원처럼 보이기 위해 밤에만 영업하는 그 병원에서 이식 준비를 합니다. 동방파의 넘버투인 최광국(김희원)은 겉으로는 구동만에게 쓸개라도 내어줄 듯 정성을 다하지만 도무지 무슨 욕심으로 허준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동만을 아버지처럼 여기는 윤상호(유연석)는 자신과 함께 사고를 당해 죽은 친구 대웅의 기억을 잊지 않고 삽니다. 윤상호는 복잡한 동방파 내부 사정같은 건 잘 모르지만 홍나경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 병원에서 허준을 돕는 간호원 이광미(배슬기)는 대웅의 친누나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을 숨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괴한의 습격을 받고 죽어야 했던 아내의 기억 때문에 범인으로 몰려 의사일도 할 수 없었고 손이 떨려 이제는 의료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할 지도 모르는 허준.

권대웅의 누나 이광미, 대웅의 친구 윤상호.

범인을 찾기 위해 격투기장을 떠돌던 그는 국내 최고의 이식전문 의사였다지만 이제는 의사라기 보다 싸움꾼에 광인처럼 보일 뿐입니다. 사람은 무조건 살리고 봐야 되지 않느냐고 묻는 홍나경을 볼 때 마다 의사로서의 자존심과 사명이 떠오르지만 일단 아픈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잊고 의사가 될 것이냐 의사로서의 책임을 버릴 것이냐. 이제 곧 복수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텐데 그 순간 허준은 광인이 될 것인지 의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합니다.

매 에피소드 마다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이 드라마는 매주 토요일밤 12시 20분에 방영됩니다. 불법과 의심이 일상인 '심야병원'에서, 대혼란의 시기, 어두운 밤을 겪고 있는 한 의사가 다시 의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아니면 광기에 젖어 인생을 망가트리게 될 지 궁금해지는 이야기. 예전엔 '의사'가 주인공들인 드라마는 참 아름답고 그랬는데 '의사'도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이겠죠. 다른 드라마 같으면 어서 빨리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을텐데 연기자 윤태영의 눈빛이 불안해서 그런지 오히려 범인이 밝혀지면 불쌍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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