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실존인물 중심의 신선한 출발 정통사극 기대작 되나

Shain 2012. 2. 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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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극은 대부분 창작된 내용을 중심으로 방영됩니다. '정통사극'을 내세우며 방영된 KBS의 '근초고왕'이나 '광개토태왕'은 드라마 내용의 반 이상이 창작된 내용으로 역사상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드라마로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정통사극을 좋아하고 사서 속 내용을 재해석하길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아쉬운 감정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무신(武神)'은 놀랍게도 한 두명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사서에 기록된 사람들이더군요.

최근 몇년동안 제작된 '사극'들 중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사서에 따라 제작된 드라마가 몇편이나 있었을까요. '화랑세기'라는, 위작 논란이 있는 사서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선덕여왕(2009)'은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했으되 나머지 내용은 모두 창작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MBC에서 만나던 일명 '이병훈식 사극'은, 그러니까 '동이(2010)', '허준(1999)'같은 드라마는 주인공만 실존인물이지 나머지 내용은 모두 허구입니다. 오죽하면 많은 시청자들이 '사극' 속 역사와 실제 역사를 구분해달라 요청했을까요.

'무상'이란 법명으로 절에서 지내는 김준과 수법, 월아, 김윤후.

말 그대로 실존인물의 기록을 드라마로 옮기는게 참신하고 독특한 시도가 되버린 셈입니다. 드라마 '무신'은 김준이 최씨 무신정권에서 인정받고 후에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묘사할 듯합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창작된 부분은 있습니다. 바로 김준의 '무명시절' 이야기입니다. '무신'은 주인공 김준(김주혁)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월아(홍아름)와 김준을 거둬준 수법스님(강신일)은 김준의 어린시절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한 가상인물인듯합니다.

거의 모든 주인공이 남성이고 또 무신정권답게 강인한 남성들 일색인데 유일한 여주인공 송이는 과연 실존인물일까요. 최우(정보석)의 딸, 최씨 역시 기록된 인물입니다. 최충헌(주현)의 아들인 최우(정보석), 그리고 딸 최씨(송이, 김규리)와 사위 김약선(이주현)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최씨(송이)는 고려 원종의 외할머니이지만 최우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난 여성이고 드라마에서는 최씨가 남편 몰래 사통했다는 종을 아무래도 김준으로 설정할 듯합니다. 김약선, 송이, 김준의 관계가 주요 러브라인이 될 듯하네요.



화려한 출발에도 논란의 불씨는 남아

물론 이런 신선한 출발에도 논란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한 여러 곳에 무신의 '역사 왜곡' 문제를 거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준의 연인으로 나오는 월아의 웨이브 머리, 막부와 합하라는 표현의 적절성 문제, 앵무새, 소주의 전래시기 등이 주요 논란거리가 된 것같네요.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시기(1217)는 최충헌의 무신정권이 최우에게 넘어가는 시기로 거란의 침략은 받았지만 아직 몽골의 침략은 받기 전입니다. 특히 '막부'라는 용어는 방영전부터 수차례 지적받았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막부(幕府)'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일본의 쇼군(將軍)입니다. 막부라는 단어도 원래 예전 중국에서 전쟁을 지휘하러 나간 장군들이 야외에 천막을 치고 작전 지휘를 했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고 장군 역시 군사를 지휘하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막부와 쇼군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색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막부 자체가 중국의 용어라는 건 맞는 지식이라 쳐도 '막부'에 대한 넓게 퍼진 인식이 있으니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만한 표현이긴 합니다.

소주를 마시며 장기를 두는 이규보와 최충헌.

'합하'라는 표현은 주군을 호칭하는 '전하' 또는 '폐하'와 달리 '대원군'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을 호칭할 때 쓰던 말입니다. 우리 나라 경우엔 '대원군'이 대표적인 '합하'이며 주군이 왕 즉 '전하'라고 불리는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부 네티즌은 '영공저하(令公邸下)'란 표현이 사서에 분명히 적혀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선 사극에 익숙한 우리의 상식으로 '저하'는 세자 등을 부를 때 쓰는 말인데 이규보(극중에서는 천호진)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등에서 최충헌을 '영공저하'로 호칭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려시대는 왕과 왕친에 대한 호칭이 조선과 달라 성상폐하, 태자전하, 영공전하라는 표현을 썼다는 그들의 주장이 상당히 일리있습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설정 보다 사서를 기준으로 반박한 네티즌들의 분석이 일리가 있는 듯한데 굳이 작가가 그렇게 한단계 '낮게' 설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소주'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몽골 침략 이후라는 주장도 있지만 '안동소주 박물관'에서는 증류주가 전래된 건 물자교류가 활발하던 신라시기였고 안동소주의 기원도 신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앵무새도 신라 때 이미 들어오지 않았냐는 주장이죠.

최충헌의 아들 최우와 최우의 딸 송이.

또 월아의 웨이브머리는 '남방계'들이 흔히 보이던 곱슬머리라는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본래 북방계는 직모에 외까풀이 특징이지만 남방계는 쌍꺼풀에 곱슬머리라고 하죠. 서역인 등과 교류가 활발하던게 이미 신라, 백제 때이니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몽골인들이 침략한 이후에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는 말도 맞는 말인 거 같긴 한데 양쪽 모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겠죠. 사실 제 경우에 그런 논란들 보다 훨씬 불편했던게 사하촌(寺下村)을 점령하던 군인들입니다.

고려시대에 승려들이 승군을 조직해 거란과 몽고의 침략에 맞섰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고 극중 수법 스님은 사하촌에 불쌍한 백성들을 모아 돌봐주는 주지 스님입니다. 노예출신이던 김준을 거두어준 스님이기도 하고 후에 몽고 침략에 맞선 승병으로 유명한 김윤후(박해수)가 김준과 함께 그 절에 있습니다. 승병들의 반란으로 위기에 처한 수법 스님이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려오자 잔인하게 살해하는 군인들 모습이 참 보기 껄끄럽더군요. 최향(정성모)와 그 부하들의 고문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인한 고려의 현실, 수기대사와 김준.

시청자들은 조선 시대 역사에는 익숙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려 역사는 낯설게 생각합니다. 무신 정권에 대해서도 그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죠. 최양백(박상민)이나 이공주(박상욱)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최충헌이나 최우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또는 수기대사(오영수)가 어떤 과정으로 팔만대장경(첫장면에 수기대사님이 수도 중에 눈뜨는 장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을 만들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사서 속에서만 있던 그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모습은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저로서는 불교의 교리 역시 생경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살생을 금지하고 사람을 구하는 그들이 침략을 대비해 칼을 들고 무술을 익히는 모습이라던가 끔찍한 고문을 견디면서까지 잔인한 정권에 반기를 드는 모습이 너무도 서글프고 안타깝고 그렇더군요. 하지만 논란도 많고 화제거리도 많은 드라마 '무신', 연기자들 역시 훌룡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궁금했던 고려 시대의 모습을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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