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몽고 침략을 앞두고 격구 시합을 질질 끄는 이유

Shain 2012. 2. 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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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물 보다는 절이 편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은 하면서 제대로 불가의 가르침을 공부해본 적이 없습니다. 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승려들은 채식주의자에 가부좌(跏趺坐) 수련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고 어쩐지 범인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란 막연한 느낌을 줍니다. 소림사를 비롯한 각종 영화에 등장한 '도사'들의 모습이 왜곡된 편견을 심어준 것도 사실입니다. 한때 우리 나라의 국교가 불교였고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불교 교리를 따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개국공신들과 사대부들은 유교이념에 입각해 불교를 탄압했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불교는 왕실과 민간의 대표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승려들을 많이 보기 힘들어졌고 불교의 이론이나 논리도 자주 접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만큼 드라마 '무신' 속에 등장하는 승려들의 모습이 낯선 것도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뜻을 입에 담던 그들이 사찰에서 수련하는 대신 칼을 들어야 했던 당시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살생'을 금하는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했는지도 궁금하구요.

격구시합에서 살아남은 김준. 살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신권력의 정점에 있는 노련한 최충헌(주현)과 대장경을 간행하는 승통 수기스님(오영수)은 그런 의미에서 대립각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승려들이 거란과의 전쟁을 비롯한 많은 침략에 동원되었어도 그들이 칼을 잡되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대장경을 발간하며 나라의 안전과 안녕을 빕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장악하고 오랜 세월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는 무신들에게 힘은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이지만 힘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승려로 자란 주인공 김준(김주혁)이 어떤 마음으로 칼을 잡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연상시킨다는 문제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무신'의 격구 시합은 김준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추밀원부사 최우(정보석)의 구령 아래 구장을 뛰는 노예들, 수법(강신일)은 격구를 보며 김준이 아귀가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던 예전의 승려 김준이었다면 그리 반응했을 것입니다. 승려가 아닌 노예로서 살게 되고 시신의 옷가지를 챙겨서라도 살아남길 바라며 격구시합에 출전해 노예를 뛰어넘는 삶을 꿈꾸는 김준. 몽고 침략이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김준의 격구시합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김준은 무엇을 위해 무신(武臣)이 되는가

남성사극 그것도 결투와 정쟁을 일삼는 무신들의 세계를 그리는 탓인지 극중 최충헌은 나름대로 줏대있고 생각이 바른 인물로 표현되는 듯합니다. 늙어 판단력이 흐리고 행동력이 뒤떨어졌을 뿐 그의 권력이 나라를 위한 충정이었다고 설정된 것같습니다. 강력하긴 했으나 올바른 정권이라고 평가하긴 힘든 무신들. 몽고의 침략도 있었지만 무신정권의 타락과 왕권의 약화는 두고두고 고려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정보석이 연기했던 '신돈(2005)'의 공민왕은 뒤늦게 개혁을 통해 새로운 고려로 거듭나보려 해도 국내외의 정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신정권에서 가장 오래 권력을 유지한 인물이 바로 최우(정보석)입니다. 최충헌의 집권 시기가 23년인데 반해 최우는 30년간 권력자로 군림하며 몽고 침략에 맞섰고 그 권력을 아들 최항(백도빈)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지키려 애쓴 것은 확실하나 그들의 권력 자체가 쿠데타로 인해 무너질 수 있는 속성 즉 강자가 약자를 이기면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성격의 권력이라 늘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세습되던 최씨들의 집권기는 안정적이었지만 그 뒤로는 내분으로 약화됩니다.

송이에게 애원해 기어코 격구 시합에 다시 나가는 김준.

최우의 딸 송이(김규리) 앞에 엎드린 김준은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한번 격구에 출전할 수 있게 해달라 조릅니다. 이미 한번의 시합에서 살아났고 가병이 될 기회까지 얻었으니 남들이 원하는 것은 가진 셈인데 무엇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격구장으로 뛰어드는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예 출신 소군장 최양백(박상민)은 그런 김준을 두고 종자가 아예 다른 놈이라 하지만 홍군 격구시합을 책임진 송길유(정호빈)은 김준의 의지를 꺾으려 합니다. 월아(홍아름)도 눈물로 출전을 말려보나 김준은 곧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이를 악물고 출전을 결심합니다.

김준은 과연 꼭 출전하고 말겠다는 생각에 송이의 오해를 내버려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집착이 너무 과해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던 걸까요. 송이도 김준의 동료들도 김준이 '사내답게' 살고 싶다고 한 말을 송이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하고 맙니다. 안 그래도 시합 출전 중에 월아에게 손을 흔드는 김준을 보고 착각했던 송이는 남다른 그의 성격에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노예와도 다르고 송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기존의 남자들과는 다른 김준. 확실히 눈에 띄는 '물건'입니다.

죽음의 위기를 앞두고 다시 한번 환희를 경험하는 김준.

승려가 아닌 노예로 살겠다며 격구장에 나선 김준은 이제 살기 위해 뛰는 노예가 아닌 이기기 위해서 뛰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진아(眞我)의 경지에 이르는 경험. 여러 날 동안 십만배를 하며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그 경지를 느꼈을 때 부처를 보았는지 기쁨을 느꼈는지 알 수 없다는 그에게 또다시 그런 최고의 환희가 찾아옵니다. 저 상태로는 어떤 인간이라도 움직일 수 없고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관중들은 그의 에너지에 감탄하고 또 감탄합니다.

다리에 부상을 입어 다 죽어가면서도 시합에 나가겠다는 김준의 집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송이는 어의를 불러 김준을 치료하게 하고 최고의 탕약까지 내려주었으며 송길유는 최우에게 부탁해 가볍고 단단한 장시(杖匙, 격구채)를 구해 줍니다. 최양백은 영리하고 빠른 말을 김준에게 내려줍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했었는데 김준은 그들의 불안한 예감을 씻어내고 한번 더 그들에게 경이로운 시합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살기위한 노예'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 뛰는 무인이 되었습니다.

몽고 침략을 이겨내는 최우와 몽고의 살리타이.

살생을 원치 않던 김준이 한단계씩 발전하여 무신(武神)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한발 앞으로 다가온 몽고와의 전쟁에서 그가 망설임없이 선봉에 설 것임을 예감하게 합니다. 거란족을 물리쳐주겠다는 구실로 몽고가 나타난 것은 실제로는 1216년경입니다. 극중에서는 승려들이 반란을 일으킨 시점인 1217년이지만 본격적으로 고려를 침입한 것은 1232년입니다. 이때는 거란 복속을 핑계로 고려에 원군과 식량을 요구하고 형제맹약을 빌미로 간섭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살리타이를 죽였다는 승려 김윤후(박해수)와 김준이 함께 활약할 시기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송이의 캐릭터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여인들은 끼어들 틈이 없는 무신들의 세계에서 최우의 부인 정씨(김서라)는 병풍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어색한 듯 과장된 여성스러움으로 본성을 감춘 송이는 칼을 들지 못했을 뿐 다른 무장들과 똑같은 야망을 추구합니다. 그녀는 아직 김준 보다 아버지 최우가 시합에서 이겨서 최향(정성모)을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더 중요시합니다. 비로소 무장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될 김준에게 송이는 어떤 역할을 바라게 될까요. 흔한 사랑타령은 아닐 겉 같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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