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타락한 재벌 후계자의 대명사 박동명과 칠공자

Shain 2012. 2. 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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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 업체사장이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폭행하고 매값이라며 돈을 건냈단 이야기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재벌은 폭행으로 물의를 빚어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체면도 인륜도 모르는 그들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지만 씁쓸하게도 이런 일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특히 극중 등장한 '칠공자' 사건은 언론에 공개되어 널리 알려진 사건이고 80, 90년대까지도 신칠공자라는 재벌 후계자 모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의 횡포도 무서웠지만 돈가진 자들도 무서웠던 그 시대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 조연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정혜(남상미)는 최성원(이세창)과 함께 '여름여자'를 찍으려 합니다. 1977년 대히트한 장미희의 '겨울여자'를 패러디한 제목인듯합니다(여주인공도 배화). 조해일의 신문연재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영화는 첫사랑 연인이 자살하고 그 뒤에 사귀던 남자도 죽어 상처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여러 남자를 '만난다'는 내용 때문에 성도덕성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죠. '별들의 고향(1974)'과 더불어 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중의 한편입니다.

요정에서 마주친 네 사람, 분노하는 장철환.


'겨울여자'는 77년 영화지만 유채영(손담비)이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고실장을 물먹인 걸 보니 75년 칠공자 사건이 터진 모양입니다. 75년엔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많았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때였고 유신헌법 찬반투표, 인혁당 사건으로 8명 사형(대표적 공안 사건으로 21세기가 되서야 전원 무죄가 밝혀졌습니다), 베트남 전쟁 종결, 17명을 죽인 살인마 김대두 검거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연예계는 '칠공자 사건' 때문에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시선을 받게 되었고 정치권은 연예스캔들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한해이기도 합니다.

장철환(전광렬)은 강기태(안재욱)을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만 해도 사진을 찍고 인화하던 비용이 상당히 비싸던 시기인데 국가 예산으로 한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돈과 인력이 동원되는 모습은 기분을 착찹하게 만들지요. 양태성(김희원)이 강기태를 만났단 사실을 알고 곧장 협박전화를 하는 조명국(이종원)의 모습은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오싹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일부 증언에 의하면 80, 90년대까지만 해도 '프락치'라는 사람들이 학생들이나 일반인을 추적하곤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칠공자 사건'은 도대체 어떤 과정에서 터져나온 걸까요.



부도덕한 부류로 낙인찍힌 연예인들

75년, 소위 '칠공자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던 루머가 실제로 확인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재벌 후계자들이 재산을 빼돌려 사치스런 물품을 자랑하는가 하면 화려한 향락을 즐기고 유명 연예인들을 데리고 다니며 문란한 생활을 즐겼다는 보도는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마약을 즐기며 부도덕한 일들을 자행했고 범법 행위도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갑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한겨울에 '어르신'의 총애를 받게 된 유채영이 재벌 후계자들의 비리를 폭로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건 여름이었고 공개된 내용은 대검특수부가 당시 31세이던 태광실업 대표 박동명을 구속 수사하면서 밝혀진 것들입니다. 그의 혐의는 26만 5000달러의 원자재를 해외로 밀반출한 것(당시 수출입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이었고 당시 박은 여배우와 동침하던 중 수사관에게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박동명 리스트'가 공개된 것이죠. 100여명의 연예인 이름이 적힌 그 명단에는 유명 여자연예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수입을 금지하던 외제 물건과 보석 등의 사치품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나중엔 해외 별장이나 외제차까지 들통났습니다.

유채영에게 살려달라 애원하는 칠공자 고실장, 깜짝 놀란 노상택.


시기는 한여름이었지만 사회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다 못해 춥기만하던 그 시절, 박동명은 신앙촌 박태선 장로가 설립한 시온그룹 후계자로 평소에도 유흥비에 수천달러를 탕진하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그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고 그의 행적을 공개합니다. 연예계도 발칵 뒤집혀 모 여배우는 연루된 사람도 아닌데 이름이 공개되어 명예훼손 소송을 벌였고 13명의 여배우들이 영화인협회에서 제명되는가 하면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연예인의 출연이 취소되고,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여배우도 있었습니다.

얼마전 남편과 이혼하고 '30년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이란 책을 발간한 펄시스터즈 배인순도 당시 연예인들과 재벌 후계자들의 에피소드를 일부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박동명과 함께 여자연예인들과 환락을 즐기고 여성 편력을 자랑하던 재벌 후계자들을 '칠공자'라고 불렀는데 엽기, 엽색이란 표현이 남발하는 당시 기사들은 지금 읽어봐도 화끈거릴 정도로 대단합니다. 박동명 이외의 나머지 6명의 명단을 공개하라 요청한 국회의원도 있었지만 그들의 명단은 루머처럼 떠돌 뿐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갖고 싶은 건 뭐든지 갖겠다는 유채영의 야망.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미세스 윤(엄수정)처럼 정치인들에게 신인 여배우들을 공급하듯 이들 칠공자에게 연예인들을 대주는 마담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극중에서는 노상택(안길강)이 고실장에게 유채영을 밀어넣는 것처럼 표현되었죠. 당시에는 한 업체 부인과 모 연예인의 간통 사건, 젋은 그룹회장과 동거하던 미성년 소녀가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 사건 등 연예인들 스캔들이 다수 폭로되었고 연예인들이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란 인식이 사회전체에 퍼져 나가게된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안 그래도 사회전반에 그들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는데 소문에 확신을 심어준 셈이죠.

반면 그들과 관련된 '칠공자'의 명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일부 연예인들의 이름이 공개되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일부는 잘못된 소문으로 평생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는데 그들을 괴롭힌 '돈가진자'들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들 '칠공자'의 일원이 재벌 총수가 된 지금도 폭행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고 칠공자의 아들들인 '신칠공자' 역시 같은 류의 행동을 벌이다 재벌가의 중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더러운 딴따라'로 낙인찍인 연예인들의 처지에 비하면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죠.

빛나라기획 창립기념식에 찾아온 장철환. 전운이 감돈다.


자신의 행적이 드러날까 걱정이 된 장철환, 중정 김부장(김병기)은 송미진(이휘향) 사장과 자신의 제의를 거절한 강기태에게 숨겨진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그 시대의 권력과 돈, 빛나라 기획이란 연예기획사를 설립하면서도 권력의 도움을 거절하는 강기태의 심정이 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디어 강기태는 쇼단 중심으로 운영되던 주먹구구식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체계적인 기획사 사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념자리에 노상택과 장철환, 조태수(김뢰하) 등을 모두 초대한 강기태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이제 겨우 빛나라 기획으로 연예계에 발걸음을 디딘 강기태, 신정구(성지루)와 작곡가 유성준(김용건)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과연 장철환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무시무시하면서도 경쾌한 그들의 다툼이 볼만할 걸 같습니다.

* 어제 극중 김부장이 바에서 듣던 음악은 Leonard Cohen의 Famous Blue Raincoat 입니다. 1971년에 발표된 노래네요. 파티장에서 나온 곡 Lady Marmalade는 물랑루즈 OST,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곡으로 유명하지만 1974년 Labelle란 그룹이 제일 먼저 발표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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