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정치인도 울고 가던 짧고 굵은 주먹들의 권력

Shain 2012. 2. 2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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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많은 배우들이 딴따라는 '힘'에 울고 웃는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예전처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시대는 지났어도 아무대나 들이미는 기획사의 힘은 무섭다고 합니다. 70년대 연예계를 묘사하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그 '힘'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술시중과 접대, 돈가진 재벌들의 추근거림, 연예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깡패들의 착취와 압력 등 연예계에서 감당해야할 파워는 너무도 무시무시했죠. 어제는 장철환(전광렬)이 지원하는 한빛회(육사 출신 비밀조직인 전두환의 하나회)까지 등장했습니다.

힘으로 질서를 잡을 수는 있어도 힘이 곧 정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중정 김부장(김병기)은 무식하고 거친 장철환에 비해 신사적이고 도리를 아는 인물처럼 행동했지만 그 역시 강기태(안재욱) 아버지의 죽음 보다 권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 남산 김부장일 뿐입니다. 건방지게 어르신의 힘을 믿고 김부장의 권력까지 넘보던 후배 장철환, 그런 장철환이 무릎꿇고 싹싹 빌자 자존심을 회복한 김부장은 강만식(전국환)의 죽음과 장철환은 아무 관련이 없다며 기태를 속입니다. 김부장은 차수혁(이필모)를 끄나풀로 두고 여전히 장철환을 무너트릴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김재욱 부장 앞에 무릎꿇은 장철환, 기태의 의문은 해결하지 못하고.

아무리 송미진(이휘향)이 올곧은 사업가라도 실리를 추구하는 빅토리아 영업장 사장이자 김부장의 힘을 누리는 측근이듯 누구에게나 중요한 게 힘입니다. 궁정동에 다녀온 이정혜(남상미)를 그리 싫어하는 강명희(신다은)도 자신은 의상실에서 유채영(손담비)의 덕을 봅니다. 유채영은 궁정동에 다녀온 후 자신을 괴롭히는 노상택(안길강)과 재벌 아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났습니다. 차수혁의 말처럼 강기태도 곧 연예계의 권력에 눈뜨게 될 것입니다.

영화계, 가요계, 방송계 등 손 안 뻗은 곳이 없었고 매니지먼트 사업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연예계의 대부이자 강기태의 모델이 된 그 사람이 몰락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연예계와 '주먹'들의 권력을 잘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유명 나이트에서 주류 사업권을 장악하고 연예계에 발을 걸치던 주먹들은 최성원(이세창), 마도로스박(박준규)같은 배우들과도 형님, 아우하며 안면을 트고 지냈지만 수틀리면 그들을 폭행으로 응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70년대 조폭 조양은과 김태촌은 연예인들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인, 연예인이 대거 참여한 조양은의 결혼식

실제 1995년 신문기사에는 정치인들(현직 대통령 포함) 10여명이 조양은의 결혼식에 축하 화환을 보냈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해당 정치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진상조사를 의뢰했지만 그 조사 결과가 실린 신문기사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외에도 이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출연중인 김XX를 비롯한 유명연예인들이 다수 결혼식에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5년 3월 감옥에서 출소해 6월 10일 출소한 이 '조폭 두목'의 결혼식에 왜 그리 많은 저명인사들의 관심이 쏠렸는지 현대인의 시선으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당시 결혼식에 참석한 2천여명의 하객들 중엔 굵직한 조폭 유명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경찰은 크고 작은 충돌이 있지 않을까 긴장하며 그의 결혼식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해 그의 일대기를 묘사한 영화, 조양은이 직접 주연한 '보스'가 제작되기도 하고 그의 결혼 생활은 연예잡지에도 소개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죠. 그의 이름은 여전히 무서운 조폭의 대명사입니다. 2011년에도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아 유명 트롯가수 최모씨를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며 협박한 혐의로 조사받았다고 합니다.

무리들을 이끌고 한지평에게 쳐들어간 조태수.

김태촌은 1990년경 검거되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의 검은돈을 받은 정치권 비호세력이 김태촌의 뒤를 봐주었다는 혐의가 불거졌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면 국회의원들이 김태촌 구명운동을 하기도 하고, 국회의원, 판검사, 조직폭력배의 술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야쿠자와 손잡았다는 혐의까지 발표되어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죠. 50, 60년대엔 정치깡패로 70년대엔 연예계 주변의 술장사와 보디가드로, 80년대엔 유명 유흥시설과 도박장의 운영주로 큰 돈을 모았던 그들의 그림자는 너무도 짙었던 것입니다.

정치권과 결탁한 조직폭력배들은 80년대까지도 정치깡패로 주먹을 휘두렀습니다. 그 유명한 '용팔이 사건'은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으로 당시 안기부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던 대표 정치깡패 사건이었습니다. 장철환과 조태수(김뢰하)가 언급하던 무서운 '구국의 결단'은 그런식으로 80, 90년대까지 시대를 어지럽게 만들곤 했었죠. 중간중간 검거되고 잡혀가는데도 그 생명이 끊기지 않은 것을 보면 처음부터 '주먹'의 질서를 인정한 것이 잘못 아니었나 싶습니다. 차수혁의 경고처럼 한지평(문태원)의 비호를 받게 된 기태도 그 유혹에서 자유롭지는 못하겠죠.

단원들을 인질로 잡은 조태수와 그에 맞서는 강기태.

조태수의 한양구락부 공격은 그 유명한 '샤보이호텔 습격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사람들은 '샤보이호텔' 사건으로 주먹질 위주의 조폭 싸움이 '회칼'이나 '식칼'같은 무기를 든 싸움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장철환이 주춤하는 동안 조명국(이종원)과 노상택은 잠시 몸을 움추리고 있지만 조태수는 빛나라기획 소속 연예인들을 괴롭히며 강기태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날을 세웁니다. 78년쯤 김태촌이 검거된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강기태의 이번 위기는 경찰에서 구해줄 지도 모르죠.

그러고 보면 장철환과 김부장의 권력도 한때이듯 이들 주먹의 권력, 즉 정치인도 울고 웃게 만들고 연예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던 그들의 권력도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세력 다툼에 사람이 다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것도 그렇고 연예인에게 협박 전화를 걸었다 창피를 당했다는 기사도 그렇고 '힘'의 속성은 잠깐 반짝하고 마는 찰라의 영광이라는 점은 어쩐지 보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짙고 그림자가 지면 언젠간 빛이 들 수 밖에 없다는 진리. 그 희망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겠죠.

이정혜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게 된 유채영, 또 사고친 이정자.

한편 최성원 감독의 '여름여자'를 찍고 있는 정혜는 유채영과 나름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1977)'와 안인숙 주연의 '별들의 고향(1974)'을 적절히 합친 듯한 대사와 설정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신성일, 남궁원, 윤일봉같은 당대의 최고 배우들까지 출연시키겠다는 부분도 코믹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남상미는 순수한 느낌의 경아 역을 하던 안인숙,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이화 역의 장미희를 묘하게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사 듣고 또 한참 웃었네요.

또 무대 위에 뛰어올라 이정자(이혜빈, 나르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매니저는 김추자에게 소주병 테러를 했던 그 사건(1971)이 떠오르더군요. 악단, 쇼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당시 연예인들이 '매니저' 관리 시대로 접어들고 당시엔 심심찮게 매니저와의 스캔들이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전문 매니지먼트와 기획사 중심 체계로 옮겨오기 전까진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조폭들과 깡패들의 전성시대, 과연 '빛나라기획' 사장 강기태는 조태수의 도발에서 어떻게 단원들을 구해낼까요.

바빠서 사랑할 시간도 없는 강기태. 이번 위기의 해결법은?


* 중정 김부장과 차수혁이 카페에서 만나던 장면에서 나온 팝은 1967년 발표된 A Whiter Shade Of Pale로  Procol Harum의 노래입니다.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이 불후의 명곡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일부를 멜로디로 삼았고 세션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라 보컬, 연주 실력도 탁월했지만 몽환적이고 그림같은 가사로 이 곡은 흔한 팝이 아닌 문학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애니 레녹스, 사라 브라이트만 등 유명가수들이 한번씩 녹음하는 곡으로도 유명하지요. 한글로 딱 알맞은 직역이나 의역이 없지만 '점점 더 창백해지네' 혹은 가사 내용을 일부 인용해 '점점 더 파리해지는 그녀의 얼굴'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팝 중 하나입니다.



* 이혜빈과 예전 매니저가 빅토리아 룸에서 만났을 때 나오던 팝은 'Born to Be Wild'로 1968년 발표된 Steppenwolf의 곡입니다. 본래 영화 '이지라이더(Easy Rider, 1969)'의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꽤 여러 '액션(?)' 영화에서 OST로 사용됩니다. 거친 목소리의 강렬한 보컬, 신나는 리듬과 비트 때문에 환영받던 곡 중 하나입니다. 히피 문화의 상징같은 곡이었다고도 하죠.

* 유채영, 이정혜, 최성원, 양태성이 만날 때 흐른 곡은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의 'Love Is Blue'입니다.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 1967) 앨범에 실린 곡이지요. 원곡은 1967년 발표된 Vicky Leandros의 L'amour Est Bleu로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아직도 이 대회는 열리고 있습니) 수상곡입니다. 꽤 여러 가수들이 노래를 다시 불렀지만 폴 모리아(Paul Mauriat)가 1968년 리메이크한 Love Is Blue가 제일 유명하지요. 폴 모리아는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작곡가이자 악단 단장으로 흔히 이지 리스닝 계열, 이른바 '경음악'이라 부르는 장르에서는 이 사람 만한 분이 없었죠.



* 기태와 정혜가 카페에서 만날 때 흐른 곡은 1975년 발표된 At Seventeen으로 Janis Ian의 곡입니다. 1951년생으로 1967년 데뷰한 재니스 이언은 직접 작사작곡한 데뷰곡 Society's Child란 노래는 당시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습니다. 17세의 어린 싱어송라이터가 감당하기엔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난 곡이었죠. 백인소녀와 흑인소년 간의 사랑과 그 주변의 시선을 이야기한 곡으로 그 노래 때문에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었다고합니다.

* 중정 김부장과 차수혁이 만날 때 흐른 곡은 Joe Cocker의 I Can Stand A Little Rain(1974)입니다. 조 카커가 등장하다니 드디어 나올 곡이 나왔군요. 영국 출신의 조 카커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블루 아이드 소울의 거장이라 일컬어집니다. 특유의 창법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지요.

* 홍수봉(손진영)이 부른 곡은 김정미의 '간다고 하지마오(1971)'로 신중현이 만든 노래 입니다. 77년 금지곡 파동 때문에 은퇴한 김정미는 사이키델릭 락 보컬리스트로 유명합니다.

* 그외에도 기타 경음악이 몇곡 나오는 거 같은데 잘 들리지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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