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여배우들이 가장 사랑하고 두려워하던 선데이서울

Shain 2012. 2. 28. 02:34
728x90
반응형
사람들의 가치관은 한꺼번에 바뀌거나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70년대 사람들은 전근대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가치관만 다른게 아니라 생활 수준도 천차만별이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전기를 쓸 수 있지만 우리 나라의 전기 보급이 완료된 건 80년대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TV는 커녕 전구도 제대로 쓰지 못한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자유분방한 강기태(안재욱)가 자신의 여동생 강명희(신다은)에게는 '이 기지배'라며 조신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처럼 이중적인 면이 있었죠.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다루는 시대의 특징 자체가 그렇게 양면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조선 시대의 왕처럼 여겨 일상생활에서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야하고 화끈한 쇼무대를 즐기면서도 그런 일에 종사하는 여성에겐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듯 사람들은 평판이라는 걸 중요시했습니다. 연예산업을 인정하고 그 화려한 쇼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그녀들을 천시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임에도 '스캔들'에 연루된 연예인들은 꽤 오래 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궁정동 여인들에 대한 막연한 멸시와 혐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기태가 보는 앞에서 열애설을 부인한 정혜. 딸을 찾는 유성준.

정착되지 않은 시대의 혼란은 그것 뿐 만이 아닙니다.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되어 68년부터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만 한국전쟁 중 헤어진 가족들이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80년대가 되어 '이산가족찾기' 캠페인으로 만날 수 있었던 가족도 많았으니까요. 극중 이정혜(남상미)는 한국전쟁 당시 부모와 헤어져 유명해지면 부모님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합니다. 문간방 작곡가 유성준(김용건)도 딸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양태성(김희원)은 고아원으로 사진을 들고 정혜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데도 정혜를 위한거라며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세 사람 사이에 얽힌 미스터리는 도대체 뭘까요. 여배우 정혜의 아버지가 유성준이라면 왜 성이 다른 걸까요. 그러고 보니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 하춘화는 어머니가 계모란 소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데뷰해 신동이라 평가받던 하춘화를 물심양면으로 돌봐준 아버지는 연예계에서도 유명했습니다. 작년에 구순을 맞은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도 생존중이고 어머니가 계모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 하춘화의 친어머니가 따로 있다는 소문은 어떻게 퍼져나가게 된 것일까요. 하춘화의 진짜 사연은 알 길 없지만 친어머니 관련 기사를 퍼트린 건 '선데이 서울'이란 잡지였습니다.



때로는 거짓말로 때로는 파파라치처럼

요즘은 연예인들의 이혼이나 이별같은 개인사는 '빅 스캔들' 축에 속하지 않습니다. 때로 여러 이성과 사귄다는 문제로 팬들의 지탄을 받는 연예인도 있으나 범법도 아닌 연애사 따위엔 신경쓰지 않는다는 팬들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에는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의 무게가 무서웠고 연예인들 특히 여자연예인들은 스캔들이 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습니다. 스캔들은 무서워도 연예인을 알릴 매체가 따로 없어 기자들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당시엔 '선데이 서울' 모델을 하지 않으면 연예인도 아니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선데이 서울'은 그런 여배우들에게 애증의 대상이었죠.

배우 유지인은 '선데이 서울'에 실렸던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유명해지려면 스캔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자에게 아버지에게 쫓겨난다며 거절했지만 기자는 '누굴 좋아한다'고 본문을 쓰고 마지막엔 '그것이 아니었다'라고 쓰면 된다고 하더랍니다. 결국 스캔들이 싫어서 유지인은 영화 그만둔다고 까지 했다는군요. 인기를 위해 일부러 찍었던 수영복 화보 만큼 신인배우들이 PR을 위해 거짓 소문을 내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혼, 남편, 욕정, 탈선, 임신 등의 자극적이고 야한 단어가 실리는 그 잡지에 '스캔들'이 뜨면 민망할 법도 한데 거부할 수 만은 없었나 봅니다.

1968년부터 1991년까지 발간된 선데이 서울, 연예 관련 기사는 필수적이었다.

1968년 창간된 '선데이 서울'은 파파라치와 옐로 저널리즘의 원조라 할지 아니면 음란한 도색잡지이자 대중 문화를 담은 최초의 잡지라고 해야할 지 그 평가가 엇갈립니다. 확실한 건 문화에 목말라 있던 국민들이 영화나 TV 드라마에 홀렸듯이 가장 친숙하면서도 궁금한 소재로 제작된 '선데이 서울'을 매우 반겼다는 것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이나 성인할 것 없이 선데이 서울을 읽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오래된 과월호 조차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약국 가판대에서 판매되던 이 잡지는 17만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선데이 서울의 기사는 꽤 다양합니다. 연예인들의 열애설이나 결혼설 불륜 등의 가십을 싣는 코너도 있고 성범죄를 생생하게 묘사한 사건 사고란,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의 기사도 실립니다. 섹시 컨셉의 수용복 여배우 브로마이드도 부록으로 붙어 나오지만 '야하다'는 평가와는 정부의 제재 수위는 넘지 않습니다. 모자이크 처리된 '본문과 관계없는' 사진이 실리기도 합니다. 때로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연재물도 있었는데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이라던가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 '다모(2003)'의 원작인 방학기 화백의 '다모 남순이'는 아직도 유명합니다.

조폭과 손잡고 사업을 일으켰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사.

여배우의 스캔들은 때로 배우로서의 생명을 포기해야하는 치명적 타격이었습니다. 사생활이 침해되어도 사실이 아닌 기사가 실려도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윤여정은 87년 이혼하고 그때문에 출연금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이혼'한 여배우까지 비난을 받았습니다. 미혼의 여배우가 남자를 사귄다거나 호텔에서 나오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등의 스캔들이 터지면 그만둘 각오로 해명기사를 싣거나 사귀는 사이가 맞더라도 부정해야했습니다. 극중 이정혜가 최성원(이세창)의 영화를 찍으며 열애 사실을 부인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족을 달자면 69년 미군부대에서 데뷰한 조용필이 사람들에게 실력을 알리게 된 계기가 71년 선데이서울컵 팝그룹 컨테스트에서 최우수가수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76년 최고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를 끌었던 조용필은 77년 대마초 파동으로 물러나 잠시 동안 휴식기를 가졌어야 했죠. 극중 강기태는 연예인들에게 제일 무서운 '선데이 서울'의 스캔들과 대마초 파동을 한꺼번에 온몸으로 맞게 되었으니 어쩌면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셈입니다. 대마초 단속에 걸려든 가수나 배우들은 최소 2년 이상 쉬어야 합니다.

강기태의 발목을 잡을 대마초 파동

조용필은 이후 83년에 강기태의 모델이 된 최모씨의 소속사 가수가 됩니다. 신중현, 하춘화, 나미, 조용필, 이주일 등 70, 80년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그와 함께 성공을 누렸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조용필은 본래 알러지 때문에 대마초를 피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번 흡연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77년 익명의 투서로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79년까지 활동 금지 처분을 당한 조용필은 일본으로 밀항까지 꿈꿨을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당시에 여러 연예인들의 대마초 흡연 사실을 제보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입니다.

'빛과 그림자'는 최초 알려진 것과 달리 정혜의 부모를 좌익으로 설정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미군부대도 이미 전성기가 지났으니 소재에서 사라진 듯하구요. 대마초 파동 이후 강기태가 다시 재기하는 내용, 그리고 정혜와 결혼하기 위해 애쓰는 기태와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하려는 유채영(손담비)의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네요. 왜 정혜가 속시원히 기태어머니(박원숙)에게 해명을 못하냐고 하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그때는 시대가 그랬다는게 정답이지 싶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소문으로도 연예인의 생명이 끝장날 수 있던 시대니까요.

대마초 단속으로 회생을 노리는 장철환.

소문을 즐겨도 진실은 궁금해하지 않는 폭력의 시대에 정혜가 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소문으로 누군가 이익을 보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선데이 서울'이 폭발적인 인기를 거둔 배경 중 하나는 당시 경직되어 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던 기사였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연예인들을 희생시켜 정치적 회생을 꿈꾸는 장철환(전광렬)과 차수혁(이필모), 그 배후에는 정말 정치적 음모가 있었을까요. 궁금한 일입니다.

* 가끔 극중 홍수봉, 이정자, 손담비가 부르는 신곡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곡들은 실제 있던 옛날 가요가 아니라 이 드라마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른 드라마들이 그랬으니 추후에 앨범이 따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 강기태와 한지평이 만나던 룸에서 흐르던 곡은 미드 'Hawaii Five-O(1968, CBS)'의 오프닝 음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5-0 수사대'란 제목으로 1970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라 최근 미국 CBS에서 리메이크했고 한국계 배우 그레이스 박과 다니엘 대 킴이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각종 쇼 오프닝 음악 등으로 자주 이용되어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음악 중 하나입니다.
* 조명국과 기자가 만난 카페의 음악은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의 'Rain'입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에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했던 호세 펠리치아노는 통기타를 연주하는 가수로도 유명합니다. 1969년 발표된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데뷰한 이용복이라는 가수가 맹인이었고 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 두번째로 만날 때 나온 곡은 너무도 유명한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으로 1974년 발표된 Stormbringer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68년 결성된 영국의 록밴드 딥퍼플은 하드록 계열의 선두 주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조명국이 다방에서 '바지사장'을 만날 때 흐르던 곡은 1976년 발표된 정종숙의 '둘이 걸었네'입니다. 73년 데뷰했지만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정종숙은 대마초 파동 이후 굵직한 대스타들이 다수 검거되고 스캔들로 하차하자 이 노래로 빛을 보게 된 케이스라는군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