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갑작스런 임신에 펑펑 우는 윤희 여자들만 아는 그 속마음

Shain 2012. 5.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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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다 보면 가끔 자기 자신도 이해 못할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무조건 미소짓고 순종하는 가식, 아는 여자에게는 털어놔도 같이 사는 아내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고민,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면서도 친구인척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망설임, 이상형도 아니고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여성에게 자꾸 눈길이 가고 감싸주고 싶어지는 묘한 끌림, 모진 말로 평소 밉상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를 떼어내면서도 나 때문에 밥도 못먹고 그러지 말라며 한마디 던지는 이상한 친절 등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복잡한 행동을 합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최근 가장 보기 좋고 호감가는 커플은 아무래도 천재용(이희준), 방이숙(조윤희)입니다. 방말숙(오연서)이나 차세광(강민혁)처럼 약아빠진 것도 아니고 어딘가 모르게 거칠면서 순수한 그들의 끌림은 보는 사람들을 설레이게 합니다. 착하고 성실해도 곰처럼 둔하고, 영악하게 자기 것 챙길 줄 모르는 방이숙은 잔머리를 굴려 남자를 유혹하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이숙이 단짝친구 한규현(강동호)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귄 강혜수(최윤소)같은 여자들과 많이 다른 이숙, 천재용은 그런 이숙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멍하게 이숙만 바라보다 레스토랑을 서성입니다.

이숙같은 여자는 싫다더니 자꾸만 이숙에게 끌리는 천재용. 최고의 커플.

평소 '여자가 어딜'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는 초보 마초 재용에게 약한 척하지 않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이숙은 그의 이상형과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자기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할 만큼 서툴고 첫사랑을 십년씩이나 마음에 담아둘 정도로 순수해서 영악한 자기 친구에게 뒷통수나 맞는 그녀를 자꾸 도와주게 됩니다. 약다 못해 친구의 사랑까지 빼앗아가는 혜수같은 여자의 속성도 친구가 첫사랑을 빼앗아가도  베스트 프렌드라며 친구와 첫사랑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숙의 처신도 어떻게 보면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경험으로 '그런 여자들'이 종종 있다는 건 알지요.

어떤 남자들은 왜 여자들은 같이 손잡고 화장실에 가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방이숙 때문에 규현과 혜수의 결혼이 깨졌다며 떼를 지어 레스토랑에 찾아온 여자들의 심리도 아마 이해하기 힘들다고 할지 모릅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 보다 예뻐 보이길 좋아하고 경쟁하는 그녀들은 다른 어떤 일 보다 연인이 변심했을 때 똘똘 뭉쳐 응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납할 수는 없어도 '공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같은 이유로 임신이라는 축복에 주저앉아 펑펑 울 수 밖에 없는 차윤희(김남주)의 심정도 심하게 공감이 갑니다. 인생과 아이를 맞바꾸는 선택이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왜 아이와 인생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걸까

아주 예전에는 연애를 통한 결혼이 불가능했습니다. 부모님이 정해주신 짝과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도리였고 순리였습니다. 때로 나이어린 신부가 낯선 곳에 가서 살게 된다는 두려움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하고 어떻게 사냐' 물어보면 친정어머니는 '살다 보면 다 정이 들고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어머니 본인도 생전 처음 보는 남편과 결혼해 아이낳고 살았고 자식과 남편이 삶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환경을 개척하기 보다 환경을 받아들이는게 삶의 원리였던 그 시대엔 여자는 가족을 중심으로 사는게 질서였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과거 어머니들의 '충고'를 되새겨 보면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도 남이 결정하고 아이낳고 가정을 꾸리는 삶도 남이 결정한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옵니다. 옷을 도둑 맞아 팔자가 바뀌었다는 '선녀와 나무꾼' 전설의 재현도 아니고 결혼하고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다니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더군다나 직장에서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줄 아는 여성들을 원하는데 왜 가정에서만은 과거의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이낳길 바라는 시댁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차윤희. 그러나!

아니 꼭 직장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일종의 '각성'같은 것입니다. 물론 가정을 꾸리고 가정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꽤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바쁜 시대일수록 뒷바라지를 받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할 분담 차원에서도 가정에 헌신하는 게 결코 불필요한 일이 아니지만 아이와 남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 그 역할을 선택하는 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자유의지여야 합니다. 임신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또는 남편이 원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게 가정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가끔은 직장 생활하는 여성들이 전업주부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직장 여성일수록 전업주부의 일이 전문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솥뚜껑 운전'이라며 누군가 비아냥대고 비하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성들 본인 역시 가정에서 빨래나 설겆이, 식생활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해결해줄 '엄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중 차윤희의 대사처럼 아이낳고 가정에 정착해서 언젠가는 타인이 될 '아이' 이외의 것은 바라보지 않고 또다른 삶의 가능성은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돈도 버는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사냐고?

아이가 성장해 또다른 가정을 가지고 독립할 때 가정 말고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런 자신의 인생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허탈해하지 않고 또다른 인생을 꾸릴 자신이 있을까요? 전업주부의 노동력을 인정하지 않는 시선, 그들을 '노는 여자' 취급하는 현대사회에서, 안그래도 우울해지기 쉽다는 노년에 스스로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요? 또 극중 방일숙(양정아)처럼 독립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내들은 남편과 이혼했을 때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적인 능력자로 대우받고 홀로서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자립과정 같은 것입니다.

차윤희는 외주 드라마 제작사 PD로 갖은 고생을 다 하며 경력을 쌓은 여성입니다. 친정집에는 돈벌이라곤 해본 적없는 엄마 한만희(김영란)과 돈쓰는 법은 알아도 벌 줄은 모르는 두 남자 형제 차세중(김용희), 차세광 뿐입니다. 억척스레 친정집 건사하고 아부하며 쌓아온 커리어입니다. 그런 그녀의 야무진 능력을 인정해 500억 짜리 드라마 총괄 책임자를 맡겨보겠다는데, 안 그래도 직상상사가 차윤희가 결혼했다는 점 때문에 맡길까 망설였다는데 임신을 덜컥 해버렸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동안 '차윤희'라는 사회인을 완성하기 위해 공들인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위기입니다.

오백억짜리 드라마를 맡게 됐는데 차윤희는 어떻게 하라고, 공감가는 눈물.

아무리 따뜻한 할머니 전막례(강부자)의 소원이고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의 바람이라지만 우선 자신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게 임신입니다. 시댁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낳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들이 돌봐줄 것이며 또 아이가 결혼과 삶의 결과물이라 합니다. 또 아이를 위해 힘든 직장일을 좀 줄이라하기도 합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어쩌면 그렇게 쉽게 말하는가 내심 원망스러워도 그때까지는 남편 방귀남(유준상)의 도움으로 딱 부러지게 아이 보다는 인생이 먼저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덜컥 생겨버린 아이로 인해 차윤희의 인생은 변해버린 것입니다.

아이가 생긴 이상 차윤희는 이제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하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임신은 여자의 인생 뿐 아니라 태어날 아이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사건입니다. 하필 방귀남의 어릴적 기억이 돌아와 장양실(나영희)과 진실을 파헤치려던 그 때, 차윤희는 자신에게 큰소리치며 바쁘게 뛰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고 맙니다. 갑작스런 변화에 의지하고 상의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습니다. 임신은 축복이고 기쁨이지만 누가 그 순간에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펑펑 우는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갔기에 어색한 눈물 연기는 보이지도 않더군요. 먹먹하다기 보다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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