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윤희처럼 잘나도 일숙처럼 착해도 욕먹는 여자들

Shain 2012. 7. 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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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기사를 읽다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정치적 편향을 넘어서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댓글도 있고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일방적인 주장도 있습니다. 또 어딜 가나 '댓글 알바'라는 온라인 신종 쓰레기가 많은 시대에 그런 댓글들을 되도록 읽지도 보지도 말라고들 합니다만 도무지 인간적으로 용납이 안되는 수준의 댓글은 역시나 보는 사람의 인상을 찌푸리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정신건강에 안좋은' 댓글류 중에는 지역감정 댓글과 여성혐오 댓글이 있습니다.

지역감정 유발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특정 성향을 가진 집단이 퍼트리는 것이 대부분이라 무시할 수 있으나 여성혐오류는 자발적으로 작성하는 내용이 많아 더욱 불쾌하기 마련입니다. 살인사건이든 이혼이든 무슨 일만 생기면 여자탓을 하는 그런 류 댓글들은 상식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동조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운전을 잘 못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김여사'에 대한 비난만 해도 현상에 비해서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죠. 잘나면 잘난대로 '재수없다'고 하고 못나면 못난대로 도마 위에 올려 안주거리를 만드는 그들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여자탓하는 문화 속에서 그녀들은 약자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도 비슷합니다.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잘 나가는 차윤희(김남주)는 임신이라는 문제로 직장 상사에게 물먹고 착하고 순하게 살던 전업주부 방일숙(양정아)은 남편만 의지하다 하루 아침에 이혼녀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치입니다. 평생을 가족 뒷바라지에 헌신한 엄청애(윤여정)의 인생은 잃어버린 아들 귀남(유준상) 때문에 꼬이기도 했지만 드라마 초반에 묘사된대로 스스로도 대접받지 못하는 그 인생을 종종 섭섭해 합니다. 약아빠진 방말숙(오연서) 조차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명품이나 뜯어내고 잘 사는 듯했지만 결국 된장녀 취급을 당합니다.

특히 하루아침에 남편에게 배신당한 방일숙의 처지는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직장 생활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갖은 고생을 하며 남편 남남구(김형범)을 따르던 일숙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순진한 성격입니다. 물론 야무지게 가족을 건사하며 가장 노릇을 하던 윤희에 비해 순한 성격인 일숙이 윤희 만큼 당차게 세상에 맞설 수는 없겠지만 그런 그녀의 순진함을 이용해 먹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윤희더러는 드세다고 흉을 보고 일숙에게는 순딩이라며 뭐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남남구는 왜 방일숙을 만만하게 볼까

윤희가 똑똑하고 일 잘하는 타입인 건 사실이지만 직장에서 치이고 사회에서 치이는 한국인들에게 '가정적인' 타입의 여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정을 지키는 전업주부야 말로 한국 사회같이 각박하고 속도를 중요시하는 곳에서 꼭 필요한 어머니상이 아닐까 싶지만 반대로 '전업주부'들은 그 장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아이나 키우며 할 일없이 노는 여자들이라 대놓고 말하는가 하면 그녀들의 가치관을 비웃고 전업주부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비하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의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주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싫다고들 합니다.

무엇 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들의 사회적 미숙함을 대놓고 조롱거리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극중 방일숙은 차윤희와 몇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일숙은 엄청애처람 순하고 가정적인 여성으로 차윤희가 젋을 때부터 격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각종 세상 돌아가는 원리에 익숙해졌다면 방일숙은 차윤희가 살던 것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차윤희가 직장여성답게 '김여사'라고 놀리며 달려드는 거친 운전자들에게 대들고 맞서는 성격이라면 방일숙은 차라리 자기가 기분 나쁘고 말지 애써 운전자들을 향해 사납게 굴지 않습니다.

전업주부였던 일숙이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는 윤빈의 매니저 일.


세상살다 보면 차윤희처럼 적극적인 성격이 필요할 때도 있고 방일숙처럼 수더분한 성격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순진하게 20년전 좋아하던 스타 때문에 마음이 아파하고 과거 '오빠'라고 부르며 동경하던 윤빈(김원준)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는 그녀는 영악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윤빈은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며 무시하고 전업주부였던 일숙이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다며 조롱할 때 방일숙은 힘들어하면서도 한발 더 내딛을 줄 압니다. 그런 그녀의 선택은 때론 이용당하고 바보 취급당하지만 절대 가치없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고기집 사장(전수경)과 바람이 나 방일숙과 이혼한 남남구는 최악의 남편이자 사회적으로도 고개를 쳐들 수 없는 파렴치한 타입입니다. 바람이 나서 아내와 헤어져야한다면 깔끔하게 위자료 문제를 비롯한 각종 책임을 해결하고 또 아내 일숙을 충분히 이해시킨 후 떠나가는 것이 맞는데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리고 떠난 그는 내연녀와 한통속이 되어 일숙을 우롱합니다. 진짜 손가락질을 당할 사람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일숙을 거머리 취급하는 사장이나 그런 일숙에게 매니저 일을 관두라고 종용하는 남남구인데 그들은 계속해서 일숙에게 뻔뻔한 태도를 취합니다.

일숙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뻔뻔한 전남편 남남구(난닝구?)


특히 어제 방영된 장면처럼 남남구가 갑자기 나타나 일숙을 휘저어놓는 장면은 기가 막히다 못해 짜증이 납니다. 바람나서 사장의 내연남 노릇을 하던 남구가 한때는 절대로 만나려고 하지 않던 일숙의 식구들을 만나며 일숙이 더 이상 윤빈의 매니저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할 때는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미 남이 된지 오래라 남구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일숙에게 자신이 무슨 권리로 남편 행세를 한단 말인지 어이가 없습니다. 이 모든게 일숙을 만만하게 여겨서 생긴 일이라는 점이 더욱 기가 막힙니다.

두 사람은 한때는 모든 것을 상의하던 부부였으나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입니다. 아이 때문에 접촉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해도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하고 부모로서의 책임에만 집중해야지 더 이상의 간섭은 무례입니다. 일숙의 식구들에게 몰매를 맞아도 모자랄 판에 같은 남자랍시고 귀남에게 일숙을 말려달라 부탁하는 남구는 정말 짜증이 나더군요.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는 사장이 일숙을 하찮게 여긴 것처럼 한때 남편이던 이 남자도 일숙의 선택 따위는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전업주부 일숙이 만만한 겁니다.

여자탓하는 사회 속에서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 아닐까.


안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여자탓을 합니다. 경우없이 성질부리는 말숙에게 야단을 치려는 방귀남. 그 방귀남을 만류하던 윤희가 등에 업혀 가자 엄청애와 전막례(강부자)는 윤희를 나무랍니다. 거기다 말숙이 분명 잘못을 했음에도 오히려 그 말을 전해 남매 사이를 갈라놓는다며 윤희를 야단치는 청애는 '여자탓'의 전형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똑똑하고 당찬 윤희 마저도 그런 나무람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말을 전한건 사실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윤희도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여자탓'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신도 결혼도 그리고 집안의 모든 크고 작은 사소한 갈등도 여자 혼자 벌이는 일은 없습니다. 임신도 결혼도 여자탓이고 집안의 분란도 여자탓이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전업주부 일숙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어머니인 엄청애 조차 그런 일숙을 보며 '네가 뭘 할 줄 아느냐'며 무안을 주니 점점 더 그녀의 이혼 사실을 고백하기 힘들어지겠죠. 간신히 용기를 낸 일숙이 재기하는 건 그래서 더 힘든지도 모릅니다.'시월드'냐 아니냐를 떠나서 똑똑하든 착하든 동네북처럼 비난받는 그녀들, 어떻게 보면 일숙과 윤희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여자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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