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덩쿨째굴러온당신, 비밀 감추기가 엄청애를 지켜주는 것일까

Shain 2012. 7. 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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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부모가 있고 믿음직한 연인이 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곤 하지요. 하다 못해 갓 태어난 아기들 조차 엄마의 보호를 믿고 푹 잠이 들고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뒷배를 믿고 한껏 호기를 부려봅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부모를 잃고 자폐 증세를 보이는 지환(이도현)은 그래서 더욱 방귀남(유준상)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세상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슬픔, 갑자기 부모가 사라졌다는 공포는 아이에게 그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릇을 들고가다 넘어질 뻔한 이숙(조윤희)의 운동화 끈을 매주고 그릇을 떨어트려 다칠 뻔한 이숙을 옆으로 비켜나게 해주는 천재용(이희준)의 보호는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합니다. 이숙도 한 사람의 당당한 어른이고 엄연한 직장인이지만 그런 걸 알면서도 아끼고 감싸주고 싶어하는 재용의 마음은 연인에 대한 정이고 배려입니다. 특히나 깨진 접시를 이숙이 아닌 다른 직원에게 치우도록 지시하며 이숙을 혼내는 척 끌고나갈 때는 저 남자 정말 얄밉다 싶을 정도로 웃음이 나곤 하지요. 천방커플의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이 보기 좋은 겁니다.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방장군(곽동영)같은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전막례(강부자)와 방장수(장용), 엄청애(윤여정)는 대가족을 거느린 집안의 어른들로서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감싸주고 다독여주는 역할을 하곤 합니다. 최근 원치 않는 타입의 며느리를 들린 엄청애는 직장생활 만 하느냐 드세고 딱 부러지는 며느리 차윤희(김남주)가 내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살림만 하는 주부도 아닌데 집안일도 못하고 남편 밥도 챙겨주지 않는다며 드러내놓고 사돈 한만희(김영란)에게 푸념을 합니다.

전화로 사돈 엄청애의 흉을 보다 딱 걸린 한만희도 만만치 않습니다. 윤희 정도로만 잘하면 복덩어리인데 뭘 그리 불만이 많냐며 엄청애에게 이상한 사위 보면 좋겠냐고 맞불을 놓습니다. 두 사람은 세광(강민력)과 말숙(오연서) 즉 말세 커플(이거 이름 참 잘 지은듯)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체 어린아이처럼 내 아들이 잘났다 내 딸이 잘났다 다투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식들 입장은 잘 알지 못하면서 내 자식만 보호하고 싶은 심정이 너무 과해 그런 코미디를 연출하는 셈일텐데요. 세상물정 모르는 어머니들이란 점에선 공통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엄청애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주부?

옆차에서 김여사라며 조롱하며 난폭운전을 할 땐 자신도 흥분하여 대거리를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격하게 따지고 드는 차윤희. 누구나 자신을 우습게 볼 수 없도록 진하게 화장하며 드센 이미지를 강조하는 그녀는 현대의 직장인입니다. 누구에게나 비위를 맞춰줄 정도로 융통성이 있지만 아니다 싶은 일에는 전투적인 자세도 불사하는 그녀. 엄청애는 그런 며느리와는 다르게 평생을 가정과 가족 밖에 몰랐던 순한 주부입니다. 운전을 배우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소 어디선가 많이 본 아주머니들의 모습이라 상당히 친숙한 장면이더군요.

엄청애의 큰 딸 방일숙(양정아)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순진해서 이용만 당했듯 엄청애도 집안일만 하느냐 운전 배우는 일이나 사람 상대하는 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넷이나 낳고 그들을 기르고 귀남을 찾겠다며 동분서주하면서도 시어른들 비위까지 맞췄으니 밖으로 고개를 돌릴 틈이 없었을 겁니다. 뭔가 해보겠다며 집을 나서서 제대로 해본 일은 자매들과 함께 다니는 노래교실 정도였을테니 그녀의 사회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운전 배우기를 포기한 것처럼 몇번을 시도했다가도 그만두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차윤희는 엄청애를 위해 장양실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게 한다.

일숙이 이혼을 했다고 했을 때 뺨까지 때리며 더 흥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쏙 빼어닮은 딸이 돈벌고 가정을 책임지는 힘든 일을 해낼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힘겹고 무서운 세상에 남편이란 보호막 하나 없이 딸 하나 데리고 어딜 가서 취직을 할 것이며 풍족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힘겨운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할텐데 누굴 의지하려고 이혼했나 싶어 더욱 무섭게 딸을 다그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친정 엄마는 자신의 과거 경험에 대입해 딸의 이혼을 해석했기 때문에 더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물론 방일숙은 착하고 순진하긴 해도 '멍청한 것'과는 다릅니다. 남편을 믿고 의지하며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믿었고 이제는 배신당해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을 잘 구분하는 용기있는 이혼녀입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느냐'는 엄청애의 염려와는 달리 그녀는 의외로 윤빈(김원준)의 매니저 일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차윤희의 도움도 있었고 원래부터 좋아하던 일이라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엄청애가 생각하는 것 만큼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엄청애는 이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무리일 지 모르지만 일숙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전막례와 방장수도 엄청애를 위해 비밀을 지킨다.

문제는 엄청애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둘째 며느리 장양실(나영희)이 방귀남을 잃어버린 것이 진실이지만 엄청애는 장양실 보다 더욱 고통받으며 30년 세월을 살았습니다. 귀한 장남을 잃어버린 며느리라는 눈총에 딸자식 생일상도 한번 못 차려주었고 '자식 잃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는 시어머니 전막례의 험한 소리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유난히 아들을 귀하게 여기던 70년대라면 산후조리는 커녕 애낳자 마자 병원을 나섰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겠죠. 남편은 내심 그런 아내가 미워 입닫고 속으로 원망했다고 합니다. 딸들도 그런 엄마가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첫번째 가해자는 장양실이었지만 나중에는 가족들이 엄청애를 괴롭히는 공범이 되버린 상황. 만약 장양실이 용서를 빌어야 한다면 그 당사자는 당연히 엄청애가 되어야하고 가족들도 그동안 아이잃은 엄마를 보호해주기는 커녕 괴롭힌 죄를 사죄해야하지만 지금 차윤희도 방귀남도 방장수도 전막례도 아무도 가장 큰 고통을 당한 엄청애에게 의견을 묻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털고 이혼하려던 장양실 마저도 차윤희의 만류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엄청애가 받을 엄청난 충격을 걱정해 모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집안일만 해온 주부 엄청애. 그녀는 정말 진실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걸까?

자신이 그렇게 고마워했던 아랫동서가 자신의 아들을 30년 동안 잃어버리게 만든 당사자라면 엄청애는 견딜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의 모진 세월이 없어도 되는 일이었다니 삶이 무너지는 충격이겠지요. 어쩌면 이 보호막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지고가야할 비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평생을 가족에 휘둘리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지 못한 엄청애가 자신에게 죄를 지은 누군가를 용서한다 만다 하는 중요한 결정을 꼭 남에게 맡겨야하는 걸까요? 엄청애는 그런 중요한 일을 결정할 자격이 없을까요?

운전도 못 배울 만큼 세상물정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가 이런 운명적인 결정에서 마저 소외된다면 그녀는 당당한 성인으로 인정받기 보다 평생을 누군가의 보호 아래서 살았던 어린아이라며 무시받는 셈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직접 대면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직선적인 여성 차윤희라면 절대로 식구들이 그런 비밀을 갖는 걸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방일숙의 이혼이야 일숙 본인이 원해서 비밀을 지켜줬다 해도 방귀남과 장양실의 문제는 다릅니다. 그녀가 당당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알려야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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