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둘째 며느리 장양실의 불행한 결혼 왜 안타까울까

Shain 2012. 7. 2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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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선 오늘같이 더운 날엔 마을회관같은 곳에 모여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날은 햇볕이 곧 살인무기니 농사일은 꼭두 새벽이나 초저녁으로 미루고 낮동안엔 삼계탕이나 닭죽같은 걸 함께하는 것입니다. 도시로 일하러 나간 자식들이 직접 여름 보양식을 챙겨드릴 수 없는데다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도 많다 보니 마을회관같은 곳이 꽤 유용한 친목장소가 됩니다. 그곳에서 최고로 젊다는 50대, 흔한 60대부터 심지어는 90대 어르신들까지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대 간의 생각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지난주 방영된 '넝쿨째 굴러온 당신'처럼 윗세대들 중에는 아랫 사람에게 화풀이나 신경질 정도는 가족 간인데 괜찮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윗사람이 부당한 감정 표현을 했더라도 어디 감히 며느리가 꼬박꼬박 대드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 50대를 비롯한 그 아랫 세대는 사람이 굴러다니는 돌맹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며느리는 한다리 건너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인데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대응합니다. 어찌 보면 며느리를 비롯한 아랫사람 대하는 과거 문화는 일종의 약자괴롭히기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엄청애에게 과거를 털어놓으려는 장양실. 차윤희가 청애를 뒤따라간다.

요즘 학교나 군대같은 사회전반에서 문제가 되는 '왕따' 현상은 근본적으로 약자 괴롭히기가 극대화된 것입니다. 그 집단에서 가장 눈에 띄거나 가장 손가락질하기 쉬운 사람을 골라 타겟을 삼고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 한때는 그 왕따나 타겟이었던 당사자가 자신이 왕따 대상일 때는 약한자로 행세하다 또다른 타겟이 생겨 왕따에서 벗어나면 자신도 가해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괴롭힘이 심한 군대에서 더 계급낮은 후임이 들어오면 자신도 똑같은 윗군번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때로는 더 심하고 악랄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같은 '왕따'이자 '약자'이면서 왜 그 심정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보다 더 가혹하게 괴롭히려고 할까요. 그것은 자신이 그 '약자'의 위치에 서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자신 보다 더 타겟이 되고 구박받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은 가해자와 한편이 되어 안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들이 한때는 한 가족의 이방인으로 시댁식구들의 눈총을 받는 타겟이 되다 나중에는 시집살이를 물려주는 한 집안의 시어머니가 되고 또 며느리들끼리 새로운 며느리가 들어오면 서로 약점잡히지 않으려 경쟁하는 것도 유사한 속성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언젠가는 가족이 될 사이인데 참 어렵게들 사는 셈입니다.



이기적인 남편에게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인터넷 댓글란을 보면 재미있는 신경전이 많습니다. 가끔 시집살이를 꼬집은 드라마 관련 기사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한 가족의 문제가 한 사람 만의 문제이기 보다 전체 가족들의 복잡한 감정싸움이 빚어낸 비극인 경우가 많아 그걸 단순히 '여자 문제' 단정하는 시선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은 여자 문제다, 한쪽은 그렇지 않다를 놓고 대립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들 싸움을 남자에게 책임전가하지 말라는 식의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의외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 '넝쿨당'의 경우엔 아동 유기라는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장양실(나영희)이란 부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실수로 그랬든 방귀남(유준상)의 기억대로 고의로 버렸든 간에 조카를 버리고 미국에 입양되게 만든 당사자, 전막례(강부자)를 비롯한 방귀남 가족의 고통을 초래한 당사자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장양실이 어째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를 생각해보는 문제는 '책임을 전가'하자는 차원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가 멀쩡하던 한 여자를 못된 짓을 할만큼 미치게 만들었느냐 하는 부분이 핵심이죠.

이기적인 남편에 아이까지 낳지 못한 장양실. 엄청애는 양실에게 '아이 소식없냐'고 묻는다.

드라마 첫등장부터 장양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시어머니 막례가 여행을 떠나자 엄청애(윤여정)은 가족들을 모두 불러 이숙(조윤희)의 생일상을 차리고 그 자리에 장양실과 막례가 갑자기 나타나 귀남을 잃어버린 날에 생일상을 차렸다며 분노합니다. 그런 시어머니를 위로하는 장양실은 누가 봐도 눈치빠른 며느리였지만 그런 양실에게 막례는 '네 잘못이라곤 아이 못낳은 거 밖에 없다'는 말을 합니다. 과거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제법 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청애가 귀남을 잃은 잘못에 비하면 불임은 아무것도 아닌 듯 막례는 오히려 며느리를 위로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같은 가족이라고 모두 다 서로를 감싸주는 것은 아닙니다. 두 형들 보다 한참 어린 방정배(김상호)와 고옥(심이영) 부부는 돈없고 잘나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종종 말숙(오연서)에게도 무시를 당합니다. 축복받아야할 임신도 축하해주지 않고 오히려 그 애를 어찌 기르려고 그러느냐며 임신 자체를 아는척하지 않습니다. 막내 정배네야 제쳐둔다 쳐도 만약 귀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막례의 눈총을 받을 며느리는 장양실이었을 것입니다. 과거 회상장면에서 하나둘씩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는 슬프다 못해 애처롭습니다.

드디어 시어머니에게 드러난 비밀. '너 정말 무서운 아이다'

명절날 남편을 따라 출장을 가야하는 처지로 미안한 마음에 큰 동서 엄청애에게 돈봉투를 건냈더니 불임이라는 아픈 상처를 꼬집는 듯 비꼬는 엄청애. 듣자하니 엄청애는 좋은 집안 출신의 아랫 동서 장양실이 마음에 안드는지 자매들에게도 흉을 봤던 모양입니다. 엄청애의 환갑으로 호텔에서 식사를 하게 된 날 주책맞은 엄순애(양희경)는 장양실에게 방정훈(송금식)이 좋아서 '결혼 안해주면 콱 죽어버리겠다'고 했다는 그 분이냐고 말을 붙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에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까지 잃은 그녀는 발붙일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남편 방정훈은 이기적인 남편의 극치입니다. 아내가 쓰러질 듯 아파도 상관하지 않고 부부동반 모임에 끌고 나가고 그녀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이혼하자고 해도 체면 깎이는 짓은 못한다며 그대로 버티라 강요합니다. 방정훈에게 아내 장양실은 자신을 꾸며주는 인형이자 장식물에 불과한듯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있으니 대체 양실이 이 결혼을 유지할 까닭이 없어보입니다. 조카 방일숙(양정아)에게 이혼은 창피한거라 쏘아붙이는 방정훈.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어도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는게 아무리 그 세대의 상식이라쳐도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눈총받는 며느리로 산다는 것. 그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두 며느리.

어찌되었든 귀남를 버린 양실은 그 책임을 지고 가야하는 당사자입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걸려 대가족의 약자가 되기 싫어 아둥바둥 하는 장양실은 과거의 신문기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70, 80년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로 남의 집 아이를 유괴했다는 뉴스나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던 주부가 또 딸이 태어나자 그 아기를 죽여버렸다는 이야기도 흔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결혼에 집착했을까요. 무엇이 그녀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장양실의 캐릭터는 결혼의 어두운 면을 집약한 부정적인 캐릭터입니다.

방귀남을 버린 당사자가 장양실임을 알게 된 전막례는 '너 정말 무서운 아이다'라며 둘째 며느리와 어울린 자신도 죄인이라 하고 자신 때문에 생일상도 차려먹지 못한 손녀딸 이숙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손자를 잃고 30년을 속끓이며 살아온 할머니답게 그들 가족의 비극이 장양실의 탓만을 할 수 없음을 알게된 거겠죠. 엄청애가 사온 청심환을 장양실에게 먹이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결국 가족끼리 갈등하고 아이낳지 못한다는 스트레스가 귀한 손자 귀남의 불행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탓하고 그러는 거겠죠.

* 입장 차이를 두고 논쟁하시는 건 좋은데 댓글을 화풀이 공간으로 삼는 분들은 무조건 사양하겠습니다. 특히 얼굴 한번 안본 사람들에게 인신공격이나 비하를 일삼는 분은 나이 고하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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