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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히어로 '각시탈'이 배트맨 보다 시시하다고?

Shain 2012. 9. 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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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터넷 뉴스를 읽다 보니 일본의 대표적 친한 가수인 각트가 일본 우익단체에게 사생활을 공개당했다고 하더군요. 숨겨둔 아이가 있고 팬클럽의 경비 일부를 횡령했다는 혐의가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신비주의 컨셉이라 할 정도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연예인 각트로서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은 셈이라 이웃 나라인 우리 나라에서까지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각트가 그렇듯 '공격'을 당한 이유는 평소 한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자주 해온 가수라는 점과 그가 사귀는 여성 아유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는 앞으로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주가 하락 등으로 경제적인 면에서도 실질적인 피해가 있습니다. 일본 우익단체는 같은 '일본인' 조차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할 만큼 비이성적인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세계 어느 나라가 각트가 지금 입은 피해를 한국 때문이라 여길까요.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저지른 괴롭힘일 뿐입니다. 나치의 하겐크로이츠에 맞먹는 군국주의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당당하게 들고 나올 정도로 뻔뻔한 그들이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인마'가 된 자신을 깨닫게 된 슌지의 자살. 그도 이강토도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 나라엔 아직까지도 드문드문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 정기를 말살하겠다며 전국 곳곳에 박아놓은 쇠말뚝은 여태 뽑지 못한 것이 많다고 하고 오랫동안 지켜왔던 우리말 지명이 일본식 한자를 이용한 지명으로 변해 전통이 사라져 버린 곳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인 '마을' 대신 일본 천민들이 거주하던 '부락'으로 바꿔부르곤 했는데 여태 '부락'이란 표현이 쓰입니다. 꽤 많은 곳에 일본식 가옥과 정원이 지어졌고 다다미방 여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각시탈'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일본식 가옥을 본 것같군요.

기무라 타로(천호진)와 기무라 슌지(박기웅)는 그 일본식 가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한때 슌지는 각시탈 이강토(주원)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라 여겼지만 자결하기전 깨닫게 됩니다. 강토의 가족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인 사람들도 가족같은 유모의 손녀를 위안부로 보낸 것도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그리고 결국 슌지 자신을 목숨 보다 사랑하던 오목단(진세연)을 죽인 살인마로 만든 것도 키쇼카이와 일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일본제국의 영광이라는 미명하에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렸고 그것도 모자라 조선의 젊은이들까지 희생시켰던 그들이야말로 악마라는 진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반면 어떻게 보면 이런 결말은 수퍼히어로물에 익숙한 우리 세대들에게 각시탈을 '시시한' 영웅으로 보이게 합니다. 의외로 시청자의견 중에는 '각시탈'이 구시대적이고 촌스러운 항일 드라마였다는 평가도 많고 어차피 드라마인데 키쇼카이를 제외한 '왜경'들과 총독, 군인들을 왜 싹쓸어버리지 못했냐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동진결사대에서 훈련받는 독립군들은 왜 그리 인원이 적으며 또 일본의 총칼 앞에 왜 그리 무력하고 약하기만 하냐고도 합니다. 우리에게 존경받는 독립투사들이 무능하게 그려진듯해 속상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우리의 독립운동이 시시하고 무력해 보였을까.

씁쓸하긴 하지만 아무리  헐리우드의 수퍼히어로인 '배트맨'과 비슷해보이는 '각시탈'이라 해도 각시탈은 처음부터 역사적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는 영웅이었습니다. 당시의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많은 독립투사들이 목숨바쳐 항일무력투쟁을 준비했다고는 하나 세계제2차대전을 벌이던 미국과 일본의 시각에서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그런 항일투쟁의 존재 의의 자체를 가볍게 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의 항거였고 투쟁이었는데 그런 '시시한' 저항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뜻이죠.

약한 사람들은 흔히 '강한 권력' 아래에 빝붙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우에노 리에(한채아)는 자신을 죽이려는 양아버지(전국환)의 본심을 알면서도 다시 키쇼카이에 갑니다. 계순(서윤아)이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돈을 얻어내 자기 가족을 꾸린 것처럼 강토가 미친 척하는 형 이강산(신현준)과 엄마(송옥숙)를 위해 순사가 된 것처럼 강력한 힘에 기대어 살면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지인'과 '반도인'을 철저히 구분하며 순간의 이익을 위해서 반도인 따위는 얼마든지 쳐낼 수 있는 그들이 자신의 충견 노릇을 한 친일파들에게 칼을 휘두릅니다.

'청춘만장'이란 표현은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젊은 청년들이 들고 있던, 각종 구호가 쓰여진 깃발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국민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만장은 본래 상여가 지나갈 때 뒤에서 들고가던 깃발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남의 전쟁에 죽으러 끌려나가는 청춘들이 '대일제국의 영광'랍시며 깃발을 들고 있으니 그것이 만장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는 뜻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을 '반도'라 부르기를 강요했던 일본은 수없이 많은 청춘을 전쟁터로 끌고갔습니다. 침략자 앞에서 '반도인'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일 뿐입니다.

일본의 야망 앞에서 우리의 청춘과 독립군은 약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각시탈은 위안부로 끌려가던 소녀를 구하지 못한 것처럼 학도병이 될 뻔한 그 청춘들을 다 구해주지도 못했고 각시탈이 탈출시켜 동진결사대가 되었던 청년들은 기무라 슌지와 일본군의 손에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시시한' 영웅 각시탈은 기무라 슌지도 직접 죽이지 못했지만 고이소(윤진호)나 무라야마 요시오(김명수)도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느리지만 언젠간 반드시 찾아온다'며 미래의 복수를 예고해 보아도 한 영웅의 힘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처단하기는 역부족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정말 약한 나라였으니까요.

알게 모르게 일제의 흔적과 영향력은 아직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툭하면 '조센진' 강토를 두들겨 패고 독립투사들을 고문하던 고이소의 관행은 광복 후 경찰문화에 영향을 끼쳐 고문과 폭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를 낳고 아직까지도 각종 범죄 사건 발생시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계급이 낮은 군인을 괴롭히는 지독한 군대의 괴롭힘 문화도 그때의 잔재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리도 아닙니다. 광복 후 우리나라 군경의 근간이 된 것이 '군사영어학교'인데 이곳에 참가한 사람들 중엔 광복군이 단 한명도 없었고 친일파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전에도 적었지만 개인적으로 '반도의 XXX'이라는 표현을 보면 가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에겐 일본인이 조롱하듯 부르는 '반도'라는 표현을 수치스러워한 역사가 있고 아직까지도 일본 극우단체들은 '반도'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20-30년전만해도 일본에 갔다가 '반도인'이라 무시당했다는 이야길 수차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약해서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저항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살았지만 지금은 당당한 주권을 가진 우리들이 왜 '대한민국'이란 국명을 두고 그런 과거의 표현을 써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미약한 저항이 정말 아무 의미 없었을까. 서글픈 시대의 '청춘만장'

요즘의 '청춘'들에겐 배트맨 보다 각시탈이 시시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런 '반도'라는 표현이 우리 나라에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시아 전체를 침략한 일본에 맞서 온몸을 불사른 담사리(전노민), 양백(김명곤), 동진(박성웅)의 용기는 태산을 움직이려한 거대한 몸짓이었고 그 사람들의 피가 모여 광복의 큰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금 더 우리가 강해 광복전에 우리의 광복군이 이 땅을 밟을 수 있었더라면 또 드라마 속 양백과 동진처럼 김구와 몽양이 함께할 수 있었더라면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작은 영웅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지금 만큼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동진결사대처럼 국내 항쟁을 벌이던 '구월산대'같은 독립군이 있기는 있었다고 하지만 생각 보다 세력이 미약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무장항쟁을 하던 독립군들은 주재소를 공격하는 등 여러 차례 게릴라전을 벌이다 어느 시점을 계기로 만주로 근거지를 옮겨가게 됩니다. 역사에 자세히 기록될 큰 업적을 세우진 못했더라도 광복이 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했던 그들의 '작은' 노력은 결코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 아닌 수십 수천명의 '각시탈'이 있는 한 언젠가는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각시탈'이 되는 그 순간. 마지막 장면의 의미.

지금도 일본은 아시아 각국에 끼친 피해는 생각도 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와 마루타 문제 등을 부정하거나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쇠퉁소를 둔 '각시탈'이나 고문받으며 죽어간 독립투사들이 시시해 보인다고 무시하고 '반도'라는 비하 표현이 유머일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우리 시대의 '청춘만장'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국'이라는 것이 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투표하고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또 우리 나라를 낮춰 부르지 않는, 그런 보잘것없고 작은 노력 하나라도 애정을 기울인다면 많은 것을 지키고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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