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보고 싶다'의 성폭행 장면 논란 씁쓸한 이유

Shain 2012. 11. 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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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는 TV 드라마에서 적나라한 성폭행 장면이 연출되곤 했었지만 최근에는 성폭행을 드라마 소재로 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선정적인 베드신이나 노출 장면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성폭행은 시청자들의 불쾌한 감정을 자극시키는 경우가 많아 되도록 자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흡연 장면과 마찬가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제 대상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은 완전히 사라졌고 성폭행 상황을 직접 묘사하는 경우도 많이 줄었습니다. 지난 10월엔 아동 성폭행 장면을 재연했다는 이유로 종편방송에 제재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어보니 MBC에서 수목에 방영중인 드라마 '보고싶다'가 그 금기를 깨트린 모양입니다. 성폭행 그것도 미성년자인 여중생의 성폭행을 드라마 소재로 삼았다고 하는데 관련 드라마에 대한 기사를 하나하나 읽어 보니 '여중생 겁탈'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기사만 읽어봐도 이건 파격이라기 보다는 충격적 수준의 내용이라 정말 그정도까지 노골적으로 묘사했나 그리고 그 드라마에서 성폭행이란 소재가 꼭 필요했나 싶어 그 드라마를 찾아서 직접 보았습니다.

자극적인 걸 떠나서 상황 자체가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직접 찾아보니 직접적인 성폭행 장면 연기는 없지만 폭행당하는 상황 자체가 폭력적입니다. 어른들의 욕심과 갈등 때문에 어떤 아이는 사냥개에게 위협을 당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또다른 아이는 납치 당해 갇혀 있습니다. 그 아이를 구하러 따라온 여자아이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마약과 술에 취한 남자에게 고통스럽게 성폭행당합니다. 그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목격자라며 또다른 어른은 그 아이를 죽이려하고 아들을 구하러 온 아버지는 여자아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데도 자신에게 안좋은 소문이 날까 현장을 불태우고 사라집니다.

가슴아픈 사랑을 묘사하는 멜로물이라 저와는 취향이 맞지 않다 생각했지만 아역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입소문 때문에 보려했던 드라마인데 이런 충격적인 소재를 선택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폭행을 당하는 여중생과 자신이 좋아하는 그 여중생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보고 도망가는 남자아이. 첫회부터 4회까지의 방송 장면장면에 아이를 폭행하고 괴롭히는 아동학대가 수차례 등장해서 보기가 영 꺼림칙하더군요. 도대체 어떤 사랑을 묘사하고 싶어서 아이들을 저렇게 괴롭히는 것인지 마음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수시로 등장하는 매맞는 장면. 아역 연기자들의 노력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여중생 성폭행 장면을 꼭 연출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싶고 또 워낙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 잦은 드라마다 보니 불쾌한 생각도 듭니다. 해당 성폭행 장면을 연기한 아역배우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불거지는 이번 논란을 보며 두가지 이유 때문에 씁쓸했습니다. 첫번째는 혹시 제작진이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장면을 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드라마 '보고 싶다'의 시청률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어제 성폭행 장면 방영 이후 약간이지만 시청률 상승세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최근 미성년자 성폭행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보고 싶다' 제작진은 (아무리 직접적인 묘사가 없더라도) 네티즌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네티즌들 사이의 여론이 좋지 않단 기사가 뜨자 동시에 제작진 측에서 '최대한 표현 수위를 낮췄다' 그리고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했다'는 기사를 쏟아냅니다. 덧붙여 제작진은 '내용상 수연이 성폭행을 당한 것이 맞지만, 눈치빠른 시청자가 아니라면 폭행신인지, 성폭행신인지 알수 없을 것'이라는 반박합니다.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장면의 연속. 보는 사람이 더욱 고통스럽다.

동시에 해당 연기를 선보인 아역배우 김소현의 인터뷰도 게재되었습니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김소현은 쓰레기를 맞으며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연기까지 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방영된 장면을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연기하지 않았지만 감정을 보여드려야해서 많이 어렵고 힘들었다'고 토로했고 '앞으로 이 세상에 절대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음 하는 바람으로 촬영했다'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니 일부 네티즌의 지적대로 극중 수연이 상처입는 정도로 충분했을 수도 있는데 제작진이 이런 소란을 기대하고 성폭행 장면을 넣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저 역시 듭니다. 제작진은 폭력으로 이어진 아역 배우 출연장면과 어제의 성폭행 장면이 시청률 반등을 위한 자극적 연출이 아니라 항변하지만 입맛이 워낙 쓰다 보니 의심이 가시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아직 20살이 되지 않은 두 아역배우 여진구, 김소현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을 거란 확신 때문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우리 나라엔 아동학대에 대한 관련 법규가 많이 미흡한 편입니다. 특히 연예계에 종사하는 아동에 대한 법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 충격적인 광주 인화학교의 아동성폭행 사건을 묘사한 영화 '도가니'는 아동 배우에 대한 학대가 아니냐며 아역배우 관련법이 필요하단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역배우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는 쿠건 법(Coogan Act )과 배우조합에서 만든 아역배우 보호법이 있어 기본 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린 연기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 마련되어야하지 않을까.

즉 기본적으로 아역배우들의 노동시간을 나이에 따라 제한하고 아이에게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줄 수도 있는 연기는 최대한 자제하거나 보호 조치가 취해진 상황에서 촬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 연기 이후 상담 치료를 병행하게 하고 후속 조치를 취해줍니다. 어린 아동과 촬영하는 스태프와 연기자는 아이에 대한 교육을 일정 시간 받아야하고 아동 배우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전문교사를 두거나 학교에 꼭 가야한다는 등의 규정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화에서 아동이 학대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성인 배우들도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직접 찍지 않더라도 극중 상황 자체에 대한 우울함으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가지 역에 푹 빠져 우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좋든 나쁘든 영향이 있기 마련인데 어제의 그 장면은 아역배우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런 장면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합니다. MBC와 제작사는 아이를 위해 어떤 매뉴얼을 마련했을까요.

일단 꼭 필요한 장면이어서 연출했다는 제작진의 말을 믿어봅니다. 그렇다 쳐도 우리나라 어린 연예인들이 밤샘 촬영하고 학교에도 제대로 못가고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못 받는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험한 장면을 찍고 대역없이 연기하는 걸 칭찬하는 기사도 희한하게 많은 편이구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야 한번 인상 찌푸리면 그만이지만 연기를 했던 아역배우들에겐 평생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장면이 '사회적 메시지'를 위한 선택이라 백번 인정해도 씁쓸한 이 기분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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