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드라마의 제왕' 드라마가 드라마에게 질문하다

Shain 2012. 11. 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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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은 시청률을 겨루는 경쟁작이지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건 바로 같은 상품의 PPL을 두 드라마 모두 협찬받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로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같은 핸드폰이나 태블릿 PC를 쓰며 같은 방법으로 사진촬영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냉장고와 화장품을 쓰기도 합니다. 특히 '다섯손가락'의 주인공 채영랑(채시라)는 그동안 괴롭혔던 의붓아들이 자신의 친아들임이 밝혀진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정성들여 고가의 화장품을 바릅니다.

결정적으로 유사한 장면은 '냉장고'를 열어 물건을 꺼내는 장면인데 '다섯손가락'의 나계화(차화연)는 유지호에게 곰탕을 가져다 주러 냉장고를 여는 시간에 공을 들이고 '메이퀸'의 이금희(양미경) 역시 냉장고 여닫는 시간에 뜸을 들입니다. 또 '다섯손가락'의 송남주(전미선)와 '메이퀸'의 장인화(손은서)는 극중에서 B브랜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요즘은 등산용품매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경쟁 드라마를 같은 업체가 협찬한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만큼 PPL 시장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도 되고 또 제 드라마 내용이나 장면 하나하나에 PPL이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간섭한다는 뜻도 됩니다.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은 복수극이라는 점 이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과거에는 극중 소품이나 드라마 방송 전후 광고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PPL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방송법이 개정되고 3개 종편 방송이 출범한 이후 드라마 속 PPL이 지나치게 극성스러워진 경항이 있습니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해당 장면이 PPL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볼 수준이 되서 '광고 정말 티나게 하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에게 혐오감을 주면서까지 돈을 들여 광고 장면을 삽입하는지 이해가 안가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해도 해당 제품에 별로 보탬이 될 것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SBS '드라마의 제왕(홍성창 연출, 장항준 극본)'은 이런 드라마 시장을 신랄하게 꼬집습니다. 도저히 오렌지 쥬스를 마실 장면이 삽입될 거 같지 않은 드라마 속 상황에 무리하게 PPL을 넣으라는 3억짜리 협찬사의 요구를 앤서니 김(김명민)은 필사적으로 들어주려합니다. 죽는 상황에 쥬스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작가 정홍주(서주희)는 장사꾼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며 대본 수정을 거절하고 '잠수'탑니다. 뭐 주인공이 죽는 극적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오렌지쥬스를 등장시킬 방법도 묘연했을테구요. 앤서니는 오렌지 쥬스 하나 때문에 보조작가 이고은(정려원)에게 거짓말을 하고 무리하게 드라마를 수정합니다.

무리하게 오렌지 쥬스 마시는 장면을 끼워넣은 제작자 앤서니 김.

아슬아슬하게 촬영이 끝나고 앤서니는 퀵서비스 기사에게 제 시간 안에 테이프를 도착시키면 천만원을 주겠다는 무리한 제안을 합니다. 어제 게재된 '드라마의 제왕' 장항준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드라마에 목숨거는 앤서니 김은 실존하는 몇몇 제작자를 본떠서 만든 인물이고 촬영 테이프 두 개를 나눠 방송국으로 배송하는 장면도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생방송 수준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지방 촬영 중 테이프를 올려 보낼 때 한대가 사고 나면 배송에 실패할 수 있으니 2대에 나눠 보낸다는 이야기가 참 살벌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중에서도 '드라마의 제왕'에서 꼬집은 PPL의 추한 현실은 요즘 한계점을 지난 느낌입니다. 과도한 PPL로 시청자들의 해당 제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든 말든 작품 보다 돈이 중요하고 시청자들은 이게 드라마냐 CF냐며 놀립니다. 별상관 없는 장면에서 로션을 바르는 여주인공들을 보면 드라마의 흐름도 깨져버립니다. 뜬금없이 화장품 선물받는 장면에 어이 없어 채널을 돌린 적도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핸드폰은 S사, 자동차는 B사, 냉장도는 S사, 화장품도 S사 등으로 PPL 강자가 정해져 있고 치킨 PPL은 B치킨이 강세를 보이지만 크고 작은 신생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하긴 했지만 '드라마의 제왕'도 드라마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안타까운 건 이런 드라마 제작의 현실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의 제왕' 조차 PPL에선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제왕'은 전 촬영을 니콘 카메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드라마입니다. 니콘은 이 드라마 제작 지원을 해당 홈페이지에서 광고중인대요. 일부 네티즌들은 극중에서 기자들이 들고 있던 카메라가 모두 니콘임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의 제왕'이 PPL을 꼬집기 위해 삽입한 오렌지 쥬스도 개그맨 장웅의 '팁코쥬스'를 협찬받아 촬영된 장면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김명민이 자주 마시는 녹색 탄산수도 사실 협찬받은게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쪽대본과 생방송 촬영 때문에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그런 상황을 비꼬면서 '드라마의 제왕'도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 스케쥴로 제작 진행중이라 합니다. 아침에 촬영해 저녁에 방송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있질 못하니 드라마 내용처럼 누군가가 목숨걸고 테이프를 들고 고속도로를 달리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차라리 과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동이(2010)'의 생방송 촬영이 그랬듯 위성중계차를 동원했으면 생명의 안전은 그나마 보장될 수 있었을텐데 싶어서 씁쓸하더군요. 뭐 '동이' 제작사의 미지급금 문제로 제작중단되어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요.

현실을 비판하고 있지만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드라마의 제왕'.

일각에서는 '드라마의 제왕'에 출연중인 최시원이 능청스럽게 머리 빈 탑스타 역을 소화해내고 있음에도 최시원 역시 기획사 파워로 밀려들어온 캐스팅이 아니냐 지적합니다. 일부에서 야쿠자 자본이 유입될 정도로 드라마 제작 자본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곤 하는데 야쿠자 와타나베(전무송)가 그 검은 자본의 실체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약돌이, 겜돌이, 우울증, 음치 걸그룹은 외면할 수 없는 연예인의 현실입니다.

신인작가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드라마 작가를 교체하는 비정한 현실도 어디선가 읽어본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비인간적인 드라마의 현실을 비판하고 드라마 밖에서 드라마의 현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웃기면서도 쌉싸름하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시청자가 아닌 드라마 제작 종사자들에게 물어야할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드라마의 제왕'은 작가가 평소 풍자하고싶던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작가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재치있게 삽입한 능력을 높이 사줄만 합니다. 김명민이나 정려원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좋은 연기자구요. 그러나 결국 시청자들이 그동안 지켜보던 드라마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때로는 위험하게 풍자하는 이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도 드라마 시장의 문제를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목숨이 오가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의 현실 조차 드라마의 소재가 된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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