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국민 면접' 대통령 후보 TV 토론의 역사를 퇴보시키다

Shain 2012. 11. 2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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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전쟁 직후라 TV는 커녕 라디오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으나 전쟁으로 부유해진 미국은 TV가 발달하고 자연스럽게 후보들 간의 경합도 라디오에서 TV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공화당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의 CBS TV 토론은 미국 정치사에서 또 세계적인 대통령 선거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바야흐로 선거권을 가진 국민들이 TV 토론하는 후보자들을 보며 그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TV 토론은 TV 컨텐츠로서도 참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민주당, 공화당의 양당제가 유서깊은 미국에서 두 정당의 TV 토론은 이벤트 중의 이벤트입니다. 양당의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들이 1:1로 정책을 두고 토론하는 이 '토론 배틀'은 많은 국민들의 화제를 끌어모으곤 합니다. 마치 스포츠 게임을 벌이듯 두 후보들은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거나 설전을 벌입니다. 한시간에서 한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두 후보의 발언에 따라 실시간 지지율이 표시되고 방송이 끝나면 최종 지지율이 발표됩니다.


1960년 9월 26일.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TV 토론 방송

토론을 보며 감탄하는 부분은 발언의 수위와 단어 선택까지 상당히 신경쓰고 고민해 내뱉는 티가 역력하며 때로는 거침없는 공격도 이루어지지만 두 후보들의 역량이 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TV 토론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인 것처럼 자신들의 기량을 백프로 내보이는 토론을 통해 평소에 얼마나 논리정연한 인물이었고 대담한 사람이었는지 시청하는 국민들은 냉정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TV 토론에서 우세한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라는 법은 없으나 국민들에게 후보를 각인시키기 좋은 기회란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하면 미식축구고 그 어떤 TV 프로그램도 미식축구 시청률을 따라갈 수 없다는데 최근 방송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TV 토론 시청률은 이례적으로 스포츠 경기 시청률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선거제 자체가 달라 선거에 유난히 관심없는 미국인들이라는데 그 정도 관심을 보였다는 게 흥미로운 일입니다. 대통령 후보 TV 토론이 역사를 바꾼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죠. 1960년 케네디와 TV 토론을 벌였던 닉슨은 젊고 패기있고 자신만만하던 케네디에 비해 답답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TV 토론.

우리 나라 역시 90년대부터 대통령 후보 간의 TV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곤 했습니다만 미국처럼 역동적인 맛은 없습니다. 정치 마저 TV 쇼같은 컨텐츠로 둔갑시키는 미국의 방식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으나 후보 개개인의 역량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는 점에서는 TV 토론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 건 상당히 아쉬운 일입니다. 각 지방에서 또는 각 언론에서 후보들의 연설회나 지지를 위한 모임이 열리곤 하지만 일상에 바쁜 일반 대중들이 각 대통령 후보들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보들의 의견과 기량을 겨루는 TV 토론은 거의 유일한 '대 국민 면접'의 기회고 간접선거제인 미국 보다 직선제인 우리 나라에서 훨씬 유용한 수단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 굵직한 '토론 배틀' 한번 없었다는 건 국민들로서는 기회 박탈이고 권리 침해가 아닐까 싶을 지경입니다. 각 정책에 대한 정당의 입장과 생각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정책을 사수할 것인지 설전을 벌이고 자신들의 한계와 장점을 분명히 피력할 수 있어야 진짜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후보가 확정되자 마자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했습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 후보의 TV 토론 역사는 상당히 짧다.

박근혜 후보의 어제 '대선 후보 TV토론회'는 21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의 단일화 토론에 대한 형평성 차원에서 이루어진 방송이라고 합니다. 두 후보에게 기회를 주었으니 다른 후보인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는 말이었는데 둘 이상이 나와 의견을 나눈다는 뜻의 '토론'의 의미까지 바꾸며 진행된 어제의 '국민 면접 토론회'는 각본이 준비된 일종의 토크쇼, 연설회에 가까웠습니다. 단독으로 토론회를 가지니 장점을 드러내려 해도 비교 대상이 없고 설득하려 해도 대화할 사람이 없는 일방적인 행사였다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가 'TV 토론'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또 얼마나 더 나은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비교 대상이 사라진 가운데 제한된 주제와 질문을 두고 각본에 짠듯 '토론회'를 이어가다니 이게 본인으로서도 큰 손해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책과 능력은 상대에 비해 돋보여야 더욱 빛나는 법이고 일방적으로 연설하고 보여준다고 해서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 후보와의 TV 토론회를 제안했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특히 박근혜 대선캠프의 외주 제작으로 진행되었다는 어제 방송에서 시간 제한을 이유로 질문을 차단하고 박근혜 후보 측은 준비된 질문에 대한 답변만을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대한 맨몸으로 부딪혀 호감을 얻어내야할 TV 토론회에서 아군으로부터 보호받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대통령 후보들 TV 토론회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새로운 능력자로 평가받았던 반면 박근혜 후보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함으로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더욱 강화시킨 셈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TV 토론회의 역사를 퇴보시킨 '국민 면접 TV 토론회'

무엇 보다 안타까운 건 TV라는 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이 정치와 대통령 후보에게 한발 더 접근할 수 있던 TV 토론과 대통령 선거의 역사를 퇴보시켰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최대한 국민과 접촉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일을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더 토론에 출연하겠다고 자원하는 의지와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구시대의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TV 토론을 피해왔습니다. 자신들에게 편리한 연설이나 대본이 준비된 토크쇼를 환영했었죠.

지난 세월 동안 그런 후보들을 억지로라도 카메라 앞에 앉혔던 우리 나라 '대통령 후보 TV 토론'의 역사가 박근혜 후보의 '단독 토론'이라는 괴상한 형식의 토론으로 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단독 토론을 개최한 전례가 있는데 누가 자신에게 불리한 TV 토론에 나가 설전을 벌이고 약점을 드러낼 생각을 하겠습니까. 비겁하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또 상대방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단독 토론'같은 꼼수를 궁리할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문재인 후보와의 '진짜 토론회'를 준비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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