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백광현 왜 이렇게 여복이 많은가 했더니

Shain 2012. 11. 2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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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여자가 잘 따르는 복을 '여복(女福)'이라 한답니다. 남성형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식 중 하나가 이 '여복' 아닐까 싶은데 대개 사극의 주인공이 되는 남성들은 여자를 밝히지 않아도 정략적 혼인으로 여러 왕후와 아내를 두었고 자식도 많이 낳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그러니 현대인들에게는 마뜩치 않아도 이런 여성편력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다만 요즘에는 처첩을 여럿 거느린 걸 자랑삼던 과거 사극과 다르게 운명적 사랑은 하나인데 정치적으로 혼인했다 뭐 이런식으로 얼렁뚱땅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의'는 사극이긴 하나 많은 부분 현대적 관점에서 상황을 설정합니다. 내의원의 의생과 교수, 수의와 어의 등은 현대 의과대학의 학생과 교수, 병원장, 과장의 관계와 유사하게 그려지고 말괄량이 숙휘공주(김소은)와 곽상궁(안여진), 호위무사 마도흠(이관훈)의 스스럼없는 관계도 많은 부분 현대인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우리가 깨알같은 재미라며 흐뭇하게 보는 코믹한 장면 대부분이 과거와 현대를 연결시킨 그런 노력 덕에 만들어진 것이죠. 나귀타고 혜민서 왔다는 이병훈 PD와 백광현(조승우)의 만담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환자진단하랬더니 나귀 이야기나누는 백광현. 이병훈 PD님 맞으시죠?

시골노인같은 이병훈 PD의 능청스런 말도 재밌지만 그걸 또 재치있게 받아치는 백광현 조승우도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잔잔한 웃음이 멈추질 않는게 야 조승우 역할 진짜 괜찮다 싶더라구요. 백광현에게 시집가려고 인선왕후(김혜선)와 명성왕후(이가현)을 속여넘기는 숙휘공주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지금이야 덤덤하게 백광현을 도와주고 있지만 강지녕(이요원)도 백광현을 운명적으로 마음에 담을 여인이니 조선 최고의 여성들이 백광현에게 목을 매고 있는 셈입니다. 여복도 이런 여복이 없습니다.

'마의'의 캐릭터 설정에 따르면 백광현에게는 지녕과 숙휘 외에도 또 한명의 운명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극중 정성조(김창완)의 며느리인 서은서(조보아)로 정성조의 아들이 죽어 청상이 되자 친정에서 살게된 여성입니다. 대제학 집안의 귀한 여식이지만 과부이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의원에게 가지 못하고 자결하려 합니다. 어제 등장한 이성하(이상우)의 친구 서두식(윤희석)은 천민 출신 의생인 백광현이라면 양반가에 소문내지 않고도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을 것같아 막무가내로 백광현을 끌고가고 백광현은 인의 수련을 받은 적이 없어 끝내 은서를 살리지 못합니다.

어쩌다 보니 여복많은 백광현. 그와 만나는 운명적인 세 여인.

예고편을 보니 죽은 줄 알고 보관소에 눕혔던 은서가 살아나고 때마침 의생들 때문에 그곳에 갇혔던 광현이 은서를 살려내 생명의 은인이 되는 모양입니다. 과부라는 표현 대신 자주 쓰는 말로 '미망인(未亡人)'이란 단어가 있는데 미망인의 본래 뜻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하지만 아직 죽지 않은 여자란 뜻입니다. 그 시절에는 남편이 죽으면 상복을 입고 남은 평생 수절하는게 미덕이었습니다. 그런 청상인 서은서가 자결했다 살아난 것인데 백광현이 어떻게 그런 서은서를 살게 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지녕과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얽혔고 숙휘공주와는 이타인 거리에서 만났지만 서은서는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만나다니 백광현의 운명이 참 재미있습니다. 워낙 특별하게 얽힌 사이들이라 세 여인들 모두 백광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고 백광현은 본의 아니게 여복이 타고난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신분의 차이 때문에 숙휘공주가 제일 먼저 백광현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서은서는 워낙 지체높은 양반가의 딸이라 쉽게 백광현과 가까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백광현에게는 이 세 여성말고도 또다른 여성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소가영역으로 출연한다고 알려진 엄현경. 그리고 백광현 주변의 여러 의녀들.

연인이 될지 아니면 의학적 동료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사암도인(주진모)을 따라다니는 소가영(엄현경)이란 여성이 백광현에게 나타날 또다른 여인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거기다 어제 교수 권석철(인교진)의 명령으로 의녀들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백광현을 추종하는 또다른 의녀들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마의'에 등장하는 혜민서 의녀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미인들이니 여복도 이런 여복이 없네요. 설정에 의하면 의녀 사인방 중 하나인 정말금(오인혜)도 백광현을 보좌하는 역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백광현이 이렇게 특별한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부분은 백광현과 이명환(손창민)의 대화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화려한 왕족의 암투를 묘사한 드라마는 많아도 열악한 천민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민중사극이 드뭅니다만 드라마 '추노(2010)'에서 천민 노비들의 실생활이 극화된 적이 있습니다. 노비들은 양반이 먹다 남긴 물림상으로 밥을 비벼먹고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한겨울에 물고기를 잡습니다. 털옷을 껴입은 양반들은 그 옆에서 여종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기생들과 노닥거립니다.

'천한 것은 죄가 아니다' 백광현의 말에 굴욕을 느낀 이명환.

그 시대의 천민은 동물 보다 못한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명환이 추기배(이희도)에게 말값이 네 목숨값 보다 비싸다 한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양반이 지나가면 당연히 납작 엎드려야 했고 양반이 말에 오르거나 진땅을 밟을 땐 엎드려 발판 역할을 해야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세상의 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남편이 죽으면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 높은 신분의 공주도 결혼을 잘못하면 남은 평생 조롱받으며 지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민 백광현은 그 여인들과 권력자들 앞에서 절대 꿀리지 않습니다. '천한 것은 죄가 아니다'며 이명환에 맞서는 백광현은 사람과 동물은 똑같은 생명이며 천하다는 이유로 죄인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천한 신분을 숨기고 어의가 된 이명환은 그런 당당한 백광현에게 굴욕을 느끼고 분노합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사명에 책임을 다하며 허물없이 그녀들을 대하는 백광현에게 그 시대의 여성들이라면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청상을 청상이 아닌 한명의 목숨으로 보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여복이 많으니 뭇남성의 질투를 한몸에 받을 백광현.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백광현의 특별한 매력은 그 시대 여인들에게 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단한 이명환 조차 신분의 굴레가 무서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 겁없는 남자 백광현은 공주든 대가집 청상이든 규수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친절하게 공평하게 맞이합니다. 천한 신분 따윈 상관없이 인의가 되겠다며 실력을 쌓습니다. 신분과 성별의 제약에 고통받고 남성에 의해 신분과 처지가 결정되던 그녀들에겐 그 누구 보다 드라마 속 백광현이 돋보이지 않았을까요.

실존인물 백광현은 39세의 나이에 전의감 치종교수로 입문하여 내의원 생활을 시작합니다. 홀로 침술을 익혔다는 것으로 보아 천재적 능력을 타고났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백광현은 이제 간신히 의생이고 교수가 될 날이 멀어보이니 당분간 세 여인들의 사랑과 뭇남성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을 운명인 것 같습니다. 일단은 잘 생기고 똑똑하고 개념도 똑바른 거기다  점잖게 백광현을 대하는 이성하야 말로 강지녕을 사이에 둔 최고의 라이벌이니 제일 먼저 이성하와의 관계부터 해결봐야할 것 같습니다. 한편 여복많은 백광현의 활약을 등에 업고 이번주 마의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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