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민중사극 '마의'는 왜 백광현을 선택했을까

Shain 2012. 11. 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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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문제로 구설에 오른 방송국 MBC도 '드라마 왕국'이란 별칭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MBC 사극 불패신화를 만든 이병훈 PD와 '여명의 눈동자(1991)'를 만든 김종학 등 색깔있는 여러 연출자들이 대활약하였고 임충과 신봉승, 김수현을 비롯한 작가들도 그 시기에 MBC에서 이름을 떨치던 사람들입니다. 주제와 형식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드라마가 그때 제작되었는데 실험적 성격의 사이코 드라마, 수사극, 연대기 사극, 매주 한편씩 방영된 단막극들은 지금 봐도 놀라운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드라마의 제왕'이 아니라 '드라마의 전설'이 80년대에 태어난 것입니다.

제가 그중에서 '마의'의 이병훈 PD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민중사극'을 흥행시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읽는 사서 속 역사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씌여져 사극은 필연적으로 왕족 중심으로 전개디는 드라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각 시대를 살던 백성들의 삶은 자세히 기록된 것이 없으니 특정 시대 백성들의 생각과 생활 고통과 희망을 묘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임꺽정이나 홍길동, 홍경래나 동학운동을 사극으로 제작한다쳐도 곧 소재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조선왕조오백년 파문(1989)'과 ''암행어사(1981). 왕실 중심의 사극을 민중중심으로 이끌어갔다.

조선의 왕족은 전체 백성의 1%가 될까 말까합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벌어지는 후궁들의 암투, 왕족들의 사랑타령이 화려한 드라마로 탄생하는 동안 잡초처럼 역사를 헤쳐온 민초들의 삶은 외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병훈 PD는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병훈식 사극'을 시도합니다. MBC 연대기식 사극인 '조선왕조오백년(1983)'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퓨전사극으로 제작된 '파문(1989)'는 정조 시대를 사대부와 왕족이 아닌 백성의 눈에서 묘사한 작품으로 최초의 퓨전사극으로 기록됩니다. '파문'은 민중사극은 아니나 사극의 형식과 시점을 바꿨다 부분에 의의가 있습니다.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조선왕조오백년' 전체 시리즈는 상당히 기형적입니다. 이성계를 미화해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가 하면 당쟁같은 불편한 내용은 삭제, 축소하여 제작하는 등 '조선왕조오백년'은 거의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를 드라마로 구현했음에도 여러 부분 문제가 많습니다. 실록을 기반으로 했으니 왕실 중심으로 사극임은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그 시리즈 중 한편인 '파문'과 이병훈 PD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암행어사(1981)'가 더욱 특별합니다. 두 드라마는 왕실에서 민중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실존인물의 성공신화를 모티브로 만든 '허준(1999)'과 '대장금(2003)'

민중사극과 기존 사극은 어떻게 다를까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관계로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지만 우선 시점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기존 사극이 왕족 중심의 입장을 묘사한다면 민중사극은 권력자나 왕이 아닌 민중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기존의 사극이 권력자의 입장에서 특정 정책이나 역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피력한다면 민중사극은 자연스럽게 당하는 입장의 고통과 불합리를 다루게 됩니다. 현대극의 재벌 드라마와 서민 드라마가 나뉘듯 사극도 주인공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추노(2010)'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인 민중사극입니다.

'마의'의 한장면을 예로 들면 왕족이나 관리의 입장에선 허가받지 않은 마의가 사람에게 시술하였으니 엄히 벌을 주는 것이 맞다고 기록했을테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피치 못해 침을 꽂은 마의의 입장에선 내가 천한 마의라서 내의원 인의들이 업신여겼다고 묘사할 것입니다. 이런 주인공과 입장의 차이가 드라마 전체의 색깔과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는 점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방영된 김운경 작가의 '짝패(2011)'가 대중성 부분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듯(그래도 당시 시청률 1위였습니다) 정통 민중사극 역시 대중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보는 일이란 현대인들이 적나라한 서민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큼이나 괴롭고 씁쓸한 일입니다. 이병훈 PD는 그런 민중사극에서 한발 나아가 새로운 흥행 사극 공식을 만들어냅니다. 즉 보잘것없는 주인공이 크게 성공하는 내용으로 국민사극이라 불리는 '허준(1999)'이 대표적입니다.

'마의' 백광현의 혜민서 의생시험은 허구이지만 보는 재미가 있다.

'암행어사'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삶을 조명하며 부패한 관리들를 응징하는 장면으로 카타르시스를 주었습니다. 주인공 암행어사(이정길)가 위험에 처할 때 마다 시청자들은 어서 빨리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외침이 들리길 기다립니다. 거지 차림으로 암약하며 정보를 모으던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고 탐관오리의 죄를 하나하나 따져물을 땐 몇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반면 '허준'과 '대장금(2003)'에서는 성공한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악의 무리를 처벌하여 보는 재미를 줍니다.

최근엔 한발 나아가 시대적 메시지를 담기도 합니다. 거의 유일하게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산(2007)'에서는 참 지도자에 대한 고민을,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마의(2012)'에서는 현대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견될 수 있는 의생 시험을 연출하여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정치와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표현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는 종친에게 천거받아 내의원에 들어간 백광현을 혜민서 의생 시험을 치러 의생이 된 것으로 설정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상인물들을 백광현(조승우) 주변에 배치하여 출세와 성공 그리고 의술에 대한 고민을 담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공지향적인 이 시대에 왜 하필 이들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처음 드라마 속 허준이 의원이 되기로 한 까닭은 서자인 자신이 면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의원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장금은 의녀가 되면 다시 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녀 장덕의 말을 듣고 의술을 배웁니다. 백광현은 마의가 사람에게 시침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자 자신도 인의란 것이 되어볼 것이라 작심합니다. 그들이 처음 의술을 배울 때는 '출세'라는 다분히 통속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현대인들이 돈 잘 버는 대학과 직장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묘사한 사극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숙휘공주(김소은)를 비롯한 인선왕후(김혜선), 현종(한상진), 명성왕후(이가현)같은 왕족 실존인물들은 사건 속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처럼 처리되는 게 기존 사극들과 달라 흥미롭기도 합니다. 과거의 인물인 동시에 현대의 우리들이기도 한 주인공들이 반갑고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건 그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중사극의 최대 문제점은 왜곡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민중사극은 많은 부분이 창작되기에 끊임없이 왜곡 논란이 있습니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어도 드라마 내용은 '소설 백광현'이 되어버립니다. '대장금'같은 경우 아예 드라마 자체가 전부 기록과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저 역시 지나치게 사실과 다른 묘사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구요. 그러나 이런 '민중사극'은 왜곡 보다는 어쩌면 백광현이란 의원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을 먼저 고려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산도 없고 뒷배도 없는 서민이 성공하기 힘든 이 시대에 하필이면 천한 마의 출신으로 어의가 된 백광현을 주인공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부분을 말입니다. '바닥하고 어울리면 너도 바닥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무교탕반의 여주인 주인옥(최수련)과 이성하(이상우)를 비롯한 하나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원이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백광현의 노력까지 험난하고 희망없는 시대일수록 기죽지 않고 밝게 헤쳐나가라는 시대적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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