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숙휘공주 불행했던 공주들의 역사를 새로 써라

Shain 2012. 11. 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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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공주들은 어떤 의미에선 골치덩어리였습니다. 귀한 핏줄이나 물려받은 작위는 공주나 옹주라는 호칭 뿐 별다른 특권도 없고 왕실에 적극적으로 간섭도 못하면서 각종 역모 사건이 발생하면 줄줄이 엮여가기 좋은 위치였습니다. 아무리 공주의 남편이 관직에 오를 수 없어도 역모에 연루된 왕족과 가까이 지냈단 이유로도 충분히 처벌받을 빌미가 되었습니다. 공주의 남편과 시댁은 아내나 며느리가 아닌 상전을 모신 셈이라 불편해했고 관직에 나가지 못해 허송세월하는 부마들은 바람을 피워 공주들의 속을 썩였습니다. 거기다 공주가 죽으면 정실 부인을 얻을 수 없었죠.

'마의'에 등장하는 숙휘공주(김소은)의 모습을 보면 불행하게 살았던 진짜 효종의 딸들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숙휘 하나 만이라도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기대가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공주들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비극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기가 쎈 공주였던 영조 때의 화완옹주는 결국 뒤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야사로 전하는 세조와 세희공주(드라마 '공주의 남자' 이세령)의 이야기 만이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인 삶을 살던 공주의 이야기라 알고 있습니다.

인선왕후와 현종은 효종을 따라 볼모 생활을 했고 심양으로 가던 도중 숙신공주를 잃었다.

전에도 포스팅했듯 '마의'의 등장하는 숙휘공주는 본래 효종의 넷째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백광현(조승우), 강지녕(이요원) 등과 함께 공주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루고 싶어하는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묘사됩니다만 숙휘공주는 상당히 불행하게 살았던 공주들 중 한명입니다. 또 효종의 큰딸 숙안공주를 대신해 청나라에 간 의순공주(義順公主)는 조선 왕실이 진짜 공주들을 청나라로 보내기 싫어 양녀로 들인 불운한 여성입니다. 숙휘공주의 큰언니 숙안은 당시 15세였으나 2살이라 거짓말하고 몰래 혼인했습니다

효종의 10촌뻘인 금림군 이개윤의 딸 의순공주는 효종의 딸들을 대신해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숙휘공주 자매들은 먼 친척이던 의순공주의 희생으로 지켜진 것인데 의순공주는 도르곤이 일찍 죽자 다른 황족에게 재가합니다. 말이 재가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두번째 남편도 죽자 아버지 이개윤과 함께 어렵게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의순공주에 대한 눈초리는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면 차라리 거기서 죽지 왜 돌아왔느냐는 힐난의 눈빛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도 파직당하고 의순공주의 봉작도 박탈당하고 불행하게 살다 죽고 맙니다.

유난히 귀여움을 받은 듯한 숙휘공주. 의순공주의 희생으로 지켜진 자매들의 행복.

진짜 공주를 청나라로 보내기 싫어한 것은 청나라 따위와 조선 왕실의 피를 섞을 수 없다는 자존심이었다고 칩시다. 그러나 공주들을 대신해 의순공주를 보낼 때는 양녀로 삼더니 돌아오니까 수치러운 일을 저지른 반역자인양 괴롭힌 조선의 태도는 참으로 속좁고 못났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보호받아야 당연한 의순공주는 남은 평생을 손가락질 받았고 사람들은 이개윤과 의순공주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습니다. 그 수모가 고스란히 숙휘같은 진짜 공주들의 몫일 뻔했는데 의순공주가 대신 그런 일들 당한 것입니다. 숙안공주가 보내졌다면 인선왕후와 현종을 비롯한 숙휘의 자매들은 평생 가슴아파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의순공주가 그런 모욕을 당한 이유는 수양딸이든 어쨌든 조선의 공주로서 청나라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공주로서 책임이었고 왕족으로서 백성에 대한 의무였기 때문입니다. 의순공주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어땠는지는 알길없으나 공녀를 요구하며 위세등등하던 청나라의 분위기로 보아 왕가의 핏줄 중 하나는 반드시 청나라로 갔어야하는 상황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숙장금'이 어쩌니 하며 음식을 만들고 내탕금을 꺼내서 마의에게 비단을 가져다 주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 공주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을까.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은 이해한다 쳐도 남의 딸은 괜찮아도 공주는 청나라로 보낼 수 없다는 왕실의 이중적인 태도. 그리고 나라를 위해 적국에 시집갔다 고생하고 돌아온 의순공주를 나라의 수치라며 비난하고 냉랭히 대하는 조선왕실과 백성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지금 환하게 웃고 있는 드라마 속 숙휘공주가 과연 그래도 되는 입장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현세자와 효종, 현종으로 이어진 그때의 삶이 백성들에겐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귀여운 그녀에게 공주로서의 책임을 씌우고 싶지 않다가도 의순공주를 생각하면 뭔가 참 안타깝죠.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고 역사는 역사다라고 별개로 분류하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백광현은 조선시대의 질서를 거스르고 신분상승을 이뤄낸 대표인물입니다. 강지녕 역시 사대부가의 여성이란 자신의 굴레를 깨고 의녀로 거듭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드라마 분위기에 맞춰 생각할 때 공주 역시 자신의 한계를 깨고 한단계 발전해야할 책임같은 것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 보다는 국사를 먼저 생각해야할 공주의 신분이 그녀의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겠지요.

철없고 귀엽기만 한 숙휘공주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금 효종의 아내이자 현종(한상진)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인선왕후(김혜선)는 첫째딸 숙신공주를 청나라로 가던 도중 잃어야했습니다. 볼모로 잡혀가던 왕자의 어린 딸이 유모에 등에 업혀 죽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숙휘공주 역시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자식들도 요절하거나 자식없이 죽는 등 불운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연려실기술'같은 책에는 숙휘공주가 아버지에게 수치마 즉 사치스러운 예쁜 옷을 사달라고 했다가 아버지 효종이 '나 죽거든 네 엄마에게 부탁하라'고 해 포기한 대목도 적혀 있습니다.

끝내 사주지 않았다는 걸로 보아 아버지 효종에게 떼를 쓴 꽤 귀여운 공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공주가 갓 스무살이 넘어 남편을 잃고 절손한 채로 홀로 살다 죽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불행입니다. 그런 그녀가 긍정적으로 살다 죽었을지 아니면 불행에 시름하며 비관적인 태도로 떠났을지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일 것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예쁨받던 깜찍한 공주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 백광현과 이뤄질 수 없는 그녀의 운명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아직 앳된 소녀같은 얼굴에 백광현만 보면 어쩔 줄 모르고 부끄러워하는 공주가 언젠가는 원치않는 결혼을 해야합니다. 그런 책임이 주어진 공주에게 자신의 운명을 직접 개척한다는 게 어떤 뜻일까요. 백광현, 지녕과 함께 혜민서의 백성들을 돌보고 고통들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운명은 아닐까요. 철없던 시절이 지나고 남은 여생을 공주로서 만족하며 살게 되는 것 그것이 그녀의 남은 행복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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