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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에서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거의 빠지지 않는 주인공들입니다. 삼국 시대 드라마를 만들었다 하면 선덕여왕이나 김유신 이야기가 거의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극의 절대 다수는 숙종 시기를 전후해서 만들어집니다. 몇년새 수없이 많은 사극이 많들어졌고 또 사람들을 감동시킨 대작이 다수 탄생했습니다만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잘 알고 익숙한 시기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아 참신한 사극은 흔치 않습니다. 사서를 기반으로 역사 속 인물을 재해석했느냐 아니냐는 드라마를 많은 부분 바꿔놓기도 합니다.
내년에 김태희 주연의 또다른 '장희빈'이 만들집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다 알고 있는 드라마 속 장희빈은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기 전과 후로 그 평가가 달라진 대표적 인물입니다. 70, 80년대의 장희빈이 민간에 전해지던 '요화 장희빈'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장희빈은 권력 싸움 속에서 독해질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지금 드라마 '마의'에 등장하는 현종(한상진)의 비 명성왕후(이가현)가 숙종과 사랑에 빠진 장희빈이 장렬왕후 처소의 궁녀란 이유로 쫓아내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그렇게까지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가가 아무리 천재적이라도 극복할 수 없는 사극의 한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즉 실존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작해내는게 요즘 사극의 대세라지만 사서 속 기록을 모두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극중에서 인선왕후(김혜선)를 잘 모시며 숙휘공주(김소은)를 두둔하고 매사에 너그러운 척 인자하게 웃고 있는 명성왕후는 서인 세력의 필두로 남편 현종이 후궁을 두지 못하도록 압박한 사납고 지독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현종은 오래 왕위에 있던 왕들 중엔 거의 유일하게 후궁이 없습니다.
남편 현종이 죽고 나서는 그 성격이 더욱 극악해졌는데 '홍수의 변'을 일으켜(왕족 세 사람이 궁녀와 관계른 맺었다는 고변으로 이 사건은 조작이라는 평이 우세한 것 같더군요) 아들을 좌지우지하려 합니다. 배우 이가현이 아무리 예뻐도 명성왕후가 그런 평가를 받는 여성임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은 숙종 22년까지 생존해 있던 인물입니다. 그 유명한 장희빈이 숙종 14년에 소의에 올랐으니 사서대로 백광현의 일대기를 창작하려면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도 거론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드라마는 이런 부분들을 생략하거나 임의로 수정합니다.
우선 글을 읽을 줄 몰랐다는 마의 백광현의 기록을 바꿔 어릴 때부터 한자를 읽고 각종 의서에 통달한 것으로 설정했고 이야기를 숙종 시대까지 끌고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전작인 '동이(2010)'에서 숙종 시대를 묘사한 적 있으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무엇 보다 효종의 네째딸인 숙휘공주를 인선왕후의 외동딸로 설정한 건 천방지축에 말괄량이인 그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본래 인선왕후에게는 다섯명의 공주가 있었고 큰딸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지만 나머지 네 공주는 모두 시집가서 잘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1653년 정제현이란 사람과 결혼한 숙휘공주는 당연히 마의 백광현과 맺어질 수가 없습니다. 왕족과 천민의 로맨스는 애초에 불가능한게 조선 왕실이고 공주의 바깥 나들이는 아예 금지시키다시피 했으니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도 도무지 성립이 불가능한 연인임을 충분히 알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백광현 때문에 유기견 보호소를 차려버린 숙휘공주. 나란히 앉아 가슴설레게 입을 맞추고 강아지를 치료하는 백광현에게 두근두근하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공주의 짝사랑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상궁 마마가 말려서도 아니고 호랑이같은 어머니 인선왕후의 불벼락 때문도 아니라 작가가 날고 기어도 이 귀여운 공주의 짝사랑이 안될 거라는 걸 아는데 아니 웬일 화면에 숙휘공주만 등장하면 아 '저 커플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워낙 숙휘공주를 연기하는 김소은이 깜찍하고 능청스럽게 10대의 공주 역할을 잘 소화하기 때문인 것도 같고 조승우와 김소은이라는 커플이 예상외로 꽤 잘 어울려서인듯도 합니다. 공주만 나오면 이 드라마가 사극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고 화면이 화사해보이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요.
강지녕(이요원)이 아프다는 핑계로 외출을 허락받은 숙휘공주가 아픈 강아지를 안고 백광현을 불러내는 장면은 어제 방영분 중에서 가장 흐뭇한 장면이었습니다. 공지의 호위무사에서 졸지에 유기견 헌터가 되버린 마도흠(이관훈)의 고통이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바라보게 되더군요. 이 정도 흡입력이면 '공주의 첫사랑'으로 드라마 제목을 바꿔도 될 것같습니다. 아니 이 드라마를 실존인물 '백광현' 이야기가 아닌 창작극으로 바꾸기라도 해야지 저 숙휘공주가 사랑에 실패하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지 뭡니까. 저렇게 좋아하고 따르는데 백광현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어떻게 시집을 가나요.
물론 실제 역사 속 두 사람은 연인으로 설정되기엔 나이차이가 제법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광현의 출생시기는 인조 반정 이후로 1625년경으로 추정되고 숙휘공주는 1642년생으로 두 사람은 거의 아버지와 딸 뻘의 나이차이입니다. 백광현은 종기 다루는 한방 외과의 실력도 좋았지만 넉살좋고 잘 웃는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같습니다. 이런 사실과의 괴리를 알면서도 자꾸만 숙휘공주와 백광현을 엮어주고 싶은 건 그만큼 두 사람의 캐릭터 궁합이 좋다는 뜻이겠죠. 아 정통사극을 추구하던 제가 이런 생각이 해보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상상력을 하나 더 보태서 숙휘공주와 백광현의 인연을 억지로 엮자면 뭐 못할 것도 없습니다. '임금님의 첫사랑'도 한때 유행했고 창작 사극이 범람하는 요즘이니 공주와 마의의 첫사랑이란 이야기도 괜찮겠지요. 백광현은 숙종 23년 경 즉 1697년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숙휘공주는 그 전해인 숙종 22년, 1696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숙종이 병문안까지 직접 갔다는 것으로 보아 평생 백광현을 좋아하던 공주의 마지막길을 의관 백광현이 마무리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죽는 순간에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애절하고 로맨틱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요?
내년에 김태희 주연의 또다른 '장희빈'이 만들집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다 알고 있는 드라마 속 장희빈은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기 전과 후로 그 평가가 달라진 대표적 인물입니다. 70, 80년대의 장희빈이 민간에 전해지던 '요화 장희빈'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장희빈은 권력 싸움 속에서 독해질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지금 드라마 '마의'에 등장하는 현종(한상진)의 비 명성왕후(이가현)가 숙종과 사랑에 빠진 장희빈이 장렬왕후 처소의 궁녀란 이유로 쫓아내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그렇게까지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인자하게 웃고 있지만 명성왕후는 장희빈의 비극을 초래한 독한 여성이다.
남편 현종이 죽고 나서는 그 성격이 더욱 극악해졌는데 '홍수의 변'을 일으켜(왕족 세 사람이 궁녀와 관계른 맺었다는 고변으로 이 사건은 조작이라는 평이 우세한 것 같더군요) 아들을 좌지우지하려 합니다. 배우 이가현이 아무리 예뻐도 명성왕후가 그런 평가를 받는 여성임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은 숙종 22년까지 생존해 있던 인물입니다. 그 유명한 장희빈이 숙종 14년에 소의에 올랐으니 사서대로 백광현의 일대기를 창작하려면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도 거론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드라마는 이런 부분들을 생략하거나 임의로 수정합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실제 역사의 차이는 이런 것. 애초에 불가능한 사랑이다.
그러니까 1653년 정제현이란 사람과 결혼한 숙휘공주는 당연히 마의 백광현과 맺어질 수가 없습니다. 왕족과 천민의 로맨스는 애초에 불가능한게 조선 왕실이고 공주의 바깥 나들이는 아예 금지시키다시피 했으니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도 도무지 성립이 불가능한 연인임을 충분히 알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백광현 때문에 유기견 보호소를 차려버린 숙휘공주. 나란히 앉아 가슴설레게 입을 맞추고 강아지를 치료하는 백광현에게 두근두근하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공주의 짝사랑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아무도 보지 못한 공주님의 첫사랑.
강지녕(이요원)이 아프다는 핑계로 외출을 허락받은 숙휘공주가 아픈 강아지를 안고 백광현을 불러내는 장면은 어제 방영분 중에서 가장 흐뭇한 장면이었습니다. 공지의 호위무사에서 졸지에 유기견 헌터가 되버린 마도흠(이관훈)의 고통이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바라보게 되더군요. 이 정도 흡입력이면 '공주의 첫사랑'으로 드라마 제목을 바꿔도 될 것같습니다. 아니 이 드라마를 실존인물 '백광현' 이야기가 아닌 창작극으로 바꾸기라도 해야지 저 숙휘공주가 사랑에 실패하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지 뭡니까. 저렇게 좋아하고 따르는데 백광현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어떻게 시집을 가나요.
이 두 사람 장면만 나오면 역사를 바꿔버리고 싶네. 흐뭇한 숙휘공주와 백광현 커플.
상상력을 하나 더 보태서 숙휘공주와 백광현의 인연을 억지로 엮자면 뭐 못할 것도 없습니다. '임금님의 첫사랑'도 한때 유행했고 창작 사극이 범람하는 요즘이니 공주와 마의의 첫사랑이란 이야기도 괜찮겠지요. 백광현은 숙종 23년 경 즉 1697년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숙휘공주는 그 전해인 숙종 22년, 1696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숙종이 병문안까지 직접 갔다는 것으로 보아 평생 백광현을 좋아하던 공주의 마지막길을 의관 백광현이 마무리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죽는 순간에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애절하고 로맨틱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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