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변신 퀘스트를 수행중인 백광현과 참신한 몬스터 정성조

Shain 2012. 10. 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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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 중에는 이병훈 PD의 사극을 게임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롤플레잉 게임 즉 RPG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감히 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퀘스트를 어렵게 수행하면서 성장하고, 퀘스트를 반복하다 맨 마지막에는 '최종보스'를 물리치고 성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대장금(2003)'에 등장한 장금(이영애)의 퀘스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 물리치기, 최고상궁 경합에서 이기기 같은 것들이 있을테고 최종보스는 최상궁(견미리)이 되겠죠. 이야기 흐름상 주인공에 맞서는 '중간보스'나 협력하는 NPC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대부분 실존인물이라 절대 죽거나 패배할 리 없습니다. 때로 퀘스트에 실패해도 목숨을 잃지는 않습니다. 이병훈 PD의 사극이 뻔하고 식상하다고 하면서도 재미있게 보는 건 어쩌면 이런 게임같은 연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RPG치고 결말이 뻔하지 않은 게임은 드물고 거기다 도전하는 대다수가 실패할 만큼 엄청나게 어려운 게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그 게임에 도전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재미가 보장되기 때문이겠죠. 요즘처럼 머리아픈 시대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만큼 좋은 점도 없습니다.

첫번째 퀘스트를 깨야하는 강지녕과 백광현. 원인 모를 역병이 퍼지고 있다.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에게도 첫번째 퀘스트가 주어졌습니다. 우역이 발생해 사복시 관원들을 따라 이천 지방으로 내려갔더니 사람들도 소들과 똑같은 증세로 죽어갑니다. 소를 해부해 장출혈을 확인하고 이 떼죽음이 전염병이 아니라 독 때문이라 판단한 백광현은 혜민서 제조 고주만(이순재)에게 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물과 물을 확인해도 사람과 동물을 함께 죽게한 독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고주만을 곤란하게 하려는 좌의정 정성조(김창완)의 계략으로 병이 발생한 곳에 약재 공급이 끊어집니다. 사람들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니 환자들은 죽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백광현과 함께 병이 발생한 현장으로 내려온 강지녕(이요원)까지 발병하여 증세를 보이자 백광현은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하죠. 차라리 두창이라 하고 소들을 모두 죽게 내버려뒀으면 이렇게까지는 안되었을텐데 싶어 자책합니다. 소나 말, 개, 고양이를 다루는 마의로서는 뛰어나지만 아직까지 인간을 다루는 의학을 배우지 않은 백광현에겐 너무나 어려운 퀘스트가 내려진 것 같습니다. 이병훈 PD의 사극 중 처음부터 이렇게 어려운 퀘스트가 설정된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뭐 말하자면 마의가 '인의'로 변신하는 변신퀘스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백광현의 스승이될 NPC 고주만, 그를 방해하는 중간보스 정성조.

거기서 돋보이는 역할이 악역 정성조입니다. 배우로 활약중인 김창완이 종종 다른 현대극에서 색깔있는 악역을 맡은 적이 많습니다만 이런식의 악역을 맡은 건 또 처음인 거 같거든요. 권력에 욕심이 있고 각종 음모를 숨길 정도로 음흉한 구석도 있으나 의관 이명환(손창민)에게는 이상한 배려도 할 줄 압니다. 평소 못마땅해 하던 고주만의 대처 능력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약재 공급을 끊었다는 사실을 이명환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자네도 의원이니 내 방법이 썩 마음에 들진 않을거다'라고 말하는 특이한 악역입니다.

정성조라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김창완이 맡은 정성조가 '마의'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어색하면서도 눈에 띄는 연기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김창완은 현대극에서는 자기 역을 잘 해내는 배우이나 '마의'에서는 사극 말투를 잘 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눈에 설다는 생각이 들죠. 배우 자체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이건 그냥 낯설고 눈에 띈다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병훈 PD의 사극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게 처음은 아닙니다.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어울리기는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어색한 느낌을 주는 연기자들 말입니다.

독특한 '중간 보스' 역할을 했던 박정금과 임성민. 결국 주인공의 아군으로 변신한다.

대표적인 그런 '어색한' 연기자가 바로 '대장금'의 문정왕후 박정숙입니다. 아나운서 출신으로 연기자로서는 신인이었던 박정숙은 무섭고 근엄한 느낌의 문정왕후역에는 제격이었지만 베테랑 사극 연기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튀었습니다. 능숙하게 사극 말투를 잘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니 더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신선했지만 가장 연기력 논란이 컸던 배역이었습니다. 분명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선택한 배우도 아니고 화제성을 노리고 만든 배역은 아닐텐데 무엇을 위해 설정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가 하면 '동이(2010)'에서 감찰상궁 최상궁 역으로 연기한 임성민도 한때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역시 아나운서 출신으로 딱딱하고 쌀쌀맞은 연기에는 제격이었고 그런 캐릭터였지만 사극에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이희도, 맹상훈, 이숙 같은 이병훈 PD 사극의 고정출연자들은 조연급이지만 사극 연기 하나는 확실합니다. 사극 연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무언가 극복할 수 없는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 논란이 된 이런 연기자들은 대부분 그 분위기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깜찍한 숙휘공주와 더불어 가장 관심이 가는 등장인물 중 하나.

제 생각에는 이런 '중간보스'를 연기하는 이 사람들의 역할은 일종의 '포인트' 같습니다. 수십년 동안 이병훈 PD가 만든 사극에는 같은 연기자들이 다수 출연했습니다. 맹상훈이나 이희도는 거의 빠진적이 없다고 해도될 정도로 등장했던 배우들이구요. 이병훈 사단이라 불릴 만큼 익숙한 얼굴들로 꾸려진 사극들이다 보니 아무리 주인공과 시대를 바꿔도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는 힘듭니다. 특히 자주 등장하던 인물이 악역을 맡으면 신선한 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겠죠. 퀘스트를 깨는 입장에서도 김창완처럼 참신한 '중간보스'여야지 게임할 맛이 날 것도 같구요.

또 가끔 김창완의 말투가 현대극 스타일이라 어색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게 싫지는 않은 걸 보면 이렇게 연출하는게 이병훈 PD의 또다른 특징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병훈 PD가 무술인, 코미디언, 아나운서, 가수 등 출신을 가리지 않고 극에 기용하는 그 진짜 의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배우 김창완에 대한 호감 때문일까요. 물론 백광현의 스승이 될 혜민서의 고주만을 괴롭히다 못해 처치해버릴 '몬스터' 급의 악역이지만 지독한 악역 보다는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악역이 등장하는 것도 이병훈 사극의 특징이니까 묘하게 시선이 집중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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