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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조선의 영웅 전우치를 B급 분위기로 연출하기

Shain 2012. 11.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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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방영된 KBS '전우치'를 본 소감은 일단 '싫지 않다' 입니다. 그런데 딱히 확 당기는 느낌이나 꼭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호기심도 없습니다. 방영중인 수목드라마들 중 '전우치' 만큼 괜찮은 소재도 없는 듯한데 희한하게 '전우치'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전설 속 전우치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코믹 무협 판타지'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우치'하면 우리 나라 민중사극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일지매같은 저항의 상징이고 신통한 도술 때문에 판타지로 만들기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전반적으로 유치한 CG 그리고 강림 역의 이희준과 홍무연 역 유이의 연기가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 역시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는 이희준의 발음이 종종 귀에 거슬렸고 유이가 무표정하고 어색하게 피아노줄 액션을 하던 장면은 멋지다기 보다 피식 웃음이 나더군요. 뭔가 굉장한 판타지와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다가 일본의 '전대물'을 보게 된 느낌이랄까요. 거기다 배우 이희준의 말투 자체가 코믹한 느낌이 강한데 진지하게 연기하고 한눈에 봐도 조악한 셋팅 안에서 무술 고수인 양 액션을 펼치는 유이가 왜 웃기지 않겠습니까.

재미있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의미로.

어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이런 어색한 이희준의 연기를 보며 '차태현이 차린 밥상에 이희준이 재를 뿌린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1, 2회 방송을 모두 지켜본 소감으론 이희준이 발음 문제는 있어도 그렇게 '못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강하게 듭니다. 저 역할에는 등장인물 마숙(김갑수)처럼 너무나 대단하고 강렬하고 카리스마있고 잘 생긴 안티히어로가 등장해야할 것 같은데 뭔가 어설퍼 보이고 순해보이고 재밌어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니 고정관념을 깨긴 깨는구나 싶습니다.

헌데 잘 보니 이 드라마의 핵심 캐릭터인 전우치 역시 뭔가 약간 핀트가 어긋난 영웅입니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의 후계자면서 친구와 연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영웅 전우치는 조보소의 기별서리 이치로 변장해 전국 곳곳의 소식을 듣고 살인사건같은 백성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입니다. 청렴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하급관리 이치는 사복시에서 일하는 봉구(성동일)와 도박을 하고 관리들에게 뒷돈을 받는가 하면 도박장 단속 사실을 철견(조재윤)에게 먼저 알려주는 등 착하지도 않고 성실하지도 않습니다.

도박하고 뇌물받고 영웅형 성격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우치.

저잣거리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기는 하는데 전우치 이 사람 민중사극의 영웅 홍길동같은 인물이 될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어보입니다. 율도국을 망가트린 강림을 찾아 황해도까지 날아가는 전우치, 스승(정진영)이 자신을 살리다 죽고 무연이 자신을 죽였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강림아 기다려라. 전우치가 간다'고 소리치는 전우치가 그렇게 강하고 다부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천리경으로 땅을 살피며 화살을 피할 땐 마치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조화를 부리려 지상 강림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실실 저기서 실실 나사 하나 빠진 것같은 전우치와 안티히어로인데도 독하기 보단 빈틈이 많아 보이는 강림의 대결구도는 아동용 명랑만화에서나 등장할 것처럼 익살스러워 보입니다. 연출자가 차태현의 기존 이미지가 진지한 카리스마 보다는 코믹하고 자연스러운 편이란 점을 몰랐을 리도 없고 이희준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 천재용같은 이미지의 배우란 것을 모르고 캐스팅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원한 건 '각시탈'의 영웅 이강토(주원)같은 결의에 찬 영웅이 아니었던 뜻입니다.

마치 '전대물'을 보는 듯한 분위기. 제작진이 원한 전우치는 어떤 유형이었을까.

홍길동과 함께 했지만 홍길동을 넘어서지 못한 이인자 마숙과 전우치의 친구이나 반란을 도모한 강림. 사실 그들의 연기력 논란을 뒤로 하고 제가 가장 궁금해하던 건 과연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이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 이치(차태현)가 안경을 쓴 것을 보니 선조나 조선 후기가 아닐가 했는데 폐주가 등장해서 연산군 이후 중종 때거나 광해군 폐위 후 인조 시기라고 짐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인물 소개를 보아하니 폐주의 이복동생이 왕위에 오르고 즉위하면서 아내를 버렸단 내용은 중종의 이야기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복형을 폐위시키고 왕이 된 동생의 이름은 이거(안용준)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에 그런 이름을 가진 왕은 없었습니다. 실존인물 전우치를 소재로 만든 전우치전은 현대극이 되면서 가상의 왕과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킨 판타지로 변신한 것입니다. 조선 중종 때 도가에 심취하여 반란을 주도했던 전우치는 백성을 현혹한단 이유로 잡혀 죽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백성들이 임꺽정과 홍길동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떠받들었던 것처럼 전우치도 백성들의 쓰린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변신합니다.

도대체 왜 이들의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끌여들였는가? 궁금하다.

조선 백성들이 사랑하던 소설 속 영웅 전우치. 결국 A급 소재에 A급 연기자들과 A급 방송시간대에 시청자들이 보게 된 것은 가공되지 않은 영웅 전우치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한한 능력을 가졌으나 백성의 희망이 되길 원한 적 없고 무협이라고 소문이 났으나 사실은 평범했던 전우치. 민중사극의 색이 흐려지는 것 같아 떨떠름했지만 아직까진 싫지는 않네요. 그냥 일본 '전대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B급 영화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을 웃기는 그들 때문에 진지하게 연기하는 서찬휘(홍종현)같은 인물들이 웃기게 보일 지경입니다.

당분간은 작가가 왜 하필 전우치와 강림의 대결 구도를 그렇게 핀트가 어긋나게 짠 것인지 또 폐주와 젊은왕의 대결구도를 꾸며낸 것인지 지켜볼까 합니다. 영화 '전우치'와의 다른 작품을 찍고 싶어서였을까요. 한동안 현재 방영중인 수목극중 그리 당기는 것도 없고 그들 만의 세계가 되버린 M사의 '보고 싶다'도 왜 하필 그리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대풍수'도 재미없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전우치'가 가장 나을 것 같네요. 아직은 미련남은 사람들 많을 겁니다. 뭐 전우치가 진짜 전우치로 각성할 때까지는 차태현을 보는 재미로 시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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