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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의 재미는 갈 때까지 가는 맛이다?

Shain 2012. 11. 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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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본질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실험성을 존중하는 문학 소설이나 문예물과는 다르게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아야하고 시청자들이 환영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취향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받는 매체가 바로 '드라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 속 이야기들은 통속적입니다. 그래서 삼각관계에 출생의 비밀에 권선징악적인 교훈, 속물적 호기심 등 보편적인 욕망을 망라하는 드라마가 많습니다. '막장'이라고 욕하면서 보는게 아니라 익숙해서 본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좋아하던 '드라마'는 단순했습니다. 판소리 '심청가'는 효심이 깊은 착한 사람에게 복이 찾아온다는 내용이고 '춘향전' 역시 지조를 지킨 한 아가씨의 신분상승 판타지였고 '콩쥐팥쥐'는 신데렐라 이야기인 동시에 착한 딸을 괴롭힌 계모에 대한 화끈한 복수극이었습니다. 때로는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고 때로는 연민에 울지만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쉽게 응징하기 힘든 악인을 벌주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염원을 대리만족시켜줍니다.

요즘 주말드라마의 대세는 '복수극'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물론 현대인들의 드라마는 옛날 사당패들이 들려주던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복잡해졌습니다. 무조건 못되기만 한 팥쥐엄마같은 악녀는 매력을 잃고 시청자들은 악녀들의 사연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방영중인 '다섯손가락'의 계모 채영랑(채시라)이 대표적인 사연있는 악녀입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았지만 헤어지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더니 다른 여자의 아이를 데려와 친아들처럼 기르라고 합니다. 굴곡많은 자신의 삶을 원망하듯 남편이 데려온 아이를 증오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아들이 자신이 잃어버린 친 아들이었다는 처절한 이야기입니다.

'다섯손가락'은 콩쥐가 계모 팥쥐엄마에게 복수하는 내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복수극입니다. 채영랑이라는 악녀에게 복수하려는 옛날 애인 김정욱(전노민)과 채영랑이 저지른 유만세(조민기) 살인의 누명 뒤집어쓴 남편의 억울함을 벗기고 싶은 송남주(전미선)의 복수 그리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보다 채영랑을 사랑했던 유지호(주지훈)의 복수와 지호의 등장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연인까지 빼앗겨야 했던 유인하(지창욱)의 복수가 꼼꼼하게 얽혀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 자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영랑에 대한 유만세의 복수극입니다.

한 여성의 성공신화를 다루고 있지만 '메이퀸'도 기본적으론 복수극이다.

복수극이 성립하려면 일단 누군가에게 상처입어야 합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만큼 억울한 일이 벌어져 상대방에게 꼭 복수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를 악무는 지독한 감정표현을 해야하고 때로는 이런 감정 과잉이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유지호가 채영랑에게 바보같다 싶을 정도로 당하기만 하고 재벌 아닌 서민 송남주가 살인자의 가족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절규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하는 사람이 나 자신 같아 보기만 해도 짜증나고 울컥합니다.

이런 복수극이 볼만해지는 건 '콩쥐팥쥐'처럼 복수가 성공한 그 순간이죠. 아무리 구구절절 사연많은 악녀라도 악행은 벌을 받는 법. 지독하게 미워한 의붓아들이 평생 그리워하던 친아들이었으나 그 아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무너트리려하고 남편이 있어도 잊지 못한 애인이 나타났으나 그 애인은 자신에게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아 이 여자 좀 안됐다 싶으면서도 악행이 응징당하는 순간에는 이야 이것 참 시원시원하구나 싶은 감정이 듭니다. 지호가 억울하게 당하던 시간이 길면 길수록 복수의 순간은 더욱 속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설계도를 도둑맞고 할아버지가 죽고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메이퀸'의 복수.

반면 드라마 '메이퀸'의 복수극은 지지부진합니다. 부모 세대의 복수를 자녀 세대가 하는 이야기라 '메이퀸'에서 선택한 복수는 긴 호흡으로 전개됩니다. 아직까지 강산(김재원)과 한해주(한지혜)는 자신들이 복수할 대상 즉 장도현(이덕화)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형님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는 윤정우(이훈)는 윤학수(선우재덕)와 강산의 아버지 강윤을 장도현이 죽였으리란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고 전 안기부 직원에게 장도현의 범행을 전해들은 강대평(고인범)은 장도현 측의 음모로 사망하고 맙니다.

즉 '메이퀸'의 복수극이 무르익으려면 한해주와 강산이 당해야할 고통이 훨씬 더 많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안 그래도 해주가 무슨 일이 날 때 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119에 전화하기 보다 장도현과 박창희(재희)에게 뛰어가는 경우가 더 많아 '메이퀸'이 속터지고 지루하다는 평을 듣는데 해주 보다 똑똑한 강산도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 날 때 마다 장일문(윤종화)와 박창희 무리에게 뛰어갑니다. 한동안은 갑갑해도 주인공들이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합니다. 뭐 복수극의 묘미는 갈 때까지 갔다가 한번에 뒤집는 반전의 재미 아닐까 싶긴 해도 너무 오래 끄는 것같기도 하네요.

역시 복수에 성공해야 보는 재미가 있다? 연장에 돌입한 '메이퀸'

드라마 '빛과 그림자'도 연예계 밑바닥부터 시작한 주인공 강기태(안재욱)의 성공이야기인 동시에 부패한 정치인 장철환(전광렬)에 대한 복수극이었습니다. 장철환이 죽으면 시원하게 끝났을 복수극이 무려 14회나 연장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을 정떨어지게 만든 전력이 있습니다. 억울한 감정을 갈 때까지 끌고 가야 복수가 시원한데 '빛과 그림자'는 끌어도 너무 끄는 바람에 제풀에 꺾여 떨어져 나간 팬들이 더 많았습니다. 시청자들과의 '밀고 당기기'에 실패한 셈이죠. '메이퀸'도 슬슬 그런 기미를 보이는 듯해 아쉽습니다.

드라마 팬들은 대부분 한번 보던 방송을 끝까지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주말극 정상을 지키던 '메이퀸' 보다 출생의 비밀이 폭로된 '다섯손가락' 쪽의 시청률이 급상승한 모양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를 앞둔 '다섯손가락'의 복수극은 지금 활활 타오르고 있거든요. 반면 높은 시청률을 등에 엎고 연장을 선언한 '메이퀸' 쪽은 아직 멀었습니다. 솔직히 '메이퀸'을 시청하던 입장에서도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들이 답답하긴 하네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성공이 쉽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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