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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들, 며느리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시어머니

Shain 2012. 11. 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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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털 사이트 기사를 읽다 보니 '아줌마들은 왜 파마를 하나요'라는 내용의 글이 있더군요. 그 글에서 모델로 삼은 사진이 바로 '아들녀석들'의 나문희였습니다. 그 사진은 '장미빛 인생(2005)'에 출연할 때의 사진이었지만 나문희씨와 곱슬거리는 '파마'머리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젊은 여자들은 돈주고 하래도 싫어하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아줌마들은 왜 좋아할까요. 글쓴이는 그 이유를 나이들어 푸석거리고 숱도 적어진 머리를 볼륨감있게 보이도록 해주는데다 별다른 손질이 필요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줌마 파마'를 할 나이가 된 걸 알고 낯설어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처녀적 '엄마' 사진은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차림이었습니다. 결혼하고 한동안은 긴 생머리를 올려 핀을 꽂기는 했지만 파마는 하지 않던 어머니가 어느날 동네 아줌마들처럼 뽀글거리는 파마를 하고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 생머리면 흉하다며 이게 낫다 하셨지만 저는 '엄마'가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아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앳된 단발머리에서 긴 생머리로 살짝 곱슬거리는 웨이브에서 잘 풀리지 않은 퍼머 머리로 헤어스타일에 따라 여자의 인생이 변하는 것같아서 말입니다.

남편과는 남처럼 지내는 파마머리 아줌마 우정숙.

'아들녀석들'의 어머니 우정숙(나문희)은 뽀글거리는 파마 머리는 했지만 기사 속 아줌마들처럼 꽃무늬 '몸뻬' 바지를 입은 아줌마는 아닙니다. 돈버는 것 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하는 남편 대신 돈을 벌어 이젠 제법 큰 건물 주인이 되었고 가게세로 먹고 살만한 노년의 아줌마입니다. 평생 속썩이는 난봉꾼 남편 유원태(박인환)와 무늬만 부부라도 큰 아들은 의사에 둘째는 작가에 셋째는 골프 강사니 그럭저럭 남보기엔 부러울 것 없는 아줌마입니다. 이젠 돈벌어서 딸네 집이 있는 일본이나 왔다갔다 하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죠.

그런데 속사정을 알고 보면 파마머리 아줌마 우정숙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속썩인 남편, 오늘이라도 당장 이혼하려 하다가도 없는 사람 취급하면 그만이다 생각하지만 그 나이에 바람피우려 오토바이 산다고 난리치는 걸 보면 한번씩 뒤집고 싶습니다. 그런 남편을 꼭 닮은 바람둥이 아들 유승기(서인국)는 야무진 며느리 박미림(윤세인)과 이혼하고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출근도 안시키고 전화기까지 뺏어 단속을 해봤지만 그 사이 또 한송희(신다은)와 엮여버렸습니다.

하늘처럼 믿었던 큰 아들이 우정숙을 배신하다.

로맨스 소설가 둘째 유민기(류수영)는 그동안 변변히 사귀는 여자가 없더니 지금은 뜬금없이 사돈 총각 강진(김영훈) 약혼녀 신영(한혜린)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해 우정숙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 사이 여자를 사귀지 못한게 짝사랑 때문이었구나 싶어 안타깝다가도 하필 어렵고 어려운 사이인 신영이라니 걱정이 앞섭니다. 다른 일에는 다 야무지고 꼼꼼해서 걱정할 일이 없는데 여자 문제 만큼은 영악스럽지 못한 민기. 유난히 감성적이고 정이 깊은 아들이니 저러다 평생 제 짝 하나 못 만나면 어쩌나 정숙은 또 걱정합니다.

큰 아들 유현기(이성재)는 우정숙에게 하늘같은 아들입니다. 평생 실망시킨 적이 없고 정숙의 마음에 맞는 결혼을 했고 또 시키는대로 잘 자라준 아들이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거야 어쩔 수 없어도 그런 아들이 세라(왕빛나)같은 여자를 두고 조건 나쁜 여성을 선택한다는게 정숙에게는 배신으로 느껴진답니다. 아내와 사별하고 7년 넘게 혼자 살며 딴 여자는 거들떠 보지 않더니 애 하나 있는 아줌마 성인옥(명세빈)과 꼭 결혼하고 싶다고 합니다. 하늘처럼 믿던 아들이 절연이라도 할 기세로 강하게 밀어부치자 우정숙은 '너같은 아들 둔 적 없다'며 외면합니다.

둘째 아들 민기와 셋째 아들 승기도 애먹이긴 마찬가지.

우정숙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흔히 볼 수 있는 파마머리 아줌마들의 인생 패턴과 거의 똑같습니다. 늘 바깥으로 돌며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남편 유현태는 아내 우정숙에게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만들어준 남자입니다. 그런 남편을 대신해 정성들여 아들을 키웠으니 정숙이 아들들의 인생에 집착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옛날 시어머니들이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 퍼붓고 그 반작용으로 며느리를 싫어했던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막내 며느리에겐 차마 미안해 시집살이를 못 시켰다는 점 정도랄까요.

그러나 우정숙은 자신의 그런 인생을 며느리 박미림에게도 강요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평생 속썩은 경험이 있으니 박미림의 심정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정숙입니다. 남편을 볼 때 마다 속에 천불이 나고 거짓말하며 바람피우러갈 때 마다 미워서 몸이 바짝 바짝 마르는 그 상황을 정숙 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식이 아빠를 필요로 하니까 아이 가슴에 대못 박기 싫어서 같이 살지만 한번씩 그렇게 속이 뒤집어질 때 마다 자기 인생은 빈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느낌 며느리이기 보다 같은 여자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과 똑같은 빈껍데기 삶을 며느리에게 강요하는 우정숙.

그런데도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말로 가게와 집을 얻어주고 차까지 사주며 며느리를 잡으려는 우정숙. 그것은 그렇게 딱 부러지는 박미림이 아니면 아들 승기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 미림의 미래가 자신과 비슷해질 것이란 걸 잘 아는데 남편의 공백을 자식으로 메꾸고 살아야하는 삶인 걸 알고 있는데도 바람둥이 승기의 미래를 걱정해 미림을 붙잡아두고 싶은 것입니다. 며느리를 위한다기 보다 자식을 위해서 그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셈입니다.

머리회전이 빠른 정숙이니 며느리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살라는게 얼마나 이기적인지 본인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있으나마나한 남편에 속썩이는 자식들까지. 이젠 생머리도 단발머리도 어울리지 않은 파마머리 아줌마 우정숙의 삶이 그대로 박미림에게 물려질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엄마의 마음.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뭔가 욕심많다는 말로 폄하하기도 그렇고 안타깝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입니다. 이게 다 '아들 녀석들' 때문인 것도 같지만 알고 보면 늙어서도 큰 아들처럼 구는 남편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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