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청상 서은서의 유옹 수술 무엇이 문제길래

Shain 2012. 12.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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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사극 보다 퓨전사극이 많아진 요즘엔 어떤 사극이든 '자막'이 필수인 것 같습니다. '마의'는 사극인 동시에 한의학 드라마라 전문용어 설명이 필요하지만 가끔은 과연 시청자들이 이런 단어도 모를까 싶을 때도 자막이 붙습니다. 이건 그만큼 과거와 달리 한자에 익숙한 사람들이 드물고 용어를 정확히 알아듣는 사람이 드물단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방영된 서은서(조보아)의 유옹 수술 장면은 실제 한의사의 고증을 받긴 받았지만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의 수술 장면에 맞추어 연출되었더군요. 혜민서 의생 교육을 현대의 의과대학 실습처럼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겠죠.

현대의 시청자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용어 뿐만이 아닙니다. 70년대 사극을 현대에 방영한다면 주인공 심리나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 시대의 정서와 현대의 정서가 다르고 과거에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모두가 알고 있던 상식이 현대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인의 도리를 강요하던 조선 여인들에 관한 묘사입니다. 남편과 첫날밤 조차 치르지 못한 청상이 수절한다면서 생판 처음보는 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갑갑합니다.

청상인 서은서의 명예 때문에 거짓증언을 했고 백광현은 강상죄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어제 방영된 '마의'의 수술 장면은 꽤나 파격적이었습니다. 양반가의 여인들은 외간 남자의 손이 닿으면 수치스럽게 생각해 각종 부인 질환을 치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과거 사극에는 어의가 중전의 임신을 검사하기 위해 손목에 실을 매어 맥을 짚는 장면도 자주 연출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서은서가 시아버지 정성조(김창완)와 유생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수술을 받겠다 나선 것만도 충격인데 거기다 유방암 외과수술까지 했다니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 장면을 보며 그 시대에 그렇게 강력한 마취제가 있었냐며 반문하고 의심스러워했습니다. '마의'의 자문을 맡은 방성혜 한의사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도 마취가 가능한 각종 약초들이 있었고 그 약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꽤나 강력했다고 합니다.

동의 보감에 등장하는 '초오산'은 칼로 몸을 절개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약초이고 만타라화(독말풀), 섬수 등을 사용하면 환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옹을 다스리려 부인에게 각종 약을 쓰고 통증 부위를 침으로 절개하여 고름을 뽑아내고 낫게 했다는 기록도 실제로 있습니다. 어제의 수술장면은 그런 기록을 잘 따져 고증한 장면이라 참 흥미로웠습니다.

자진해서 수술받겠다고 나선 서은서. 그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동이나 기록이 존재한다.

그 시대에도 수술이 가능했으리라는 것은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왜 서은서의 오빠 서두식(윤희석)은 서은서의 시아버지인 정성조와 맞서야했을까요. 조선시대 여성들이 억압된 삶을 살았다고 막연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며느리의 수술을 당연히 반대하고 나서는 시아버지 정성조의 입장은 이해하지 못할 시청자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는 정성조같은 시아버지가 '상식'이었고 서두식같은 오빠는 비상식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즉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말이 외과 시술을 꺼리게 된 이유인 것처럼 며느리들에게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불미스런 소문 때문에 자결을 강요당한 부인들도 제법 많습니다.

서은서에게 강요된 그 시대의 질서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여자의 세가지 도리를 일컫는 말인 '삼종지도'는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르라는 순종을 강요하던 말이었고 '일부종사'는 남편 이외의 남자를 두지 않는 즉 재가를 금지하는 도리였습니다. '출가외인'은 시집간 딸은 남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조선 여인들을 부모없는 고아로 만들던 말이며 '여필종부'는 반드시 아내는 남편의 뜻을 따르고 좇아야한다는 뜻입니다.

서은서를 살리기 위해 시술을 집도하는 백광현과 고주만.

본의 아니게 청상이 된 서은서에게는 남모를 스트레스가 한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어서 빨리 남편을 따라 죽으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수절 과부에 대한 대표적인 한국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는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4)'이고 하나는 신상옥 감독의 '이조여인잔혹사(1969)'입니다. 두 영화의 여주인공은 이미 죽은 남편과 혼인한 수절녀입니다.

'물레야 물레야'는 청상으로 살던 수절녀가 운명에 휘둘리며 각종 불합리한 우여곡절 끝에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씨내림을 하고 자결하는 내용이고 '이조여인잔혹사'는 열녀로 칭송받던 며느리가 집을 떠나려 하자 시아버지가 그녀를 죽여 자결한 것처럼 위장하고 열녀문을 하사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정성조가 이명환(손창민)과 위험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큰 며느리 은서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건 이미 자결했어야 하는 서은서가 살아있으니 못마땅하다는 뜻도 됩니다. 간질에 걸린 자기 아들까지 남의 눈이 무서워 치료받지 못하게 한 정성조이니 며느리는 두말할 것 없습니다. 며느리가 자결하면 차라리 열녀문이 내려지고 집안의 영광이 될텐데 은서는 죽지않고 오히려 의원에게 치료나 받고 다니니 불만이라 이겁니다. 서두식이 몰래 백광현(조승우)에게 치료를 부탁해야했던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며느리의 수술을 반대하는 정성조가 상식. 시집간 누이를 살리겠다는 서두식이 비상식.

앞으로 숙휘공주(김소은)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할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적을까 합니다만 잘 아시다시피 숙휘공주가 본래 서은서처럼 과부 팔자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팔자가 정말 사나운 과부였는데 남편도 시아버지 부부와 시아버지의 동생도 자식도 줄줄이 사망해 시댁인 정씨 집안은 이게 다 며느리 잘못 들인 탓이라며 숙휘공주를 원망했던 모양입니다.

타고난 신분이 공주라 해도 불합리한 며느리의 운명은 벗어날 수 없었단 뜻입니다. 지금 서은서가 맡은 역할은 아무래도 진짜 숙휘공주가 겪었을 법한 그런 고통들입니다.'마의'의 주인옥(최수린)과 강지녕(이요원)을 비롯한 여러 여성 등장인물은 조선시대 여성들답지 않게 당당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청상 서은서 역시 이번 수술을 받고 백광현으로 인해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것이란 기대가 가능합니다. 자진해서 시술한 유옹 수술은 그 출발이 될 것입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긴 하지만 관념에 사로 잡혀 스트레스를 받는,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바꾸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은서는 희망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요. 허울 보다는 사람 목숨을 중요시한 의원과 살고 싶어하는 환자가 기적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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