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백광현처럼 바꿔치기해서 살아난 박팽년의 손자

Shain 2012. 12. 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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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계속 다른 일(대선)에 신경을 쓰느냐 포스팅이 계속 밀리네요. 요즘같은 정치 시즌엔 드라마에 몰입하시는 분들도 적겠습니다만 세상에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마의'의 주인공 천민 백광현의 두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죽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원수인 이명환(손창민)으로 인해 강상죄로 고생하게 된 백광현의 운명도 '의원'의 길을 선택한 이상 갖가지 정치적 혼란에 개입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진짜 백광현은 무관 집안 출신이고 출생의 비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병훈의 사극은 미천한 처지에서 국내 최고의 인물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자라는 한계를 가진 허준도 '약방기생'이라 불리던 의녀에서 어의가 된 서장금도 무수리에서 왕의 어머니가 된 숙빈 최씨까지 대부분의 경우 신분의 한계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출세의 동기가 되고 극복해야할 환경이 됩니다. 드라마에서는 강도준(전노민)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그 아들도 죽이란 명령이 떨어지자 백석구(박혁권)가 지녕(이요원)과 광현(조승우)를 바꿔치기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이런 드라마틱한 출생의 비밀 실제로도 있었다. 박팽년의 손자 '박비'


조선시대의 역모죄는 삼족을 멸하는 엄청난 중죄였기에 집안의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여성들은 관아의 노비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백광현과 강지녕의 경우처럼 천민의 딸과 아들을 바꿔치기해 대를 이었다는 이야기가 야사처럼 전하는데 그게 바로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입니다. 작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공주의 남자(2011)'에서 묘사되듯 사육신들은 모두 제사를 모실 후손을 한명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박팽년 만은 후손이 살아남아 사육신들의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합니다.

실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에 따르면 박팽년의 아들 박순의 아내는 사육신의 난 때 임신중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 명을 내립니다. 그때 박팽년의 여종도 임신중이었는데 그 여종은 박순의 아내에게 딸을 낳으면 다행이나 아들을 낳으면 자신의 아이와 맞바꾸자 제안합니다. 결국 박순의 아내 즉 박팽년의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여종은 딸을 낳아 그 둘을 바꿨고 아들의 이름을 '박비(朴婢)'라 지은 후 몰래 길렀습니다. 숨어살던 박비는 후에 친족의 도움으로 성종에게 자신이 박팽년의 손자임을 고하고 사면받아 이름을 새로 얻었다고 하지요.

이형익의 죄를 목격해 도망노비 신세였던 백석구. 장인주는 강지녕이 딱해 비밀을 밝히지 못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천민의 딸과 양반가의 아들을 바꿔버린게 아주 근거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란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극중 강도준의 아들로 설정된 백광현도 장인주(유선)라는 증인이 있으니 자신이 진짜 도준의 아들이고 대를 이을 권리가 있음을 고하면 현종(한상진)이 신분을 복원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숙휘공주(김소은)의 소원대로 공주와 혼인할 수 있는 신분이 되니 우리가 바라는 '백숙커플'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백광현은 강지녕의 입장을 생각해 비밀을 일단 감추기로 합니다.

장인주도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면 강지녕이 노비가 되기에 백광현에게 비밀 폭로를 망설였습니다. 단순히 신분이 천민으로 떨어진다는게 전부가 이니기 때문입니다. 백석구는 강도준을 만났을 때도 도망 노비였고 죽을 때는 살인자 누명을 썼습니다. 당시 조소용(극중 서현진)의 천거로 궁에 들어왔다는 실존인물 이형익(조덕현)은 극중 이명환과 손을 잡고 소현세자 독살에 가담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걸 목격해 도망노비 팔자가 된 것입니다. 거기다 이미 강지녕은 노비 시절 도망쳐 영달이란 이름으로 여리꾼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백석구의 은혜까지 입었으니 신분을 되돌리기 어려운 백광현.


강지녕이 다시 노비가 된다는 것은 죄인의 가족이자 도망노비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고의였던 아니였던 양반으로 대접받았으니 추가로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노가 된다는 건 양반집 노비가 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양반가의 노비는 주인의 아량으로 때로 양인 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경우도 있었고 속량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죄인 신분으로 관노가 된 경우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왕의 은혜는 어디까지나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기에 '신분'에 대한 압박이 심한 그 나라에서 어떤 처지가 될 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드라마 속 백광현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죄는 '강상죄'입니다. 강상죄의 사례로 거론된 경우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다는 등의 강력범죄들이지만 실제로 이 법은 아랫사람들의 '하극상'을 다스리는 성격에 가깝습니다.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일종의 괘씸죄 성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 초반 조말생(이재용)과 세종(한석규)이 논쟁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부민고소금지법'이었는데 노비나 아랫사람이 주인이나 수령의 잘못을 고발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천민 백광현이 강씨가의 장손이라면 숙휘공주가 제일 좋아하겠지만...


왕과 신하의 관계, 주인과 노비의 관계를 부모 자식 간으로 비유해 감히 어떻게 윗사람을 거스르냐는 식의 이런 문화는 신분 질서를 어겼을 때 엄벌을 내리는 기본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대부가의 딸이 천민과 결혼하면 강제로 이혼시키고 그 딸 역시 노비로 만들거나 억지로 시집 보냈고 양반이 천민을 첩이 아닌 아내로 들인 경우 신분이 강등됩니다. 첩으로 들였으면 그 첩의 자식은 어미의 신분에 따라 노비가 되거나 얼자 취급을 받습니다. 목장 노비로 자라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백광현이 지녕의 팔자가 어찌 될 줄 알고 그녀의 신분을 폭로할까요.

무엇 보다 백광현을 위해 딸을 관아 노비로 밀어넣은 양아버지 백석구에게 고마워서라도 도저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서로의 처지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신분의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 더 당당히 지녕과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겠지요. 지녕은 그대로 강도준의 자식으로 자신은 승진하여 면천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이루자면 조금 더 의술을 수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뭐 백광현을 너무나 사랑해 꿈에서 그의 미래까지 엿본 숙휘공주는 조금 안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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