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백광현의 청나라 출국과 사암도인, 약계의 등장

Shain 2013. 1. 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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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의료제도는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 즉 '삼의사(三醫司)'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마의'의 고주만(이순재)은 그 삼의사의 수장인 수의로 어의나 내의원 제조 보다 위에 있는 직급입니다. 고주만은 수의로서 현종(한상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돈없는 백성들이 무료로 시술받을 수 있도록 혜민서 의생들에게 외과술을 가르칩니다. 종 종기를 비싼 약재없이 외과술로 치료해 환자들의 의료비를 줄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고주만이 설치한 치종청은 조선시대의 대표 대민 의료기관인 활인서, 혜민서 등과 함께 대민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주만의 큰 뜻을 아무리 강조해도 조선시대 의료제도가 왕실과 왕족의 건강을 우선시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병훈 PD의 대표사극 '허준(1999)'과 '대장금(2003)' 그리고 '마의'의 공통점은 미천한 신분에서 어의가 된 의관 또는 의녀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조선 시대에 의술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왕실 의원으로 성공했다는 뜻이고 왕을 치료하여 기록될만한 공적을 남기고 치하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천한 신분을 이겨낸 인간승리를 강조해도 왕실 중심의 묘사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치종청 대신 유료 치료 기관을 혜민서에 설치한 이명환.

개인적으로 정사에 충실한 정통사극을 좋아하면서도 민중사극의 역사 왜곡에는 관대한 편입니다. 왕실 인물들이야 기록이 많으니 어떤 맥락에서 정치적 선택을 했고 어떤 캐릭터였는지 쉽게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시대의 왕을 지나치게 민주적으로 해석한다던가 불가피한 역사의 희생양으로 그리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반면 단 한줄의 기록 뿐인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경우 시대 고증은 제대로 하더라도 그의 인물됨이나 캐릭터는 창작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속 백광현이나 허준, 서장금은 현대 상황에 맞추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드라마 '마의'는 그간 방영되었던 이병훈 PD의 사극들 중 가장 한의학 고증이 뛰어난 편이라 알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현대의술과 유사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서은서(조보아)의 유옹 수술이나 고주만의 외과수술은 여러 의서에 적혀 있는 기록을 토대로 연출된 장면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인주(유선) 의녀와 강지녕(이요원)이 지원하는 약계(藥契)나 침술로 명성을 날린 사암도인(주진모)의 기록도 전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작진은 다음 편부터 조선시대에 등한시되었다는 대민 의료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의 의술과 의료제도가 왕실 중심이었단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역사에 기록이 단한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한 인물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처럼 자세한 기록이 없다고 해서 민간의료를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명맥이 끊긴 한의학 침술의 경지가 놀라울 정도였다고 하는데 우리가 왕실에서 활약한 여러 의원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동안에도 전국적으로 힘겨운 백성들을 치료하며 수고한 무명의 의료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본래 독학으로 의원이 되었다는 백광현은 지금부터 사암도인의 침술을 전수받고 그 정신을 계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오늘날의 의료보험제도와 유사한 약계 즉 약국계(藥局契)는 상호 의료부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로 강릉지방에는 무려 240여년간 지속된 약국계가 기록에 전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이 아니면 제대로된 의원이나 약재를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마을에서 진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원은 신분이 낮아도 관원들이나 부자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부 지방에선 형편이 넉넉한 계원들이 모여 의원과 약을 구비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추렴하고 그 돈으로 계원들이 의료서비스를 나누곤 했습니다. 이 약계에 고용된 의관은 때로 의생을 가르치고 민간 진료를 담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주만의 뜻을 이어 전국적인 약계를 조직한 장인주와 강지녕. 대민의료의 노력.

백광현의 짝으로 신분이 바뀐 강지녕이라는 인물을 굳이 선택한 것은 강지녕이 앞으로 그 약계의 주축으로 전국적인 대민 의료를 펼칠 의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광현은 이명환(손창민)으로 인해 억울하게 아버지 강도준(전노민)과 어머니를 잃고 양아버지인 백석구(박혁권)의 죽음까지 지켜봐야했지만 그로 인해 신분이 바뀐 강지녕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산과 신분을 이용해 강도준의 뜻, 진정한 의원의 길을 펼쳐나갑니다. 어쩌면 백광현이 아버지의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일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백광현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침술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생몰년이 미상이지만 백광현의 생존시기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암도인은 조선 만의 독특한 침법인 '사암침법'의 저자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장기 간의 상생을 연구한 침법은 현재 한의원에서 쓰고 있는 침법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 보다 훨씬 더 천재적이었다는 백광현이라면 조선 침술의 근간이 된 인물을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거인과 거인의 만남, 사암도인과 백광현의 만남에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그 과정도 기대해 봅니다.

'사암침법'의 저자로 알려진 사암도인. 백광현은 무엇을 배울까.

'대장금'의 장금(이영애)이 제주에서 의녀 장덕(김여진)을 만나 의술을 전수받고 허준이 유의태(이순재)를 만나 진정한 의원의 길을 배운 것처럼 왕실의학으로 대성할 이 주인공들에겐 필연적으로 민간 의학을 배울 이유가 있습니다. 의술은 왕가의 사람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백성들을 위한 것이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가치를 말입니다. 물론 사암도임을 만나보라는 고주만의 편지도 편지지만 이명환의 음모로 청나라까지 가게 된 백광현과 고주만의 뜻을 이어 약계를 만든 장인주의 활동은 '의학'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을 담은 연출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난히 여복이 많은 백광현이 강지녕, 숙휘공주(김소은), 서은서의 기다림을 뒤로 하고 청나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의 곁에는 어릴 적 영달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왈가닥인 소가영(엄현경)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사이 의료기관의 수장인 이명환은 각종 약재상들의 뒷돈으로 재산을 불리고 있습니다. 국가의 의료제도와 의원의 의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을 살려야하는 의술은 돈보다 더욱 귀한 가치를 우선으로 삼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명환과 사암도인의 행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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