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현대외과의를 뛰어넘는 침의 백광현의 활약

Shain 2013. 1. 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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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방영된 드라마 '허준(1999)'에서 허준(전광렬)이 스승 유의태(이순재)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은 진실여부를 두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한방의학의 최고 약점은 인간의 몸을 직접 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방의학은 체질과 이론에 맞춰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기본 원리라 외과 치료를 비롯한 중증 질병엔 효율적이지 못하단 평가를 받습니다. 허준은 기본적으로 그런 한방을 익힌 의원이었고 몸에 칼을 대는 행위를 살인과 동일시하던 조선시대라 허준의 해부 장면은 당연히 가짜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 당시의 의학 수준이 맹장염같은 수술이 필요한 병은 그냥 죽는병으로 인식될 정도였으니 허준이 스승의 배를 갈라 공부했다는 구전(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합니다)은 그냥 허준의 위대한 능력을 부각시키기 위한 드라마틱한 설정 정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허준이 인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의보감'은 오래전부터 의원들에게 전해지던 각종 의학서적의 내용을 요약하고 허준 자신의 임상 결과를 추가했으며 각종 질병에 맞는 약재를 기술하기도 했던 종합 의학서적입니다.

사암도인을 따라다니며 청나라에서 각종 실전 의술을 배우고 있는 백광현.

그런 의서다 보니 드라마 '마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종 근거없는 민간 속설도 함께 올라 있습니다. 덧붙여 해부한 인체를 묘사한 인체도나 각종 외과술도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허준은 사람이 많이 죽고 다치던 임진왜란 시기에 활약한 의원이라 전쟁에서 다친 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다 각종 치료법을 익히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의'에서 외과수술을 할 때 사용한 방법들, 즉 복부가 파열되거나 내장이 밖으로 나왔을 때 봉합하는 법이라던가 사람을 마취시킬 때 쓰는 '초오산'같은 약재를 자세히 적어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외과술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어제 방영된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은 목숨이 위험한 산모의 제왕절개를 시술합니다. 과거 '대장금(2003)'에서도 어의가 되었던 장금(이영애)이 마지막에 목숨이 위험한 산모를 제왕절개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도 조선시대에 무슨 제왕절개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아이는 살더라도 산모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비판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절개와 봉합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취, 항생제, 소독 등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니 당연한 반응입니다.

제왕절개로 부태수의 딸과 아이를 살린 백광현. 조선의 제왕절개에 대한 기록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마의'에서 묘사되고 있는 각종 외과 수술은 지나치게 허황되다는 평가를 자주 받습니다. 서은서(조보아)의 유옹수술이나 고주만(이순재)의 부골저 수술같은 것 말입니다. 기존 한방의학이 침과 탕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에 한방에는 외과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던 시청자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전쟁 시기 외에는 외과술이 필요한 경우도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외과 시술이 필요한 환자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음지에서 활약한 외과의사가 아예 없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 '자문'까지 두고 있는 '마의'의 제작진이 이런 외과 수술 장면을 연출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마의'의 기본 자문을 맡고 있는 방성혜 한의사는 그 모든 장면들이 실제 기록을 근거로 연출된 장면이라 합니다. 백광현에 대해서는 '백태의전'같은 여러 기록이 전하는데 방성혜씨는 그중에서도 저자 미상의 '지사공유사 부경험방(知事公遺事 附經驗方)'이란 기록을 토대로 제왕절개 에피소드를 묘사했고 드라마 속에서 연출되는 모든 수술은 실제 기록을 근거로 현대 의학의 수술장면과 결합시켜 극화한 것이란 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각종 외과수술 사례는 각종 기록에 근거해 연출된 것이다. 천재 외과의 백광현.

'동의보감'에 실린 허준의 인체도는 당시에 전해지던 여러 의학 지식을 모아서 정리해 얻어진 지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서를 달달 외워 의학을 배우고 약을 짓던 그 시대 평범한 의원들이 실제로 사람을 해부하거나 외상환자를 치료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해부나 칼을 대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백광현이 굳이 청나라까지 가서 사암도인(주진모)에게 의술 전수를 받는 것처럼 연출한 이유 중 하나도 외과치료를 금기시하는 조선의 분위기가 한몫하고 있겠지요.

이명환(손창민)은 부골저 시술에 실패한 백광현에게 '사술'을 썼다고 했고 외과치료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암암리에 인체를 연구하거나 동물을 해부해서 의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할 수 없을거라 봅니다. 근대 서양의학에 비해 외과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외과치료는 불가능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문제는 양방과 한방의 오랜 대립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과술에 효과적이지 못한 한방의학이 허황되다며 그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과 사람의 체질과 자연스러운 치유를 추구하는 한방의학의 가능성은 생각 보다 무궁무진하다는 입장이 그동안 꾸준히 갈등해왔습니다. 각종 종기를 훌륭하게 치료한 백광현의 능력은 화타에 버금간다고 평가되나 이후 그 명맥이 끊긴 것은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양의학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한방의학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서양의학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수준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술 보다 궁금한 백광현의 여복(?)

물론 어떤 분은 한방의학 자체가 엉터리란 입장을 취하겠지만 의술에 있어 그 어느 한쪽의 입장을 무조건 맞다고 보는 것도 옳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중 백광현이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현종(한상진)에게 처벌받고 또 마의라는 이유로 사람을 살리면서도 천시받는 장면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의원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방해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 따위는 없다는 점 말입니다. 과부라서 살리면 안되고 양반이라서 몸에 칼을 대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단정적으로 그런 수술 장면들이 옳지 않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임금의 처벌을 피해 도망친 백광현이 조선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는 방법은 청나라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길 뿐이겠군요. 사암도인에게 의술을 전수밭는 백광현 옆에는 어느새 소가영(엄현경)이 떡하니 붙어 있습니다. 그 사이 과부가 된 숙휘공주(김소은)나 약계의 수장이 되어 전국에 비싼 약재를 배급하고 있는 강지녕(이요원), 남몰래 광현을 찾아헤매는 서은서 말고 또다른 여인이 생긴 셈인대요. 현대외과의를 뛰어넘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백광현. 앞으로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 기대해보는 마음 한편에는 그의 타고난 여복이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궁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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