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예사롭지 않은 현종의 의료정책 고민

Shain 2013. 1. 2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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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 중에는 자료의 유실 때문에 후손들에게는 공백으로 느껴지는 시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풍습이나 문화 중에는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료를 삭제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동의보감', '향약집성방'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의학서적으로 분류되는 '의방유취'는 각종 의학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은 종합사전격 의서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되어 254권 만이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보관하고 있는 '의방유취'는 1876년 강화도 조약 때 일본에서 받은 것입니다.

유교 중심의 조선에서 '의학'은 잡학으로 취급받아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나마 의학도 왕실 중심이라 크게 내세울만한 '대민의료정책'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민의료정책이 유명무실했다고 평가될 정도로 조선 조정에 기대할 수 없어 민간의료가 발달했다고 하죠. 그 과정에서 요즘 '마의'에서 다루고 있는 한방외과술이 거의 전해지지 않게 되고 조선 초기 세종이 세웠던 민간의료정책의 근간도 많은 부분 그 정신이 훼손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어의'만 볼 수 있는 건 어의 말고는 기록이 남은 의원이 별로 없다는 슬픈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의 이명환의 시료청이 내심 탐탁치 않은 현종. 백광현이 오면 달라질까.

'마의'에서도 중간중간 의생들은 기본적으로 '황제내경'같은 의서를 본다는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과거에는 임상경험이 없는 의생들에게 기본적으로 의서를 달달 외우게 했다고 합니다. 그 근본이 된 책이 바로 '의방유취'로 '향약집성방'과 함께 조선의 의원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익히고 통달해야할 책 중 하나였습니다. '의방유취'가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자 후대에는 허준의 '동의보감'이 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세종은 의학 공부의 기본이 되는 '의방유취'와 비싼 중국의 '당약'을 국내산 약재로 대신하게 한 '향약집성방'을 편찬하여 대민의료정책의 기본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백성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하는 기관은 혜민서와 활인서 뿐이었습니다. 그 두 기관은 아시다시피 도성에 위치해 있거나 도성 주변에 있어 지방의료기관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때때로 의관을 지방에 보내 의생을 교육하고 전염병이 돌 때는 일종의 응급의료팀('마의'나 '대장금(2003)'에서 역병이 발생했을 경우 삼사에서 팀을 꾸리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죠)을 조직해 현장에 급파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환자 격리 수준이었고 전체에 비하면 그 혜택은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도성에 있는 '혜민서'와 '활인서'가 그 역할을 완벽하게 했던 것도 아닙니다.

혜민서도 돈내는 사람이 먼저다. 현종은 자봉의 말을 유심히 듣는다.

오죽하면 '활인서'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서'라는 별명을 얻었던 시기가 있을 정도로 그 활동이 미미하니 후세 사람들이 조선의 '대민의료정책'이 거의 공백이란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교탕반으로 잠행을 나온 현종(한상진)은  자신과 능청맞게 대작을 하는 자봉(안상태)의 말을 유심히 듣습니다. 돈없는 사람들은 아프면 제대로 치료도 못받는다는 자봉의 말에 현종은 '혜민서가 있지 않느냐'라고 대구하지만 자봉은 혜민서도 '돈내는 사람이 먼저'라며 의료정책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합니다.

극중에서는 삼사의 수장인 수의인 이명환(손창민)이 무료의료기관인 치종청을 없애고 돈을 받고 사람을 치료하는 시료청을 설치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현종과 고주만(이순재)는 백성들이 보다 많은 의료혜택을 받길 원했으나 권세있는 신하들이 장악한 내의원과 혜민서는 그 뜻을 실천시킬 의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료청에서 받은 의료비로 혜민서의 의료비를 해결한다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뿐이었습니다. 현종은 자신의 뜻을 잘 알아주던 고주만의 빈자리를 느끼며 어떻게 하면 대민의료정책을 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고주만의 '치종청'과 이명환의 '시료청'.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현종.

그렇다면 이렇게 '대민의료정책'을 고민하는 현종이 왜 강지녕(이요원)의 약계는 단속하려 할까요. 중국에서 돌아온 이명환은  강지녕이 세운 사설 약방인 '치종원'을 방해합니다. 아직까지 강지녕이 전국적인 약계의 수장이란 사실은 모르고 있지만 이명환은 자신이 설치한 시료청과 혜민서에서 관리하는 약재 전매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익을 좌상 정성조(김창완)와 나누고 있으니 지녕의 치종원과 약계는 그에게 큰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종은 현종대로 약재 공급 권한이 국가에 있으니 약계를 단속하란 명을 내린 것입니다.

마치 제약회사와 대형병원의 불법커넥션을 보는 듯한 대형 약재상들과 수의 이명환의 담합은 전국의 약재값을 대폭 상승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 약재의 판매 권한은 삼사에서 쥐고 있고 조선 조정에도 이익을 주기 때문에 싼 가격에 약을 공급하는 약계를 무조건 허용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명환의 불법적인 이익과는 별개로 권리의 문제기 때문에 불법적인 약재유통은 단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물론 조선 후기에는 사설약국이나 약방이 증가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치료비 안받는 의사를 처벌하는 셈이지만 약재 유통은 불법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죠.

현종은 강지녕의 약계를 단속하라 명한다. 이명환도 지녕의 치종원을 없애려 한다.

이병훈 PD는 지금까지 '의술'을 다룬 드라마 마다 늘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의술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평등한 권리라는 주장을 늘 이야기 속에 담아왔습니다. 허나 치종청과 시료청의 차이를 고민하는 현종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의료정책을 묘사한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현대 사회는 조선 보다 의료 혜택이 공평해졌을까요.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지만 아직도 중병에 걸리면 치료를 포기하고 그냥 살아야하는 국민들이 더 많습니다. 의료민영화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위한 정책인지 자봉의 말처럼 '돈내는 사람이 먼저'인 정책인지 따져보는 지도자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조선 역사 속에서 백성들에게 의료정책을 펴고 싶었던 왕은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의료 서비스를 하고 싶어도 약재값이 비싸고 인력이 부족해 의술은 일부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우리같은 사람은 치료 한번 못받고 죽는다'는 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죠. 과거를 묘사한 사극 속에서 현대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극중 의료정책을 고민하는 현종의 캐릭터는 실존인물이 그랬다기 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설정한 것이지만 하필 왜 대민의료정책을 고민하는 왕을 등장시켰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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