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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대법원은 91년 발생한 '유서대필 의혹 사건'을 재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건 발생 21년만에 결정된 이번 재심 결정의 당사자 강기훈씨는 현재 암투병 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사자의 건강이 이 모양이니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던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재심이 더욱 절실합니다. 91년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대필' 논란은 당시 반정부 투쟁을 벌이던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시켰고 '이념'을 위해 동료의 유서까지 조작하는 파렴치한이란 누명을 씌웠습니다.
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김기열씨는 분신자살을 감행합니다. 같은 전민련 소속이던 강기훈씨는 그 사건으로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됩니다. 강경대씨의 죽음을 분신으로 항의하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이 사건으로 일대 전환을 맞게 되었습니다. 강기훈씨가 처벌받고 그대로 묻히는가 했지만 이후 김기열씨의 아버지가 유서 필적은 내 아들의 것이 분명하다 증언했고 사건 관련 증언들이 많은 부분 거짓으로 드러나 이 사건은 새로이 조명되기 시작합니다.
많은 부분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이 수사자료의 일부는 거짓이라 합니다. 당시 사건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의혹을 제기한 한겨례신문 기자 등은 이 사건이 '조작'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MBC와 대안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제가 왜 강기훈씨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하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사건 발생 몇개월 뒤인 1992년 MBC는 이 '유서대필' 사건의 증거인 필적감정이 허위일 수도 있다는 조사 결과를 특종 보도합니다. '유서대필'의 결정적 증거라 할 수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에 MBC가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으로 근무하던 김형영은 뇌물 수수 사실을 시인했지만 허위 필적 감정의 대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분석 결과를 조작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친 과정은 인정되었고 김형영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김형영의 이런 처벌과 강기훈 사건을 별개로 두고자 애썼고 강기훈씨는 김형영의 의심스러운 필적 감정을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MBC는 뇌물을 수수받은 김형영에 대한 뉴스를 6개월 동안 집중 취재하고 여러 달에 걸쳐 자세히 보도하여 기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검찰 수사 결과를 앵무새처럼 전달하기 바빴던 그때 검찰의 증거가 조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힌 MBC는 이외에도 많은 놀라운 취재로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습니다. 물론 80년대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 시절엔 MBC 역시 여러 언론과 마찬가지로 '어용'이란 평가를 받았고 '땡전뉴스'를 받아쓰는 불편한 기관에 불과했으나 역사적 사건 속의 MBC는 기자 정신이 살아있는 보도로 국민들의 찬사와 신뢰를 받던 '언론'이었습니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여러 사건사고 현장에 MBC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재철 중심의 현 MBC는 대통령 선거 관련 편파 시비의 중심이 되고 각종 뉴스 자막 사고에 선정성 논란까지 일어난 올림픽 중계방송을 볼 때 지금의 MBC가 과거 그 MBC가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이제는 MBC가 국민의 언론이 아닌 사장과 특정 정권을 위한 방송국임을 아쉽지만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MBC 뉴스의 추락이자 몰락입니다. 이번 대선 이후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과거 '한겨례신문'의 성공 사례를 다시 한번 성공시키자는 이른바 '대안언론' 설립 주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싹튼 것입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유신반대 시위 보도로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겨례신문사'. 1987년 9월, 그때 해직된 기자들이 창간을 결정하자 100여일만에 무려 50억원의 자본이 모이고 국내 사상 최초로 지배부주, 사주가 없는 신문이 탄생합니다. 지금도 한겨례는 편집장의 단독결정이 아닌 민주적 편집회의를 거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나꼼수, 뉴스타파, 시사인을 비롯한 '대안언론'이 새로운 언론의 유형으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 주장에 동조하며 성금 모금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검찰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진 '나꼼수'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여러 뉴스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속시원히 긁어준 대안언론이었습니다. 최근의 국내 언론은 한쪽 날개로 날려고 하는 새처럼 불안하고 위태롭습니다. 국민들의 대안언론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더 커져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몇몇 SNS 유저들은 대안언론의 구체적인 틀을 잡아가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중이고 일부 네티즌은 '협동조합형 대안언론 방송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MBC 해직 기자들과 해직 언론인들이 함께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입니다.
이미 뉴스타파의 회원이 5000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나아가서 방송사, 신문사 뿐만 아닌 '포털사이트'까지 새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이니 네티즌들의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는 말로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물론 기존 언론을 정상화하고 이미 존재하는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언론에 대한 열망을 그저 한차례 지나가는 바람으로 볼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48퍼센트에 해당하는 1400만의 염원이 담긴 대안언론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예측대로 2012년 대선 결과는 이미 예전에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지역감정과 언론이 한결같이 한 후보를 밀고 있는데 처음부터 역전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 결과 보다 언론의 대응에 실망했고 침울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언론'의 희망이 또다른 위안을 주고 있는 요즘입니다. MBC에서 '무한도전'을 빼면 볼 것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시린 마음을 달래주는 이런 열기가 어쩐지 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안언론'을 후원하시겠습니까?
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김기열씨는 분신자살을 감행합니다. 같은 전민련 소속이던 강기훈씨는 그 사건으로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됩니다. 강경대씨의 죽음을 분신으로 항의하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이 사건으로 일대 전환을 맞게 되었습니다. 강기훈씨가 처벌받고 그대로 묻히는가 했지만 이후 김기열씨의 아버지가 유서 필적은 내 아들의 것이 분명하다 증언했고 사건 관련 증언들이 많은 부분 거짓으로 드러나 이 사건은 새로이 조명되기 시작합니다.
필적감정을 한 김형영의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강기훈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출처 : MBC)
많은 부분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이 수사자료의 일부는 거짓이라 합니다. 당시 사건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의혹을 제기한 한겨례신문 기자 등은 이 사건이 '조작'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MBC와 대안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제가 왜 강기훈씨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하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사건 발생 몇개월 뒤인 1992년 MBC는 이 '유서대필' 사건의 증거인 필적감정이 허위일 수도 있다는 조사 결과를 특종 보도합니다. '유서대필'의 결정적 증거라 할 수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에 MBC가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으로 근무하던 김형영은 뇌물 수수 사실을 시인했지만 허위 필적 감정의 대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분석 결과를 조작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친 과정은 인정되었고 김형영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김형영의 이런 처벌과 강기훈 사건을 별개로 두고자 애썼고 강기훈씨는 김형영의 의심스러운 필적 감정을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MBC는 뇌물을 수수받은 김형영에 대한 뉴스를 6개월 동안 집중 취재하고 여러 달에 걸쳐 자세히 보도하여 기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검찰 수사 결과를 앵무새처럼 전달하기 바빴던 그때 검찰의 증거가 조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힌 MBC는 이외에도 많은 놀라운 취재로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습니다. 물론 80년대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 시절엔 MBC 역시 여러 언론과 마찬가지로 '어용'이란 평가를 받았고 '땡전뉴스'를 받아쓰는 불편한 기관에 불과했으나 역사적 사건 속의 MBC는 기자 정신이 살아있는 보도로 국민들의 찬사와 신뢰를 받던 '언론'이었습니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여러 사건사고 현장에 MBC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재철 중심의 현 MBC는 대통령 선거 관련 편파 시비의 중심이 되고 각종 뉴스 자막 사고에 선정성 논란까지 일어난 올림픽 중계방송을 볼 때 지금의 MBC가 과거 그 MBC가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이제는 MBC가 국민의 언론이 아닌 사장과 특정 정권을 위한 방송국임을 아쉽지만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MBC 뉴스의 추락이자 몰락입니다. 이번 대선 이후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과거 '한겨례신문'의 성공 사례를 다시 한번 성공시키자는 이른바 '대안언론' 설립 주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싹튼 것입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유신반대 시위 보도로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겨례신문사'. 1987년 9월, 그때 해직된 기자들이 창간을 결정하자 100여일만에 무려 50억원의 자본이 모이고 국내 사상 최초로 지배부주, 사주가 없는 신문이 탄생합니다. 지금도 한겨례는 편집장의 단독결정이 아닌 민주적 편집회의를 거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나꼼수, 뉴스타파, 시사인을 비롯한 '대안언론'이 새로운 언론의 유형으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 주장에 동조하며 성금 모금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트위터에선 대안언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최근 검찰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진 '나꼼수'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여러 뉴스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속시원히 긁어준 대안언론이었습니다. 최근의 국내 언론은 한쪽 날개로 날려고 하는 새처럼 불안하고 위태롭습니다. 국민들의 대안언론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더 커져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몇몇 SNS 유저들은 대안언론의 구체적인 틀을 잡아가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중이고 일부 네티즌은 '협동조합형 대안언론 방송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MBC 해직 기자들과 해직 언론인들이 함께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입니다.
이미 뉴스타파의 회원이 5000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나아가서 방송사, 신문사 뿐만 아닌 '포털사이트'까지 새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이니 네티즌들의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는 말로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물론 기존 언론을 정상화하고 이미 존재하는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언론에 대한 열망을 그저 한차례 지나가는 바람으로 볼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48퍼센트에 해당하는 1400만의 염원이 담긴 대안언론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예측대로 2012년 대선 결과는 이미 예전에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지역감정과 언론이 한결같이 한 후보를 밀고 있는데 처음부터 역전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 결과 보다 언론의 대응에 실망했고 침울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언론'의 희망이 또다른 위안을 주고 있는 요즘입니다. MBC에서 '무한도전'을 빼면 볼 것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시린 마음을 달래주는 이런 열기가 어쩐지 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안언론'을 후원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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