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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앨리스, 한세경은 자기합리화에 빠진 된장녀인가

Shain 2013. 1. 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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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그동안 우리 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던 여주인공 유형입니다. '꽃보다남자'의 씩씩하고 생활력있는 금잔디(구혜선)도 나라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재벌집 아들과 사귀었고 '시크릿가든'의 길라임(하지원)도 재벌 후계자와 사랑에 빠지는 스턴트우먼입니다. 재벌과 신데렐라의 신분 상승 이야기는 이제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이고 PPL 덕분에 제작이 편하다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드라마 소재입니다. 여주인공과 남성의 캐릭터만 조금씩 달라질 뿐 가난한 여성이 운명적으로 만난 부유한 남자로 인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 '신데렐라'가 현실이 된다고 해도 그녀들이 반드시 행복해지란 법은 없습니다. 이적의 노래 '해피엔딩' 가사처럼 신데렐라가 결혼 1년 만에 성격 차이로 헤어져 평생 혼자 살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무서운 정치싸움에 휘말려 불행하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나라 왕실에도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신분상승을 하고 왕의 정실 부인이자 어머니가 되었지만 사약을 받아 죽은 장희빈이 있고 파워게임에 밀려 정략적으로 희생된 여러 후궁들이 있습니다. 눈치껏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맞추고 왕의 사랑을 받는다 쳐도 궁궐 속의 삶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차승조를 이용하기로 한 한세경. 세경의 거짓편지로 차승조는 눈물흘린다.

'청담동 앨리스'는 기존의 신데렐라를 조금 더 변형시켜 이번에는 스스로 상대 남자를 속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여주인공 전략적 신데렐라 한세경(문근영)을 만들어냅니다. 기존 신데렐라들이 운명적으로 상대방과 헤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사랑에 휘둘려 모든 것을 올인했다면 신세경은 청담동에 입성하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장띠엘샤(박지후)의 순수한 사랑을 알면서도 거짓 편지로 그를 사로잡으려 하는 한세경은 친구 최아정(신소율)의 말마따나 정말 재수없습니다.

기존 드라마 속 신데렐라들이 '신분상승 판타지'라 불리면서도 그나마 비난받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그녀들의 사랑 만큼은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드라마를 위한 약간은 억지스러운 설정이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녀들에겐 최소한 '사랑'이란 면죄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세경'은 차승조의 순수한 사랑 마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앙큼한 면모를 보입니다. 마치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개뿔. 너같으면 이런 기회 왔을 때 냉큼 잡고 싶지 않겠니'라고 말입니다.

그녀들의 눈물은 '된장녀'들의 자기합리화일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어쩌면 신데렐라들의 최고 장점인 '사랑'을 버린 한세경에 대한 비난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해도 한세경은 재벌들의 삶이 부러운 된장녀에 불과하다 평가합니다. 평생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서민들의 고통, 디자이너도 아닌 심부름꾼이나 하는 비정규직 계약직에 아둥바둥 번 돈을 모두 투자해도 내 집 하나 살 수 없는 서민 부모. 대기업 마트 때문에 생존권까지 박탈당해야하는 그들 처지에 로또와 남자가 아니면 어떻게 살림살이가 나아지느냐 항변해도 한세경이 선택한 것은 '된장녀'의 길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필 그 많은 남자들 중 재벌 후계자와의 사랑을 부르짖는 신데렐라들도 보기 불편한 마당에 결혼으로 로또맞고 싶은 솔직한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는 한세경은 밉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한세경이 성실히 살자고 하면서도 퇴근길에 은근슬쩍 '로또'를 사버리는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마음 한구석을 자극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말로 힘겹게 버티는 서민들에게 '안 되는 줄 알지만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사냐'는 한득기(정인기)의 대사는 그나마 추스리고 있던 기운 마저 빼놓고 맙니다.

계산적으로 선택된 사랑. 전략적 신데렐라를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이 시대.

가난은 죽을병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한세경의 눈물은 정말 자기합리화일까요.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범죄까지 저지른 남자친구 소인찬(남궁민)과 헤어져야 했던 세경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재벌가 며느리가 되어 몇억을 우습게 소비하는 서윤주(소이현)를 협박하고 당돌하게 시계토끼를 찾아헤매는 한세경은 그냥 숨어있던 된장녀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 뿐일까요. 확실히 과거 드라마 속에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며 동정받았던 비극의 여주인공들 보다는 공감이 안갈 수 있겠다 여겨집니다.

더욱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그렇게 결혼, 취업, 출산까지 포기해야하는 젊은 세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꽃뱀' 뿐이냐는 점이죠. 한세경은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 타미홍(김지석)의 별것 아닌 식습관까지 캐치하고 나랑 상관없는 타인들의 신상정보를 하나둘 캐모읍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어에 능숙한데다 실력이나 감각까지 탁월한 그녀가, 스펙을 쌓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 한세경이 결국 차승조라는 눈물많고 순진한 남자나 등쳐먹는, 비굴한 '된장녀'의 길을 선택한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지상주의자 승조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세경이 찾아낼 정답은?

요즘 '88만원 세대'가 시대에 적응하는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게 성공이라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서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윗세대들은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야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세경처럼 노골적으로 청담동에 편입하려고 애쓰고 명품을 찾아헤매는 사람들을 보면 저게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서윤주는 청담동에 입성한 여성인데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신데렐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체 이 시대의 서민들에게 도망칠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물론 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서민들의 고생 따윈 모르고 부유하게 살아서 그런지 '사랑 지상주의자'처럼 눈물을 흘려대는 차승조가 청담동에서 길을 잃은 한세경에게 진짜 길을 찾아주는 시계토끼가 되어줄 수도 있고 이상한 나라에 소동을 일으킨 '앨리스'처럼 한세경이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판타지가 되어버린 이 시대. 한세경이 찾아내는 정답 역시 신데렐라처럼 동화스럽겠지만 한세경이 '된장녀'가 아닌 '사랑'을 선택하기를 믿어보고 싶달까요. 그리고 그들이 지고가는 굴레의 '진짜' 정체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 시대 서민들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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