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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앨리스, 김영현 박상연의 크리에이터 시스템 기대해본다

Shain 2012. 12. 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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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를 보시면 알겠지만 마지막회를 앞둔 드라마 '메이퀸'에 굉장히 실망한 상태입니다. 조선업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었고 또 통속극이니까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싶어 몇가지 막장(?) 설정을 용납해왔지만 아버지의 원수인줄 알았던 남자가 친아버지라는 설정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더군요. 인기 드라마 작가가 된다는게 쉽지 않은 걸로 아는데 어째서 평판을 깎아먹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송국의 '청담동 앨리스' 쪽으로 채널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김영현'과 '박상연'이란 이름 때문에 언젠가는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김영현은 예전부터 '대장금(2003)'으로 유명했지만 어느새 그 옆에 당연한듯이 박상연 작가의 이름이 함께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대본 작업을 해 함께 드라마를 만든 것이 몇편 됩니다. MBC와 SBS의 대표 히트 드라마인 '선덕여왕(2009)'이나 '뿌리깊은나무(2011)'는 모두 두 사람이 공동집필해 만든 드라마입니다. 두 사람은 2007년 '케이피앤쇼(KP & SHOW)'라는 컨텐츠 제작법인을 만들고 크리에이터와 작가가 함께 작품을 기획하는 작가 중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청담동 앨리스'에 까메오로 출연한 박상연. 김영현, 박상연은 이 드라마의 크리에이터다.


작품의 토대가 되는 기본 줄거리나 컨셉을 기획하는 크리에이터 역은 주로 김영현, 박상연이 맡고 세부적인 자료를 조사해 집필하는 과정은 그 회사의 소속작가들이 담당하는 이 시스템은 미국 드라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집단작가시스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드에는 '작가 겸 기획자'또는 '제작자'라는 아리송한 타이틀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그 미드를 기획하고 그 미드의 대본을 일부 직접 쓰기도 하며 '크리에이터'라 불립니다. 대부분의 유명 미드 제작자들은 한편의 드라마, 영화를 공동기획하는 작가 집단을 꾸리고 있습니다.

미드 '로스트(Lost)'로 유명한 J. J 에이브람스나 미드 '하우스(House M.D.)'의 브라이언 싱어와 데이비드 쇼어, '롬(Rome)'과 '멘탈리스트(Mentalist)'를 제작한 브루노 헬러, '글리(Glee)'의 라이언 머피,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아론 소킨,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마이클 패트릭 킹,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제리 브룩하이머 등 가끔식은 그들이 작가냐 제작자냐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그들은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작가시스템을 운영하고 미국 영화와 드라마의 거물이 되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김영현, 박상연', 작가 '김지운, 김진희' 아직까지 낯선 집단작가시스템.


집단작가시스템, 즉 한 무리의 작가들이 드라마 하나를 공동집필하면 장점이 많습니다. 일단 드라마 제작전에는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드라마 컨셉과 줄거리를 잡아나가기 때문에 혼자 작업할 때 보다 훨씬 수월하고 색깔이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한 사람의 작가가 집필하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파트를 나눠 대본 제작을 함께 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지만 무엇 보다 중요한 건 한 드라마에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담긴다는 점입니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미 '로열패밀리(2011)'의 권음미 작가를 통해 이를 실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의 또다른 장점은 작가가 여러 명이라 '펑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미드가 쪽대본없이 재빨리 제작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난 자본과 함께 대본이 빨리 나오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대본을 써내는 일을 한 사람의 작가에게 맡기는 것 보다 여러 명에게 맡긴 후 최종 수정하는게 당연히 더 빠릅니다. 쪽대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도 이 시스템인 것입니다.

물론 미국식 집단작가시스템과 한국의 김영현 박상연의 '케이피앤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그런 크리에이터들이 투자를 받고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크리에이터가 감독을 겸하기도 합니다만 '케이피앤쇼'는 순수 작가 집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를 누리는 미국식 작가집단은 메인 작가를 여러명 두고 인턴 작가들도 다수 고용한 거대 집단이지만 '케이피앤쇼'는 그 정도 규모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청담동 앨리스'는 그들이 '케이피앤쇼'라는 이름을 내걸고 공동기획한 세번째 작품입니다.

타미홍과 신인화가 언급한 JK의 공순호. 케이피앤쇼의 '로열패밀리' 주인공이다.


작가는 '영혼을 깎는 직업'이라는 말처럼 꽤나 소모적인 직업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때로는 남들의 경험을 글로 써내려가다보니 쉽게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소재가 달려 늘 똑같은 패턴의 작품을 쓴다는 악평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몇몇 작가들은 몇년이 지나도 똑같은 드라마 구성으로 질린다는 평가를 자주 받습니다. 집단 창작 시스템은 이런 작가 특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또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창작방법입니다. 내게는 쓸모없는 아이템이나 장면이 다른 드라마에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로열패밀리'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 특유의 진지함이 묻어나면서도 권음미 작가의 드라마틱한 색깔이 융합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청담동 앨리스' 역시 된장녀, 명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88만원 세대, 중산층 몰락, 청담동, 재벌 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담아내면서도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캐치하고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아이디어가 함께 했기 때문에 이런 독특한 컨셉의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영현, 박상연' 크리에이터의 드라마는 반드시 히트한다는 공식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드라마 역시 매력있다.


'청담동 앨리스'의 첫 분위기는 앤 해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의 이야기를 다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을 연상시켰습니다. 한 패션회사에 들어가 디자이너가 되길 원하는 한세경(문근영)과 최첨단 패션산업을 이끄는 신인화(김유리)의 대립은 '청담동'을 아직 모르는 새내기 신입사원의 고충을 보는 것 같았죠.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차승조(박지후)라는 파랑새를 알아보지 못하는 한세경의 이야기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어하는 세경이 사랑을 선택한다면 쉽게 청담동 입성이 가능하겠지만 이야기는 점점 더 꼬여갈 것입니다.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많은 작가집단이 우리 나라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메인작가와 보조작가 시스템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고 미드 보다 작은 시장규모 탓에 그들이 거물 제작자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송지나, 김종학의 경우는 부부이기 때문에(부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 루머였나보군요 정정합니다) 작가 출신 제작자라고 보긴 힘들죠. 그러나 '김영현, 박상연'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유명하고 또 그들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드라마 역시 우수한 작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언젠가 작가출신 제작자로 변신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의 아론 소킨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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