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구가의 서

'구가의 서' 이연희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나

Shain 2013. 4. 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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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의 월화드라마가 하나같이 쟁쟁하다 보니 요즘은 볼거리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고 재미있는 드라마는 '직장의 신'이지만 MBC의 '구가의서'도 꽤 매력적이더군요. 특히 오프닝에서 낮은 목소리로 나레이션하는 이순신(유동근)의 목소리는 대체 이 드라마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이순신을 끌어들였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구가의 서'는 실존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극이라기 보단 판타지입니다. '직장의 신'이 현실을 기반으로 한 풍자드라마라면 '구가의 서'는 경이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반인반수 주인공 강치(이승기)의 탄생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구월령이 사랑하게 된 아름다운 여인 윤서화(이연희). 구월령이 살던 숲에서 두 사람이 혼인하고 살아가던 장면은 너무나 꿈만 같았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서화가 구월령을 죽게하는 장면은 처연했습니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 구미호의 전설이 그랬던 것처럼 천년을 살아온 신수의 순수한 마음과 작은 불안 때문에 찰라에 사랑을 버리는 인간의 좁은 속내가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인간을 사랑했던 구미호들은 늘 배신을 당하곤 했죠.

이번에도 인간에게 배신당한 구미호와 어리석게 사랑을 버린 한 여인 윤서화(이연희).

많은 네티즌들이 보여준 반응처럼 저 역시 이연희를 배우라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초기 출연작이던 '해신(2004)'에서는 정화(수애)의 아역을 맡았을 때는 첫인상이 참 예뻤고 신선했으나 그 뒤로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 보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발음이나 발성 훈련이 덜 되었고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연기력' 즉 감정 표현이나 복잡한 심리적인 표현에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데뷔 초반에는 신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점이 덮였으나 CF모델인지 배우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았던 '유령(2012)'에선 그런 문제가 도드라졌죠.

꽤 많은 배우들이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가 시청자들에게 잊혀지곤 합니다. 한두장면씩 출연하는 무명 연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대받는 신인 연기자로 출발해 서서히 잊혀져 가는 배우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유명 아이돌 스타로 유명세를 믿고 출연했다가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 잊혀지는 배우가 있고 반면에 아이돌이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해서 배우로 자리잡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쥬얼리 박정아는 '웃어라 동해야(2010)'에서 서투른 연기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내 딸 서영이(2012)'에서는 안정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며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유령'에 출연할 때 보다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연희. 근성이 보인다.

사실 시청자들이 이연희의 연기가 어떠니 저떠니 말을 하긴 합니다만 배우가 될 것이냐 아니면 CF 모델으로 남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이연희 자신의 선택입니다. 출연 작품 한두편으로 근근히 유명세를 이어가며 초특급 모델로 연예인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고 거품이 많은 유명스타들처럼 예쁜 얼굴의 대명사로 CF 스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연기자 이연희'를 포기한다고 해도 '연예인 이연희'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전문 연기자가 되느냐 그냥 스타가 되느냐는 기획사가 선택해줄 일도 아니고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과거 예쁜 외모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가 연기자로 살아남은 많은 여배우들이 그랬듯 이연희도 '유령' 출연을 계기로 연기자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냐 선택해야했을지 모릅니다. '직장의 신'에서 무뚝뚝한 탬버린 춤을 선보이며 능숙하게 수퍼갑 계약직 미스김 역을 선보이는 김혜수 조차 데뷔 때는 얼굴만 예쁜 배우라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 다양한 역할을 커버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혜수의 연기자 자질이 남들 보다 뛰어났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을 뿐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연기를 늘여간 건 어디까지나 김혜수 개인의 노력이었습니다.

데뷔 초 예쁜 얼굴이 방해가 되었던 김혜수와 황신혜. 지금은 색깔있는 연기자로 인정받는다.

데뷔 초반 컴퓨터 미인으로 유명세를 탄 황신혜는 눈에 확 띄는 예쁜 얼굴과 강렬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과 웅얼거리는 듯한 대사는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또 얼굴이 너무 예뻐서 평범한 역할을 맡을 수 없었던 황신혜는 연기 커리어를 늘이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며 개성있는 연기자로 거듭난 건 끊임없이 노력했고 발음을 교정한 덕입니다. 황신혜는 얼굴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지도 않았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근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번 '구가의서'에 출연한 이연희가 '유령' 때 보다 확 달라졌다 싶을 만큼 연기력이 좋아졌다거나 화면을 사로잡을 만큼 표현력이 늘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아직까지는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잘한다 싶을 정도로 잘 하는 연기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주목해서 본 것은 과거 얼굴만 예뻤던 배우들이 연기자로 살아남았던 비결, 즉 근성을 본 것입니다. 연기가 안된다는 지적을 받고 그대로 주저앉은게 아니라 눈길을 끌 만큼 노력해서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전히 어떻게 표현하는게 더 효과적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발음은 작년 보다 달라졌습니다.

매우 잘 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연기자로서의 근성을 보여준 이번 특별출연.

김혜수나 황신혜가 예쁜 얼굴 때문에 연기의 폭을 넓히기 힘들었던 것처럼 이연희 역시 CF 스타로 활약하는 자체가 그동안 연기 발전에 방해가 됐을 수 있습니다. 일부 팬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소속사 SM이 연기자 보다는 가수를 우선하는 곳이라 훈련받을 스승이나 경험을 갖기 부족한 환경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진짜 배우가 되려면 TV 출연 스케줄을 챙겨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연기자 성장 계획를 세우고 연극배우들에게 훈련받는 등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었죠. 단역으로 출연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던 김혜수처럼 노력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연희는 이번 특별출연을 계기로 연기에 대한 어떤 계획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이번에야말로 노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뵈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남자 구미호였던 상대역 최진혁과의 커플신도 괜찮았고 다양한 표정을 선보인 초반부 등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드라마는 많지만 이런 그림같은 판타지 드라마는 보기 힘듭니다. 구미호와 사랑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 여성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유령' 때는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지금은 서화라는 캐릭터가 보이니 TV 밖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예쁜 배우'를 포기한 이번 특별출연의 각오. 이연희가 연기자로 남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동안  연기를 비난하던 팬들도 이번에는 잘 어울리고 좋았다며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구요. 출연분량은 단역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또 데뷔 10년차 연기자가 아직까지 연기 연습 중이냐는 논란이 있을 법도 합니다만 이번 출연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연기자 이연희에게는 이연희에게 '구가의서' 특별출연은 연기자가 될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지을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라 봅니다. 이연희 개인으로서도 '구가의서'는 '배우'로 호평받은 첫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시청자들은 그냥 TV에서 보여지는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면 환호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망하는, 연기자와 반응을 주고받는 대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자에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 대사 전달력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숨겨왔던 근성을 보여준 김에 이번 기회에 연기자 이연희씨가 독하게 마음먹고 발성, 발음을 교정했으면 합니다. 덧붙여 다양한 표정을 연구해보는 노력이 보태진다면 10년, 20년 후에도 계속 볼 수 있는 배우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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