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그래 우린 소모품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다

Shain 2013. 4. 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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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연애가 금지된 회사에서 남몰래 사귀는 건 생각 보다 고달픕니다. 일방적으로 짝사랑을 해도 티가 나는 게 사랑이고 같이 있는 모습만 봐도 들통나는게 남녀 사이의 감정인데 무심한 척 아무 사이 아닌 척 적당히 친하게 지내기란 생각 보다 쉽지 않습니다. 잠깐만 지켜봐도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니란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으니 직장 안에 소문이 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상대방에게 친하게 지내는 파트너라도 있을 땐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질투와 불안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사내 연애를 하다 임신까지 해버린 여직원 박봉희(이미도)의 처지는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애인 구영식(이영훈)은 월급을 차압당해 봉희의 월급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 퇴사할 수 없습니다. 회사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들은 계약직의 계약 연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고용하고 할 일이 사라지면 계약을 해지하는 계약직. 임금도 더 적고 각종 휴가나 복지에서 차별받는 계약직이 임신까지 했다면 대부분의 회사에서 계약 연장을 거부할 것입니다.

드러내놓고 임신을 축하받지 못한 계약직 박봉희.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던 그녀의 어려움.


조금  낫긴 하지만 임신으로 인한 퇴사 종용은 정규직도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출산, 육아휴가를 짧게는 한달 길게는 이년씩 쓰면 업무 공백이 생긴다며 회사에 미리 말하고 임신하라는 희한한 요구를하는 상사도 있습니다. 동료들이 업무 분담을 해주겠다며 나서도 회사는 손해볼 수 없다며 퇴직을 요구하니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는 적게 낳고 되도록 늦게 갖자고 합의합니다. 가족같은 회사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직장은 많지만 정말 가족처럼 대해주는 회사는 흔치 않습니다.

'직장의 신'에는 회사를 대하는 입장이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잔인한 직장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당당한 계약직을 선언하고 '나는 누군가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미스김(김혜수)과 직장이 나의 삶이라며 직장의 멍멍이를 선언한 정규직 팀장 장규직(오지호)은 같은 일에도 늘 다른 선택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희한하게도 두 사람이 선택한 행동은 다르지만 그 출발점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통적으로 두 사람은 직장이 인간의 정을 나누는 곳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맞부딪히는 두 사람.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선택은 달라도 출발점은 비슷하다.


한때 은행 정규직이었으나 정리해고당했다는 미스김. 미스터리한 과거의 미스김도 한때는 정주리(정유미)처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했고 실수투성이에다 직장 동료에 마음이 설레이기도 하는 풋내기 직장인이었습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계약직이 되었고 그 어떤 회사에 가서 일을 해도 쉽게 짜를 수도 없고 싫은 소리도 할 수 없는 수퍼갑 계약직이 되었습니다. 칼퇴근을 하고 점심을 위해 달려나가고 회식에 초과 수당을 요구해도 회사는 능력이 넘치는 미스김에게 찍소리하지 못합니다.

대학 때는 금빛나(전혜빈)와 사랑하는 사이였던 장규직 역시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Y장 정규직이 되기로 마음먹고 회사를 목표로 올인합니다. 미스김이 싫다고 거부한 정규직 노예가 장규직에게는 삶의 목표였고 신앙입니다. 같은 동료들에게 '딸랑이'라고 불리는 한이 있더라도 회식에서는 황갑득 부장(김응수)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체육대회에서 상무님에게 져주고 같은 사무실 계약직은 남처럼 소모품처럼 냉정하게 대하는게 그의 행동원칙입니다.

사랑도 공감도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두 사람 미스김과 장규직. 그 본심은 같지 않을까.


갖가지 자격증으로 모든 일을 해내는 미스김은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 현실을 뒤집을 수 있고 직장인에게 만능이 되길 요구하는 현실을 풍자한 역설적인 캐릭터죠. 모든 직장인은 미스김이 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박봉 계약직을 벗어날 수 없는 박봉희가 되거나 정규직이 되도 존재감없는 고정도(김기천)가 됩니다. 아니 장규직처럼 잘 나가도 회사에 큰일이 터지면 사표를 써야하는게 직장인입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어떻게 헤어질지 모르는 직장에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미스김이나 잠깐 머물다 가는 계약직은 남이고 오래 근무하는 정규직만 동료라고 하는 장규직이나 직장동료에 대해 고민해봤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경험이 있는 듯합니다.

결국 미스김은 쉽게 계약하고 계약해지당하는 '소모품' 아니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고 장규직은 장규직대로 회사의 소모품이 아닌 회사의 일부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직장에 종속되어야하는 직장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뒤집어 보려 하는 나름의 노력인 셈이죠. 많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미스김 보다는 장규직처럼 회사에 충성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혹은 복사기를 고장내고 짤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정주리처럼 말입니다.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든 우린 결국 같은 사람이다. 빛나는 전구에 급이 있긴 있을까.


극중 금빛나는 생계에 대한 고민을 한 적 없고 지각해도 짤릴까봐 걱정하지 않는 은행장 딸입니다.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 정주리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정규직과 계약직을 갑을관계도 잘 이해하지 못하며 계약직 정주리와 친구가 되겠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짤리면 결혼이나 하고 싶다는 그녀는 직장 동료들의 사내 연애와 결혼, 우정에 현실감각이 거의 없습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없다면야 다른 계약직이나 정규직들도 해맑게 동료애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약간 철없는 금빛나처럼 회사가 정을 나누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협소한 공간안에서 함께 위기를 겪고 오래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직장 동료들 역시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감기걸린 미스김을 돌봐주고 박봉희의 임신을 눈감아주기 위해 승부에서 져준 장규직이나 그런 장규직을 이해하기 시작한 미스김, 친절한 직장 상사 무정한(이희준)에게 사랑을 느끼는 정주리나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특별한 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무정한(이 초식남 캐릭터 정말 마음에 듭니다)처럼 크리스마스 트리를 빛내는 전구에 급이 있는 것같아도 결국 우리는 갈아치우는 소모품이 아니라 다 같은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꿈같은 이야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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