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미스김과 장규직의 운명을 갈라놓은 화재사건

Shain 2013. 5. 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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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족같은 직장'을 강조하는 회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합니다. 직상 생활에 이력이 붙은 경력직들이야 '가족'이라는 말의 뜻이 어려워하지 않고 일을 마구 시키겠다는 뜻임을 직감하지만 잔뜩 위축된 사회초년생들에겐 막연히 따뜻하고 고마운 말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월급을 적게 줘도 웃으며 야근까지 해내는 직원이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갑고 예쁘겠습니까. 학자금 대출 받아 좋은 대학나오고 유학다녀온 새내기 직장인들의 미래는 '직장의 신' 미스김(김혜수)가 묘사한 직장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의 신' 원작이 일드 '파견의 품격'이기 때문에 몇몇 장면은 한국과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은행권의 정리해고와 계약직에 대한 묘사는 거의 유사하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벌어지는 현상은 어느 나라할 것없이 비슷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90년대 후반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 은행들이 통폐합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이후 은행권의 콜센터같은 인력은 일반계약직도 아닌 파견계약직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었구요.

'입사하는 그 즉시 가족처럼 편안하게 너를 막 부려먹을테니까요' 미스김이 말해준 불편한 진실.

일드에서는 어떻게 구분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신입사원 정주리(정유미)는 일종의 파견계약직에 해당합니다. 3개월만 근무하는 미스김은 임금이나 수당을 보니 일종의 프리랜서, 특수계약직이구요. 근무 시간에 비해 열악한 월급을 받는 파견계약직에게 애사심을 강요하는 것 만큼 웃기는 일도 없을 것같은데 드라마 속 Y장처럼 가족같은 애사심을 강조하는 '갑' 직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해당 업체에 대한 불만사항을 일일이 들어주는 고객센터 인력 대부분이 파견계약직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직장도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인 이상 계약직 정규직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드라마 속 미스김도 프리랜서급의 계약직으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부정하면서도 동료들과의 정 때문에 가끔씩 흔들립니다. 계약직 따위는 동료로 취급하지 않던 장규직(오지호)도 짤릴 위기에 처하자 계약직들의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놀고먹는 것같은 고정도(김기천) 과장을 보면 언제부터 직장이 사람을 쉽게 버리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평생직장' 세대와 '평생직장'이 사라진 세대의 가치관은 다르다. 직장인이 소모품이 되버린 이 시대.

'낡은 시계'에 비유된 고정도 과장의 이야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극중 박봉희(이미도)의 말처럼 놀고 먹으면서도 계약직 월급의 4배를 받는 고정도는 빡빡한 월급을 받는 계약직들에게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식으로 '정년보장'을 받은 직장인들을 가끔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젊은 직장인들의 눈에는 회사가 무슨 자원봉사단체도 아닌데 딸 시집보낼 때까지 직장을 다닌다는 고정도 과장이 얄미울만도 합니다.

그렇다면 회사가 사람을 쓰다가 고장난 부품처럼 갈아치워버리는 건 당연한 걸까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주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할 수도 있겠으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그 부분을 당연하게 여기는건 좀 안타깝더군요. 직장인들은 하루의 반이상을 직장에서 삽니다. 한 사람의 황금같은 시간을 송두리째 바친 직장에서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할 권리는 왜 보장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미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임에도 여전히 직장은 사람들에게 애사심을 요구합니다.

대한은행 화재사건은 극중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들의 '직장'은 이때부터 달라졌다.

전문 계약직 미스김과 새내기 계약직 정주리, 성격나쁜 팀장 장규직과 사람좋은 무정한(이희준), 은행장의 딸인 금빛나(전혜빈)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2007년 대한은행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그 순간 정주리는 대기업 정규직이 되자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와 연애중이었고 정리해고된 미스김은 그 화재현장에서 진미자 계장(이덕희)을 잃고 다리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전경으로 근무하던 무정한은 시위중이던 은행직원들과 대치중이었고 장규직의 아버지는 그때 자살을 했습니다.

거품경제의 붕괴가 고정도같은 직장인들을 몰아내고 직장인들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가른 것처럼 새내기 직장인이던 미스김과 장규직의 선택이 갈린 것도 그 화재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계약직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장규직에게도 남모를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사람좋아 보이는 무정한에게도 남에게 상처를 준 과거가 있었습니다. 정주리의 말처럼 미워해야할 사람과 상처준 사람이 명확하다면 덜 힘들 수도 있을텐데 미스김과 장규직의 입장차이 뒤에는 같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아픔을 가진 두 사람.

이들의 대립은 결국 본인들이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시위라도 해야했던 은행직원들과 전경이기 때문에 시위대를 막아서야했던 무정한의 대립처럼 그들의 입장차이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토록 미스김에게 관심이 많은 무정한이 한때는 미스김을 밀친 전경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미스김과 앙숙인 장규직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했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갈등하곤 합니다.

드라마 속 '대한은행 화재사건'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IMF를 시작으로 비정규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먼 기억 속의 일입니다. 이미 많은 직장인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에 순응하고 있고 고정도 과장처럼 한 직장에 오래 몸담은 사람은 전설처럼 여겨질 날이 올 것입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지고 정규직도 파리목숨인 이 시대, 계약직과 비정규직이 사회의 대세이며 어디서나 '갑' 아니면 '을'의 관계가 되는 이 시대에 '가족같은 회사'가 존재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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