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신, Try to Remember 미스김이 그리워하는 그 시절?

Shain 2013. 5. 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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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직장의 신'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입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계약기간이 다 되면 어쩔 수 없이 계약해지당해야하는 계약직이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고 비정규직이 무조건 정규직을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갑'과 '을'이 선명한 직장에서 혼자 힘으로 깰 수 없는 불합리를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직장에서 비정규직이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면 정규직은 그 바로 뒷쪽에 서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취업을 하고 직장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는 일이 한때는 사람들의 희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꿈을 꾸며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지금은 딱딱하고 무서운 미스김에게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구요. 나라를 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겠다는 엄청난 꿈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바로 직장었습니다. 극중 미스김은 화재사건 이후 그 '소박함'은 꿈일 뿐이라는 지독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많은 현대인들이 취업과 결혼과 노후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정주리의 눈물에서 직장선배 전미자의 모습을 본 미스김. 소박한 꿈이 그리 큰 욕심일까?


'여기 앉아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게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냐'는 전미자(이덕희)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며 눈물지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미스김과 전미자의 정리해고 파업을 6년전의 일로 묘사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은행권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전환은 매우 흔한 일이었죠. 그리고 그때부터 젊은이들의 꿈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정주리(정유미)같은 젊은이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죠.

'직장의 신' 미스김(김혜수)은 6년전에 은행에서 해고당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과거에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은행이 통폐합되며 직원들이 해고당했습니다. 은행 직원들의 해고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일부 은행은 합병, 인수 조건 중 하나로 고용승계를 내걸기도 했으나 고용불안은 여전했습니다. 특히 합병당하는 쪽 은행의 계약직들은 계약해지를 당해도 할 말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습니다.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불안한 고용과 직장으로 꿈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J은행은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K은행에 합병되었고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가 해고없이 고용승계되었습니다. 다른 은행에 비하면 상당히 운좋은 케이스였으나 정규직들은 근무 조건이나 월급에서는 많은 부분 양보했습니다. 반면 J은행에서 근무하던 계약직들은 사무직에서 고객센터 쪽으로 근무지를 이동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고객센터 업무를 버티지 못한 많은 직원들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K은행은 나머지 고객센터 근무인력은 월급이 적은 파견 계약직으로 채워넣었죠.

지금은 그 계약직, 파견직들이 '중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입니다만 사실 고객센터 업무는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스트레스가 큽니다. 고객센터 인력 대부분은 은행의 업무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잘 알아야 답변할 수 있는데 시간이 바쁜 고객은 어서 빨리 처리해달라며 화를 내기 일수입니다. 몇번씩 느끼는 거지만 솔직히 어지간한 인내력이 아니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고객들에게 끈기있게 답변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런 꼼수가 아니면 바꿀 수 없는 사회의 현실.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다.


정주리의 이름으로 공모전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오히려 정주리를 계약해지의 위기로 몰아넣은 무정한(이희준) 팀장은 어떻게든 정주리를 지키겠다며 황갑득(김응수)을 찾아갑니다. 그런 친구를 보다 못한 장규직(오지호)도 무정한을 거들기 위해 따라나섭니다. 아예 미스김은 황갑득에게 유도 대결을 신청해 정주리의 계약해지를 철회하면 져주겠다고 합니다. 남의 이목을 중요시하는 황갑득은 미스김의 말대로 했고 결국 정주리는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스김이 정주리를 도와준 것은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어한 전미자 계장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직장을 다닌다는 게 뭘 그렇게 큰 바람이라고 정규직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정주리는 괘씸죄에 걸려 짤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직장에서 똑같은 상처를 받은 미스김이 '직장은 정은 나누는 곳이 아니라며 정쌓기를 거부하면서도 예전 직장상사와 똑같은 눈물을 보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은 왜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요.

Try to remember를 부르는 미스김이 그리워하는 그 시간은 과거일까 이상일까.


J은행 사람들은 그랬다고 합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들이 해고당하고 험한 고객센터로 옮겨가는데도 인사 한마디를 해줄 수가 없더랍니다. 무정한 팀장처럼 한때 부하직원이었던 계약직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나설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러워도 정규직들 역시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으니까요. '무슨 식구가 정들만하면 없어지냐'는 신민구(나승호)의 말처럼 그런 상황이 서운하다가도 직장인들은 계약직들에게 쓸데없는 동정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현대사회의 매너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여명의 'Try to remember'를 부르는 미스김은 과거의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주리처럼 삶에 대한 소박한 꿈을 꾸던 그때를 아니면 자신을 붕어똥이라 부르며 챙겨주던 살뜰한 직장선배와 정겹게 일하던 그때를? 그것도 아니면 짤릴 걱정없이 일하고 가족처럼 챙겨주며 나이들면 멋있게 은퇴할 수 있는, 세상에 없는 이상적인 직장을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미스김이란 캐릭터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직장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여겨주는 회사도 세상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따라 미스김의 그리움이 조금은 허전해 보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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