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직장의 소모품이 되기 위해 우리가 버리는 것들

Shain 2013. 5. 15. 14:28
728x90
반응형
사람을 소모품으로 쓴다는 말은 사용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에게도 별로 기분좋은 말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한 기업의 운영자나 소유주도 아닌 중간 관리자가 한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사람들 - 자신의 입사 동기, 선후배였던 사람들을 - 해고하고 인사이동시킬 때 아무 감정없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고 맡아야하는 일이라면 최대한 뒷탈없이 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장의 신' 황갑득(김응수)의 역할을 바로 그 '악역'입니다.

회사라는 조직을 일종의 기계로 비유하면 인력을 투입하거나 업무를 지시하는 황갑득같은 사람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계약직을 비롯한 사원들이 '소모품'이나 '부품'으로 취급되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의 생리같은 것입니다. 계약직 미스김(김혜수)의 말처럼 무정한(이희준)같은 사람들이 부하직원을 위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런 집단적인 원리로 돌아가는 기업을 상대하기엔 헛수고일 뿐입니다. 

황갑득 부장은 결국 정주리의 아이디어를 뺴앗아 장규직이 추진하도록 한다. 무정한의 위기.

그러나, 커다란 기계의 부품이나 소모품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무정한같은 직장 상사를 만난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무것도 잘 모르는 새내기 시절이 있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쓸모없는 기계부품처럼 버려진다면 세상이 참 삭막하고 힘들 것입니다. 정주리(정유미)는 비록 파견계약직이지만 무정한을 만나 따뜻한 격려를 받게되었고 고정도(김기천) 과장은 평생을 다닌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으리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황갑득같은 중간관리자가 회사를 움직이는 큰 축이면 무정한같은 상사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또다른 축으로 회사를 좀더 인간적이고 편한 곳으로 만들어주어야하는데 그건 말그대로 꿈일 뿐입니다. 부장이 성과를 내라 재촉하면 팀장이 닥달하고 대리가 쪼아대는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를 주는 조직이 훨씬 더 많죠. 특히 계약직과 정규직의 관계가 되고 보면 계약직을 부하직원이라며 감싸기 보다 이용하다가 시간되면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게 서로를 위한 '매너'가 되버립니다.

새내기 직장인이 무정한같은 직장상사를 만나는 건 행운이지만 무정한같은 사람은 도태된다.

직장 상사가 직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성과를 강조하는 것은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직장의 신'의 무정한과 장규직(오지호)은 친구이자 직장동료로 서로를 아끼지만 직장에 모든 것을 건 장규직은 무정한을 밟고 일어서야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계약직들을 직장을 스쳐지나가는 고용인 쯤으로 여겨왔고 승진을 위해서라면 아부를 마다하지 않던 회사멍멍이 장규직도 친구의 업적을 빼앗는 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수많은 계약직들이  일하러 왔다가 떠나고 쓰다가 버려질 때도 장규직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늙을 때까지 동료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무정한이 떠난다니 천하의 장규직도 무서웠을 것입니다. 자신 역시 소모품처럼 버려질 위기에 처해봤던 장규직입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회사에서 내 의자를 잃는 것 보다 무서운 건 동료를 잃는 거'라는 미스김의 말처럼 험난한 인생의 동반자가 될 친구가 사라진다는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입니다.

'내 의자를 잃는 것 보다 무서운 건 동료를 잃는 거' 그 말의 뜻을 알아?

유난히 동료들 간의 경쟁을 강조하는 직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옆자리 사람과 실적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직장의 직원들은 대부분 신경성 질환을 앓거나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고통을 호소합니다. 생존이 걸린 일이라 모두 열심히 하다가도 실적에 따라 한명을 해고하겠다고 하면 그 한명이 내가 될까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한 사람이 먼저 사표를 내면 그제야 안심을 하고 얼굴을 펴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를 잡지 못하는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직장 동료에 대한 인정을 버렸다고 느끼다가도 며칠째 애먹이던 속쓰림이 가라앉는 걸 보면 정체모를 자괴감 마저 듭니다. 그럴 땐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잘 나가는 소모품이 되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나만 살아남는다고 다가 아닌거죠.

장규직이 부장의 명령대로 기획안을 빼앗고 친구의 좌천을 알면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하나 버티기도 힘든 직장에서 동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옆사람을 챙기다가는 무팀장처럼 어느새 승진에서 밀려나고 큰 일을 해낼 수 없는 인물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회사에서 짤린다는건 단순한 해고가 아니라 직장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고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깨트리는 일입니다. 남을 밟고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전쟁에서 속앓이를 할 뿐이죠.

엄마의 맛이 하나인 것처럼 사람의 가치도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스김이 정주리와 함께 엄마 도시락을 만듭니다. 정주리의 엄마 도시락 아이디어를 빼앗아 공장식 도시락 생산 '킹마마'를 추진하는 황부장은 그깟 도시락 어디서 만들면 어떠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주리의 엄마(김미경)가 싸온 도시락이 특별한 건 세상에 단 한사람 밖에 없는 엄마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계적인 조직생활이 중요하고 수치상의 실적이 중요하다고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기업은 없습니다. 엄마표 시래기된장의 맛이 집집마다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한 직장에서 옆자리 동료에게 사표를 쓰게 한 직장상사가 악인은 아닌 것처럼 '직장의 신' 장규직도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소모품처럼 사람이 버려지고 희생되는 직장 세계의 질서를 따랐을 뿐입니다. 계약직은 이용하면 된다고 우기면서도 전미자 계장을 그리워하는 미스김처럼 그 역시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회사가 계약직을 비롯한 개인의 소중함을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결국 이 문제는 황갑득과 장규직같은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이 훨씬 중요한게 아닌지 나 아니면 내 친구가 도태되어야하는 회사에서 나라면 용감하게 친구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친구까지 버려가며 회사의 소모품이 되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고 아까우니까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