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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은 없어도 있을 건 다 있는 '출생의 비밀'

Shain 2013. 6. 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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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청자들이 포털사이트 기사에 적는 댓글을 보면 드라마의 특징을 간결 명료하게 잡아낸 촌철살인의 내용이 적혀 있곤 합니다. 흥미롭게도 드라마 '출생의 비밀'은 배우, 연출 다 좋은데 드라마 제목이 '에러'라는 댓글이 자주 달리곤 합니다. 드라마에 만족하는 시청자들이 많고 드라마도 괜찮은데 제목이 '출생의 비밀'이라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안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팬들 중엔 오죽 그게 억울했으면 본문도 읽지 않고 이 드라마에는 '출생의 비밀'이 없다는 댓글을 개인블로그에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출생의 비밀'에 출생의 비밀은 없지만 다른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기억상실증'같은 것은 있습니다. 대신 그런 설정을 미스터리로 잘 섞어놓은 편입니다.'출생의 비밀'은 막장 드라마에 질린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키워드죠. 심심하면 볼 수 있는 불치병, 기억상실증, 자살, 후계자 다툼같은 것에 질린 사람들은 이 드라마 제목만 보고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거기다 워낙 다른 드라마에 출생의 비밀이 흔하기 때문에 '출생의 비밀'을 검색하면 '백년의 유산'같은 다른 드라마가 검색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정이현은 왜 죽으려 했던 것일까. 이 드라마 최대의 미스터리.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는 주인공 정이현(성유리)은 왜 자살을 하려 했느냐는 점입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정이현은 고등학교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 최국(김갑수)을 만나 하버드 대학에 가고 돌아와서 어떻게 살았는지까지는 대충 아귀가 맞는데 도대체 왜 고등학교 때 잠시 만난 홍경두(유준상)와 홍해듬(갈소원)을 낳았는지는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아버지 최석(이효정) 가족과 지내면서 죽을 만큼 실망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라는 특별한 능력은 최국에서 정이현에게 또 홍해듬에게 대를 이어 유전되었습니다. 무엇이든 한번 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내는 것은 물론 아무리 복잡한 숫자도 정확하게 계산해 냅니다. 정이현은 엄마 정주겸(최수린)과 가족 하나 없이 살다 아버지가 밝혀진 후로는 돈걱정없이 예가 그룹에서 살아왔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데다 돈까지 부족함이 없으니 도무지 왜 자살을 하려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 이선영(이진)과 박수창(김영광)이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해서 자살하려고 했나 싶었지만 기억을 되돌려보니 그런거치곤 너무 담담했고 최석의 말대로 아버지 최국이 각서를 쓰고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죽으려 했나 했지만 그것도 이유치고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평소에 밝고 긍정적이던 정이현은 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했던 것일까요. 그 비밀의 키는 아무래도 최국의 이복동생인 최석과 열렬한 기독교인 조여사(유혜리), 그리고 이현의 사촌 오빠인 최기태(한상진)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석 가족은 홍해듬이 들어오고 난 후 작은 변화를 맞게 된다. 최석의 가슴에 응어리진 것은 무엇일까.

정이현이 잊어버린 미스터리는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최석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형 최국에게 평생 동안 컴플렉스에 시달린 것 같습니다. 예가그룹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 최국이 자식도 낳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듯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정이현이 나타났고 정이현은 그 누구 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예가그룹의 모든 것을 최국이 물려받아도 이상할게 없는데 그 후계자로 이현이 나타났으니 긴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석은 이현을 이용하면서도 최국은 죽이려 했던것같습니다(혹은 조여사가).

정이현은 자신을 빼앗고 아버지를 공격하게 했던 최석 가족의 음모를 알고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자살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어쨌든 아버지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었으니까요. 드라마 '출생의 비밀'은 자신을 배신했지만 그래도 한때 친구였던 이선영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듯 잃었던 기억을 되찾으면서 복잡하게 얽힌 이들 가족의 사연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두 연기자의 궁합 꽤 볼만하다.

이 드라마는 첫회에서 '출생의 비밀'은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씨앗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가족이면서도 내가 가장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 서로를 미워하고 경계하게 되는 관계가 최석의 알츠하이머 증세와 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해듬과 만나면서 부드러워지는 그들 가족을 보면 처음부터 최석도 딱딱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최석은 이현과 대화중에 소년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간부회의에서 10년전 일을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최석이 최국과 이현을 경계하게 된 근간에는 어린 시절 극복하지 못한 컴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출생의 비밀'에는 '출생의 비밀'은 없어도 다른 드라마와 같은 막장 소재는 거의 빠짐없이 다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재를 미스터리란 형식으로 차별화시켜 조합한 건 탁월한 선택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체적으로 홍경두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불편할 때도 있지만 홍경두가 최국 교수와 보여주는 캐릭터 궁합은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최국을 아버지라 부르는 홍경두가 괴짜 천재 최국과 안 어울릴 것같은데 희한하게 잘 맞더군요. 제목 때문에 손해 본 드라마는 점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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