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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출생의 비밀' 주말드라마를 점령하다

Shain 2013. 6. 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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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에는 SBS의 '출생의 비밀'이 방송됩니다. 성유리와 유준상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정이현이 10년 간의 기억을 모두 잃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겪으며 자신의 과거에 한발한발 접근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 제목이 '출생의 비밀'이긴 하지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모르고 살았던 정이현의 아버지가 최국(김갑수) 교수라는 거 말고는 지금으로서는 딱히 '출생의 비밀'이랄 것은 없지요. 뭐 일부는 최국이 아닌 최석(이효정)이 이현의 친아버지란 말도 합니다만 그렇게 복잡하진 않을거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출생의 비밀(출비)'이란 각종 드라마에서 자주 활용하는 드라마틱한 설정 중 하나입니다. 현실 속에서야 아버지가 바뀌고 아이가 바뀌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겠습니까만 공중파 주말드라마는 모두 '출생의 비밀'에 올킬당했습니다. '백년의 유산', '금나와라 뚝딱', '최고다 이순신', '원더풀 마마', '대왕의 꿈' 모두가 출생의 비밀을 담고 있고 '대왕의 꿈'을 제외한 나머지 드라마들은 '출생의 비밀'이 주된 줄거리라 비중도 상당합니다. 정작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 제목으로 삼은 쪽은 시시한 '출비'를 감추고 있지만요.

출생의 비밀에 점령당한 주말드라마. MBC '백년의 유산'과 KBS '최고다 이순신'.

특히 '백년의 유산' 쪽은 시집살이를 당하다 어렵게 이세윤(이정진)과 사랑에 빠진 이혼녀 민채원(유진)이 '출생의 비밀' 때문에 또 한번 사랑의 위기를 겪는 것 주된 내용입니다. 마찬가지로 '최고다 이순신'은 신준호(조정석)와 사랑하게 된 이순신(아이유)의 친어머니가 영화배우 송미령(이미숙)이란 것도 모자라 친아버지는 신준호의 아버지가 아니냔 추측도 있죠. 친아버지가 아니라도 송미령이 과거에 신준호의 아버지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회 통념상 양쪽 커플 모두 '남매'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 사이죠.

그런가 하면 조기 치매증세를 보이는 어머니 윤복희(배종옥)의 자식 철들게 하기 프로젝트 '원더풀 마마'는 과거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빼앗겨야했던 아들을 찾습니다. 아무래도 최은옥(김청)의 아들인 이장호(이민우)가 윤복희의 친아들인거 같은데 이장호의 아내는 윤복희의 아들인 고영수(김지석)와 관계가 심상찮습니다. 완전히 정신줄을 놓기전에 아이들이 제 밥벌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절절한 모정과 평생 동안 헤어져살아야했던 아들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이 드라마의 주요 얼개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출비'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즘은 사극도 '출비'가 대세라 실존인물들 조차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곤 하지요. KBS '대왕의 꿈'은 진평왕의 후비 승만왕후(이영아)가 딸 연화(홍수아)를 낳고 몰래 천출인 만화(천보근)를 왕자로 위장합니다. 성골인 선덕여왕과 왕권을 다투던 승만왕후에게 왕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력다툼 속에서 바꿔치기한 왕자 만화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승만왕후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승만왕후가 낳은 왕자가 누구였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쨌든 '정통성' 부분에선 중요한 설정이었죠.

출생의 비밀은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SBS '원더풀 마마'와 MBC '금나와라 뚝딱'.

마지막으로 '금나와라 뚝딱'은 그 어떤 출생의 비밀 보다도 좀 복잡합니다. 극중 정몽희(한지혜)는 자신과 얼굴이 똑같은, 박현수(연정훈)의 아내 유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유나와 몽희가 쌍둥이란 느낌은 풍겼지만 어제 방송으로 정말 쌍둥이임이 밝혀졌지요.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몽희의 쌍둥이 유나는 미국 부자집에 입양되고 몽희는 윤심덕(최명길) 가족에게 입양되어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문제는 몽희가 친자매인 유나의 남편 현수와 러브모드가 될 것이란 점, 그리고 자매로 알고 있는 정몽현(백진희)과도 동서 사이라는 점이죠.

'출생의 비밀'이 폭로된 드라마의 대부분은 자신의 연인과 관습상 손가락질받는 사이라도 법적으로는 피한방울 안 섞인 남남인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백년의 유산'의 채원, 세윤 커플은 세윤이 친어머니 양춘희(전인화)에게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춘희가 채원을 법적으로 입양하지만 않았다면 결혼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금나와라 뚝딱'은 몽희가 박현수와 맺어지면 일단 '겹사돈'입니다. 겹사돈까지는 그렇다고 치지만 현수의 아내인 유나의 친자매로 밝혀지면 문제가 다릅니다. 법적으로 아내의 혈족과는 결혼이 불가능하거든요.

정작 SBS '출생의 비밀'에는 출생의 비밀이 없지만 기억상실증이 있다.

주말 드라마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출생의 비밀'을 설정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출비'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기도 하고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처럼 한 인간의 운명과 의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빙점'은 '살인자의 딸'로 태어난 한 여성에게 감춰진 출생의 비밀이 흥미로웠습니다. 문제는 위의 내용들처럼 자극을 주기 위한 소재로만 활용되었을 경우지요. '백년의 유산'은 민채원의 사업적 성공과 인간승리에 치중되어야할 내용이 출생의 비밀에 할당되는 바람에 드라마의 매력이 반감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말드라마를 '올킬'한 '출생의 비밀' 중에서 어떤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습니까? 요즘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뻔한 출생의 비밀을 쉽게 눈치채는 수준이라 깜짝 놀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으니 드라마틱한 흥미 유발 소재로는 이미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제작자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만큼 간단하고 편리한 설정이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다음 주말드라마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아닌 좀더 색다르고 특별한 설정을 이용했으면 싶은데 '기억상실증'은 이미 SBS '출생의 비밀'에서 써먹고 있어서 안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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