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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유산, 긴장감없는 출생의 비밀 실감나는 연기 아니었으면

Shain 2013. 5. 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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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첫회부터 묘하게 '출생의 비밀'이 있을 것같은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클리셰라면 클리셰인데 소위 '막장'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는 트릭을 남발한다는데 있습니다. 이 뻔한 설정이 때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지하는가하면 때로는 너무 식상해서 아직도 비밀이 폭로되지 않았냐며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하지요. '백년의 유산'에서 설정된 '출생의 비밀'은 다른 드라마 보다는 헐거웠고 처음부터 눈치채기 쉬운 쪽에 속했습니다.

그나마 '백년의 유산'은 처음부터 세윤(이정진)과 양춘희(전인화)의 관계가 전체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고 주인공 커플과 맞물려 개연성있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럭저럭 봐줄만 했습니다. 이로서 민채원(유진)이 이겨내야할 세번째 시집살이가 시작된 셈이구요. '오자룡이 간다'처럼 어느 날 갑자기 투입된 인물이 'I'm your father'가 된다던가 '메이퀸'처럼 두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알고 보면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이상한 '출비'는 영 보는 사람도 기분이 나쁩니다.

양춘희는 원장수녀님의 일기장을 읽고 세윤이 자신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첫회부터 예상된 비밀이다 보니 보는 입장에서는 긴장감이 영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백설주(차화연)는 아들 세윤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으로 강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수천번의 절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백설주 때문에 도도희(박준금)가 학을 뗐을 정도니까요. 고아원에서 친자매처럼 지내던 양춘희의 귀국을 반가워하지 않는데다 늘 죄지은 사람처럼 긴장해서 어깨가 뭉치고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는 듯했습니다. 거기다 남편 이동규(남명렬)에게 시집살이를 원망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설주는 틀림없이 비밀이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백설주가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아들이 비밀의 정체라는 건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으니 어제 폭로된 출생의 비밀은 반전이랄 것도 없고 놀라운 것도 아닌 누구나 예상가능한 내용이었죠. 오죽하면 시청자들은 "'백년의 유산' 이정진이 전인화 아들이었다, 충격"이라는 기사 아래 '기자 당신만 몰랐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1회 때부터 '아들 바꿔치기'를 짐작했던 사람들은 41회가 되서야 폭로되었다며 오히려 너무 질질 끌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밀이 폭로되자 반쯤 넋이 나간 백설주와 분노와 슬픔으로 오열하는 양춘희.

저 역시 첫회부터 이세윤이 양춘희의 아들이라는 포스팅을 자주 했기 때문에 이제서야 밝혀진 '출생의 비밀'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분은 절대 백설주의 이상행동이 세윤이 춘희 아들이라는 증거는 아니라면서 격하게 반발(포스팅을 지우라는 말까지)했지만 이런 류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빠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니 요즘은 '출비'가 없는 드라마를 찾는게 더 힘든 듯합니다. 다만 언제 폭로하고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재미를 결정하는 관건이었을 뿐이죠.

반면 슬프게 오열하는 백설주나 30년 동안이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양춘희의 연기는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백설주는 밖에서 아들을 낳아오라는 시어머니가 너무 무서워 죽은 자신의 아이와 양춘희의 아이를 바꿔버렸습니다. 원장수녀는 춘희와 설주의 생일에 맞춰 진달래, 제비꽃 발찌를 손수 만들어주었는데 두 아이의 발찌가 바뀐 것을 보고 이 사실을 눈치챕니다. 춘희에게 알려주려 해도 춘희는 남편과 아이가 모두 죽었다는 슬픔에 미국으로 떠나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출생의 비밀'은 뻔했지만 전혀 뻔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엄마 연기. 눈길을 사로잡다.

30년 동안 두려워 전전긍긍하던 설주가 자기 자신 만을 위해서 입을 다문 것은 아닙니다. 세윤을 아들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은설(황선희)이 죽고 충격으로 미각까지 잃어버린 세윤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설주입니다. 낳은 정보다 기른정이라고 누가 뭐래도 설주에게 세윤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 자신은 뺨을 맞고 속이 터져도 절대 비밀을 폭로할 수가 없습니다. 차화연씨의 서러운 눈물이 그런 복잡한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해주었죠.

한편 정이 넘쳐서 남편 민효동(정보석)의 전처식구들까지 친가족처럼 보살피는 양춘희는 아들이 죽었다는 충격으로 30년 동안 미국에서 방황했습니다. 세윤이 없어졌기 때문에 30년의 인생을 도둑맞은 춘희에게 아들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인 동시에 슬픔입니다. 가까이에 엄마가 있었는데 아들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기 때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다는 서러움이 북받쳐 옵니다. 허나 아들과 내 인생을 도둑질한 백설주가 미우면서도 이세윤과의 결혼으로 들뜬 채원을 보자 함부로 진실을 말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지는 것입니다.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세윤과 채원. 자식들을 두고 두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자신의 자식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 두 사람의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솔로몬의 지혜'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사람의 어머니 중에 진짜 어머니를 구분하기 위해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 했더니 친어머니가 아이를 포기하더라는 옛날이야기처럼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는 두 엄마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진실을 묻고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백설주는 세윤이 친엄마를 장모라고 부르는 상황을 피하려 채원에게 헤어져달라 부탁했지만 미각을 잃은 세윤에게 채원 밖에 없으니 두 사람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인생을 도둑질한 백설주가 너무 미워도 상처받을 세윤과 채원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춘희와 세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백설주는 아들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상황 앞에서 이대로 비밀을 덮겠다고 합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될 수 있으면 세윤이 친엄마의 의붓딸에게 장가갔다는 손가락질이라도 안받으려면 두 사람의 비밀이 동네방네 소문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그동안의 드라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집 저 집 다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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