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구가의 서

'구가의 서' 조관웅, 이성재의 고통으로 완성된 악역

Shain 2013. 6. 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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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역도 수준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시대라 연기자가 많이 흔해졌고 '명품 아역'이나 '명품 연기자'라는 표현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만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이 과잉된 연기는 보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소위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몇몇 드라마에서는 쓸데없이 연기자들을 고생시킨다 싶을 만큼 과장된 연기와 험악한 장면들 때문에 대체 왜 연기자들을 저렇게 혹사시켜야하나 싶기도 하죠. 연기는 생각 보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감정노동인 듯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엄청난 감정연기를 하면서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연기자가 생각 보다 적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심리적 충격이 큰 연기를 했으면 상담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특히 아동 연기자들 경우에는 악플이나 후유증을 감당하기 위한 정신과 상담을 의무화시킬 필요가 있지만 이런저런 뉴스 기사를 읽어 보면 연기자의 정신과 상담은 아직까지 흔한 일이 아닌듯합니다. 연예인이라 남의 눈이 무서워 못하는 것같기도 하고 어린 배우는 군대 면제에 이용하려한다고 비난받기 때문이라는군요.

윤서화의 아버지 목을 베고 웃으면서 윤서화를 바라보던 조관웅. 차원이 다른 악역의 탄생.


과거에 김승우를 비롯한 몇몇 배우는 정신과 상담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으나 대개의 경우 극중 역할로 인한 스트레스와 충격은 연기자 개인의 몫으로 맡겨지는 듯합니다. 때로는 연기자에게 무슨 일이든 훌훌 털어내고 충격을 받아들이는, 새로 빨아서 말리는 스폰지같은 정신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 일부 시청자들 중에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적게 일하고 고소득을 올리는데 그 정도 스트레스는 당연히 스스로 감수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구가의 서'에서 조관웅 역을 맡고 있는 이성재는 예전부터 연기파 배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악역을 맡으면 악역인대로 선한 역을 맡으면 선한 역대로 설득력있는 연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죠. '공공의 적(2002)'에서 이성재가 보여준 악역을 보고 사이코패스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이해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들녀석들(2012)'의 큰아들 역할은 지적이면서 차분하고 이해심깊은 남성 역에 제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배우 이성재가 '구가의 서' 조관웅 역할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로서의 고통을 털어놓은 이성재. 악역은 쉽게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배역을 이해하는 것일 겁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악행을 하는 이유와 그 생각의 과정을 모두 납득할 때 비로소 연기가 완성되는 것이겠죠. 흔한 막장 드라마의 이유없는 악역들이 비난받는 것은 어떻게 해도 그 역할이 공감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무조건 악을 쓰는 악역을 하는 배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성재가 조관웅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것은 일단 조관웅이란 역할을 충분히 납득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납득한 것과 표현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주변의 물건을 모두 집어던질 만큼 짜증을 내고 가지고 싶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고 갖지 못한 것은 죽이거나 파괴하고 광포하게 성질을 부리거나 사람들을 무섭게 윽박지르는 연기는 실제로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쉽게 표현이 안됩니다. 때로는 마음 속의 분노나 화를 증폭시키기 위해 감정을 고조시켜야 하고 화를 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분노하는 연기와 짜증내는 연기를 위해 늘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 그 스트레스가 악역의 원천.


이성재는 작은 원룸에서 하루 종일 대본 연습을 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갑니다. 간단한 검사를 통해 자신이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받는 이성재의 모습을 보며 한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얼마나 고통받는지 알 수 있더군요. 특히 '조관웅'이란 캐릭터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감정을 고조시키면서 지치고 매니저가 백년객관의 하인처럼 휴지를 들고 대기하거나 더위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평소 보다 짜증내는 자신의 모습에 후회하기도 합니다. 마침내는 연대보증과 작품 활동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까지 떠올립니다.

'구가의 서'의 조관웅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귀처럼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통인 출신이라는 컴플렉스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했고 갖고 싶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은 조관웅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윤서화(윤세아)의 말처럼 조관웅은 더 갖고 싶어 몸부림치고 허기가 지고 목줄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안달이 나고 분노합니다. 보는 사람들까지 화나게 하는 조관웅, 그 모든 것이 배우 이성재의 고통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말그대로 이성재의 땀이 어린 악역이었던 것입니다.

이성재가 없는 '구가의 서'를 생각할 수 있을까? 땀과 노력이 어린 악역.


'나 혼자 산다'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이성재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병원을 떠났습니다. 2013년 최고의 악역으로 평가받을 조관웅은 이성재 개인에게도 기억에 남을 역할이겠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캐릭터로 시청자들 앞에 설 이성재의 연기 경력에도 일종의 계기를 가져올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우로서 보여주는 캐릭터와 진짜 이성재를 분리하는 연습에 익숙해질수록 시청자들은 보다 만족스러운 연기를 보게될 것이고 이성재 개인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 생활을 할 수 있겠죠.


시청률 1위의 '구가의 서'는 조관웅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절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재미있는 드라마 한편을 보고 있는 시청자로서는 배우 이성재의 이런 노력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올 여름에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데 이번에는 보고싶어하던 가족들을 만나서 다른 때보다 좀 더 빨리 조관웅의 여운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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