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구가의 서

구가의 서, 시선 집중 이순신의 필체와 재령 역의 송영규

Shain 2013. 6. 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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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창작된 캐릭터이지만 독보적인 실존인물이 단 한명 등장하죠. 바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유동근) 장군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전부터 왜국의 침략에 대비하고 나대용을 시켜 거북선을 만들었던 이순신의 무게감은 판타지라서 자칫 가벼워지기 쉬운 이 드라마의 무게를 묵직하게 눌러주곤 합니다. 최강치(이승기)의 숙적 조관웅(이성재)과 대립하며 보여준 카리스마있는 모습은 진짜 이순신 장군이 저랬을 것같다는 느낌 마저 듭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수년전부터 일본에서는 첩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든 전쟁 전엔 첩보를 모으는게 상식이니 사실일 겁니다. 야사처럼 전하는 내용 중에는 일본이 보낸 첩자들이 일본에 불리한 몇몇 사람을 암살하려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구가의 서'에서는 역적 조관웅이 자신을 약올린 이순신을 죽이려 하는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곤(성준)과 강치를 시켜 카케시마(데이비드 맥기니스)에게 모종의 전언을 보냅니다. 재령(송영규)이 아닌 카케시마를 전라도 좌수영으로 부른 것입니다.

이순신이 카케시마에게 보낸 전언. 친필 서명 글씨가 예사롭지 않다.


흘려쓴 한자라 완전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궁본상단을 전라좌수영으로 부른다(請狀)는 내용의 글같은데 인상적인 것이 마지막 부분에 적힌 이순신 장군의 서명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문과 집안 출신으로 무과 시험을 보고 장군이 되었으나 평소에도 글쓰기를 몹시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필체를 보면 상당히 오랜 동안 학문을 한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죠. 드라마 속에 등장한 글씨체는 가토 기요마사가 보관해왔다는 친필 서명과도 많이 유사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단번에 시선 집중이 되더군요.

카케시마는 첩자들이 완성한 조선 남부 지역 지도를 전라좌수영에서 훔쳐갔지만 그는 가짜였습니다. 이순신은 탁월한 계략으로 조관웅이 조선을 배신한 사람들을 모두 직접 죽이게 하는 동시에 카케시마를 전라좌수영으로 부른 것입니다. 거북선의 모형을 본 카케시마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른 것인지 그 본뜻이 궁금한 시점이죠. 카케시마는 실질적인 무사들의 우두머리로 자홍명(윤세아)의 수호무사였습니다. 동시에 눈길을 끈 것이 바로 궁본상단의 재령(송영규)이란 캐릭터입니다.

가끔 어떤 연기자들은 아무리 새로운 역을 맡아도 예전 역과 비슷하다는 평가 때문에 고민하곤 합니다. 드라마 출연이 잦은 배우일수록 또 비슷한 역만 맡는 조연급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몇몇 스타들이 드라마 출연에 텀을 두고 뜸을 들이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특히 특정 캐릭터를 독보적으로 해낼 수 있는 배우들이 유시한 캐릭터로 자주 출연하면 이미지 소모가 커서 독자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시청자들로부터 '질린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 확 바뀌거나 출연을 자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순신이 상대해야하는 실질적인 첩자 재령.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구가의 서'에 출연중인 구월령 최진혁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스타로 데뷰는 2006년인데 이제서야 빛을 본 케이스라고 합니다. 최강치(이승기)의 아버지이자 오랜 세월 살아온 신수로서 윤서화(이연희)라는 단 한명의 여인을 사랑하고 있는 구월령의 캐릭터는 최진혁이 아니면 해낼 수가 없을 것처럼 매력적입니다. 인기도 인기지만 최진혁이 한 사람의 연기자로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구가의 서'는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2013년 상반기 최고 악역 후보 중 한사람이 된 조관웅 역의 이성재나 기존의 '악역' 이미지를 벗고 사군자의 일원이자 박태서(유연석), 박청조(이유비) 남매의 아버지인 박무솔 역의 엄효섭, 중년이 된 윤서화 역으로 이연희의 바톤을 제대로 이어받은 윤세아의 감동적인 연기 역시 눈에 띄었으나(성인배우가 성인배우 역할을 물려받는 건 상당히 꺼리는 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깜짝 놀란 배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자홍명의 수하이자 궁본상단의 실세인 재령이죠.

안경을 벗으니 낯선 얼굴이 되어버린 송영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홍명은 미야모토(오타니 료헤이) 단주의 아내로 단주가 되었으나 여인이자 조선인이라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충성을 맹세하고 궁본상단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선으로 돌아온 자홍명은 자신을 알아볼 조관웅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감춥니다. 얼굴을 가린 자홍명 옆에서 실질적인 궁본 상단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일본의 관백(關伯, 일본의 천황이 내리는 지위, '구가의 서'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과 자홍명의 연락책을 맡고 첩자들과 카케시마같은 무사들의 총책임자인 재령은 어떻게 보면 이순신(유동근)이 상대해야할 진짜 첩자입니다.

재령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저 배우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고 발음도 분명한게 보통 오래된 배우가 아닌 것같단 생각은 했습니다만 누군지 선뜻 떠오르지 않더군요. 갑자기 눈에 띄는 조연급 배우들처럼 연기력은 되는 배우인데 잘 몰랐던 건가 생각도 했고 연극 무대에서 발굴한 신인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잠깐 생각하다 낯선 배우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어제 포털 기사를 읽다 보니 이 배우 이름이 송영규더군요. 그때서야 '아 그 사람'하고 떠올랐습니다. 안경 벗은 모습이 전혀 딴 사람이더라구요.

이순신은 왜 카케시마를 전라좌수영으로 불렀을까. 거짓정보를 흘리기 위해서?


'울랄라 부부(2012)'의 강진구, '즐거운 나의 집(2010)'의 허영민, '제중원'의 고장근(2010), '추적자(2012)'의 비리검사 역 등 어떤 드라마에서나 눈에 띄는 연기자지만 '구가의 서'에서 안경을 벗고 수염까지 붙이고 나오니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비열하고 얍삽한 기회주의자 역할도 잘하지만 드라마에 포인트를 주는 코믹한 감초 연기도 잘 하던 배우인데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조관웅을 상대하는게 일본에서 온 첩자같은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더군요. 결국 자홍명(윤서화)을 죽이라 명령한 사람도 재령이었습니다.

카케시마는 자홍명을 궁본상단의 단주로 모셨고 재령은 조관웅의 뇌물을 받은데다 관백의 명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자홍명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순신이 하필 카케시마를 전라좌수영으로 부른 이유도 재령과의 갈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인지 거짓정보를 흘리기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가짜 지도를 왜군에게 주어 혼란시켰다는 건 사실을 참고한 것일까요? 실제로 당항포에는 일본 첩자에게 거짓지도를 주어 조선을 도왔다는 기생 월이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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