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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제국, 창업주와 재벌 2세와 장사꾼은 어떻게 다른가

Shain 2013. 8. 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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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케이블 채널을 보지 않는데 지난주 집에 오신 손님들이 MBN '아궁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더군요. 소문은 들었지만 그렇게 적나라한 프로그램인 줄 몰랐습니다. 연예가의 가십을 주제로 나름대로 전문가라는 기자들이 나와 진위 여부를 '토론'하는 그 프로그램이 그때 화제로 삼은 스타는 '고현정'이었습니다. S그룹에 시집가 루머에 휘둘릴 수 밖에 없던 속사정, 연기자 고현정이 어떤 사람이다 등등을 침튀겨가며 떠드는 프로그램 내용 자체는 그리 볼 게 없었지만 한가지 귀가 솔깃하던 것이 바로 소위 S그룹으로 표기된 재벌가 풍경이었습니다. S그룹이 유난히 스캔들을 싫어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엄격한 곳이란 소문을 새삼 확인시켜주더군요.

어렵사리 한성철강을 인수했으나 IMF로 현금보유량이 줄자 최서윤은 장태주와 최민재에게 손을 벌린다.


'황금의 제국' 시청자들 중에서는 가족의 대표로 군림하며 큰오빠 최원재(엄효섭)와 언니 정윤(손동미)을 강압적으로 누르는 최서윤(이요원)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분들도 많더군요. 상식적으로 손아랫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했으면 오빠들의 인사를 받는 보스로 행동하기 보다 살살 구슬리는게 유리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죠. 그러나 짧게는 10년 길게는 30-40년간 갈등해온 재벌가 형제들은 생각 보다 살벌한 관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S그룹의 장자였던 이맹희씨는 1931년생이고 셋째아들 이건희씨는 1942년생이지만 형제 간의 질서는 깨어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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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팔순의 형이 칠순의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삼촌이 조카를 미행했다고 폭로한 S기업 외에도 '황금의 제국' 가족들처럼 갈갈이 흩어서 유산상속으로 갈등하고 자살하고 그룹을 두동강냈던 실존 기업들이 있습니다. 각종 굵직한 사건 사고를 많이 저지른 장남을 제치고 새파랗게 어린 동생이 정식 후계자가 된 경우엔 대부분 드라마 속 최서윤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룹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오빠의 지지 세력과 어느 순간에 등을 돌릴지 알 수 없는 가족들. 가족 보다 믿고 있지만 가장 불안한 아군인 가신들까지. 탄탄한 충성심에 기대 그들을 제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창업자와는 다른 입장인게죠.

'한성건설' 매각을 앞둔 창업주, 재벌2세, 장사꾼의 자세. 창업주는 기업을 지키려 하지만 장사꾼은 조각내서 팔려한다.


동생 쪽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의 권위를 눌러 자신이 그에 맞설 수 있는 카리스마가 충분하다는 걸 과시해야하고 자신의 편이 될 수 있는 형의 아군은 어르고 달콤한 당근을 쥐어주지만 정작 형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하고 끌어내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장례식에서 장례를 주관하려던 최원재를 불러세웠던 것처럼 최서윤은 더욱 더 강압적인 말투로 오빠와 언니의 발목을 잡습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였다간 언제 빈손으로 쫓겨나야할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최서윤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 성재(이현진)도 한정희(김미숙)의 꼭두각시입니다.

'황금의 제국' 2회에서는 상속 다툼에서 밀려난 최동진(정한용)은 부모님의 제사상에 인사를 올리는 장면이 방송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내년에는 못 올거 같다'며 울먹이는 최동진은 평생 함께 기업을 일군 형 최동성과 절연하고 자식 노릇도 못하게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기업에서 한자리 차지하지 못하고 동생이나 조카에게 고개 숙이지 않으면 부모님 제사도 참석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 빈손이 된 최민재(손현주)가 끝끝내 이기고 싶은 것도 그런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일 겁니다. 최동진은 그런 아들을 마음 아파했고 사장실에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민재를 도왔습니다.

창업주와 같은 카리스마나 경력은 없지만 큰 기업을 이끌어야하는 후계자는 점점 더 딱딱해진다.


그러나 최동진은 한성철강 인수를 앞두고 최서윤과 경쟁하는 최민재의 선택 앞에서 서윤의 손을 들었습니다. 빚에 쪼들린 최민재가 한성철강을 조각조각내 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민재는 아버지 최동진과 큰아버지 최동성 회장이 어떻게 철강회사를 만들었는지 들었기에 장태주(고수)에게 되도록 한덩어리로 팔자고 제안했지만 장태주는 한성철강에 대한 아무런 집착이나 애정이 없으니 최대한 돈이 되는 방향으로 분해해서 팔자고 합니다. 어차피 장사꾼 태주에게는 내 회사도 아니고 내 기업도 아닌데 고용승계니 경영안정화같은 것은 아무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최동성과 최동진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현대 그룹 창업주인 故 정주영 회장 가족이죠. 현대는 과거 인수 합병을 통해 그룹의 크기를 키워온 다른 대기업들과는 다르게 '현대제철(구 인천제철)'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을 직접 가꾸고 키워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대건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에 사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손으로 기업을 키우지 않은 최민재나 기업 창업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장태주는 쉽게 철강회사를 분해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직접 기업을 세운 창업주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창업주에서 그 후계자로 장사꾼으로 넘어갈수록 기업은 불안해진다. 보면볼수록 불편한 그들의 장기판.


재벌 1세대들이 종종 비리에 연루될 때에도 국민들이 그들 1세대를 인정한 것은 그들이 창업한 기업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결탁해 다른 기업을 부당하게 인수하고 엄청난 돈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재벌가의 몸집이 거대해질수록 국민들의 원성도 높아졌습니다. '황금의 제국'에서 언급된 소위 '칠공자' 사건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원과 오너 가족의 끈끈한 유대를 강조하던 재벌 1세대들과는 달리 재벌 2세대, 3세대로 건너갈수록 사원들의 충성심은 강조하면서도 회사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더 옅어졌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하신 어떤 분의 댓글대로 '황금의 제국' 최서윤이나 최민재의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같은 단정적인 말투가 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 인맥이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상징이자 과시입니다. 형제들 간의 서열도 이기고 그 자리에 올라온 사람들 속사정과 그들 특유의 위압적인 말투를 시청자들이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해해줄 일은 아니죠. 그렇게 인수되고 경영자가 바뀔 때 마다 구조조정이 있을까봐 몸을 사리고 충성하고 경제적 곤란으로 힘겨워해야할 기업의 사원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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