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스캔들, 조윤희는 우아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Shain 2013. 8. 10. 12:28
728x90
반응형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진지하고 우울한 캐릭터가 있으면 그를 보완해주는 유쾌하고 가벼운 캐릭터도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 코믹하게 때로는 드라마의 맥을 끊어놓는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과장된 역할을 하는 이들 '가벼운 캐릭터'는 길다면 긴 70분 짜리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스캔들'에는 완전히 웃기기만 한 캐릭터가 별로 없죠. 가끔씩 영어와 한자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무식함으로 시청자들을 웃음짓게 하는 고주란(김혜리)도 알고 보면 독기로 가득찬,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은중(김재원)의 동생 하수영(한그루)도 웃고는 있지만 코믹한 타입은 아니죠.

밝은 느낌의 우아미는 극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캐릭터이다.


'스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하게 장태하(박상민) 만이 세상살이가 신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장태하와 유사한 악당이자 장주하(김규리)를 밀어내고 사장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강주필(최철호)도 딸같은 계집애 하나 어떻게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만 장태하는 가끔씩 눈에 거슬리는 아내 윤화영(신은경)이나 간간이 찾아오는 하은중을 제외하면 그닥 힘든 일이 없습니다. 반면 장태하 이외의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은 묵직한 사연들에 눌려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들 건영이 죽고 장태하의 아들 은중을 납치한 하명근(조재현)이나 하명근의 알 수 없는 분노를 견디며 과묵한 성격이 되버린 하은중이나 어머니라 믿고 살았던 화영이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고 하은중이 진짜 장태하와 윤화영의 아이라는 걸 알게된 장은중(기태영)이나 '첩'으로 사는 고주란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픈 장주하나 장은중이 자신의 아이가 아닌 걸 알면서도 진짜 은중이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짜와 함께 사는 윤화영도 쉽게 웃을 수 없는 과거와 죄책감 때문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장태하를 제외한 등장인물들 모두가 슬픔을 감추고 산다. 점점 더 우울해지는 분위기.


우아미 역의 조윤희는 밝고 발랄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첫출연 당시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용의자를 뒤쫓던 하은중과 부딪힌 컵밥아줌마 우아미는 배속의 아이를 핑계로 병원비를 물리는가 하면 돈이 없다며 뻔뻔하게 과일쥬스를 사달라고 합니다. 컵밥집 사장을 '불법'이라며 누른 하은중도 잘한 것은 없지만 쥬스를 사달라며 엉뚱하게 구는 우아미도 그리 매끄러워보이진 않았습니다. 남편 공기찬(양진우)의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두 사람이 아등바등 주택을 마련한다는 설정은 그럴듯했으나 그녀의 밝음은 어쩐지 핀트가 어긋나 보였습니다.

과장된 우아미의 '밝음'이 거슬렸던 근본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묵직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배우 조윤희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같은 드라마로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 곳곳에 배인 우울함을 상쇄하기에 적절한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이 드라마에는 '커밍아웃'과 '로그아웃'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너'와 '오너'도 '리메이크'와 '리바운드'도 구분하지 못하는 고주란식 코믹함이 더 어울립니다. 밝으려면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강렬했어야 했는데 우아미의 캐릭터는 그런 존재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아미의 어정쩡한 밝음 보다는 고주란의 씁쓸한 무식함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




이제는 그나마 어정쩡하게 '밝은' 캐릭터에 속하던 우아미 마저 그들과 비슷한 과거의 무게를 떠안고 가게 되었습니다. 장태하의 계략으로 조한철(신강호)에게 공기찬이 죽고 태하건설이 공기찬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갑니다. 장태하의 비리가 담긴 USB를 찾지 못하자 빌라를 폭파시켜 우아미의 아기까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안 그래도 우아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시어머니는 우아미를 닥달하다 못해 차라리 죽으라며 욕하고 하은중이 우아미를 위해 끓여준 미역국을 우아미의 머리에 들이붓습니다. 감히 자기 아들의 아이를 잃고도 미역국이 목으로 들어가냐는거죠.

지난주에 공기찬이 죽고 하은중은 밥한술 뜨지 못하는 우아미를 식당으로 데려갔습니다. 배속의 아이 때문에 죽지 못하고 챙겨줄 사람이 없어 옷도 제대로 못갈아입는 우아미에게 하은중은 국밥을 사줍니다. 남편잃고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마음으로 밥숟가락을 쥐었다가 공기찬이 이제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아내는 우아미는 이제 하은중이나 하명근 그리고 장은중이나 윤화영 만큼이나 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아미에게 세상을 살아가야할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화재 현장에 남아있던 커프스 단추, 불을 지른 그 사람의 정체와 남편의 결백을 밝히는 것 뿐입니다.

하은중과 장은중 사이에서. 이 드라마의 후반부는 우아미에게 달렸다.


아무리 봐도 우아미는 장은중과 하은중의 관계를 계속 연결시키는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결정적인 캐릭터입니다. 드라마 첫회에 훈련 중 총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하은중이 하명근에게 총을 겨눌 때도 우아미가 말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세상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어도 유일하게 '밝게' 빛날 캐릭터는 우아미입니다. 하명근과 장태하의 갈등 때문에 무서운 태하건설의 비밀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슬픔을 감추고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그녀가 두 은중이를 사로잡겠죠.

문제는 조윤희가 우아미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부분 같습니다. 배우 조윤희는 명랑하고 쾌활한 역을 잘 해내는 배우입니다만 이상하게 하은중과 기태영 사이에서 그 매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 경쾌한 느낌을 주지 않는게 연기력 때문은 아닌거 같고 캐릭터 설정이 잘못된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길러준 아버지와 낳아준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두 아버지 모두를 향해 칼날을 겨눠야하는 하은중의 이야기. 복잡하고 묵직한 '스캔들'의 후반부가 살아나느냐 마느냐는 조윤희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우아미 캐릭터의 무게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