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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제국, 장태주와 손동휘의 야합이 필연적인 이유는?

Shain 2013. 8. 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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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영어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명사와 널리 쓰이는 말은 원어를 그대로 등재합니다. 우리 나라의 '김치'나 '불고기'같은 단어도 영어사전에 실려 있는데 특이하게 '재벌(Chabol)'도 한국에서 유래된 단어로 함께 올라 있습니다. '재벌'은 영어로도 재벌이란 이야기인데 '재벌'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기업 형태로 외국 대기업에서는 비슷한 현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소유와 경영이 가족들에게 세습되어 영향력이 막강한 기업형태'을 일컫는 '재벌'(EBS 지식채널 참고)이란 용어를 두고 2003년 전경련 수석 부회장은 외국에서 우리 나라 기업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라고 일축했다고 하죠.

김광세 의원 살인 혐의로 위기에 처한 장태주는 손동휘와의 야합으로 살인혐의를 벗는다.


외국에선 기업의 이름을 들으면 그 회사의 서비스나 물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라리하면 자동차,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휴대폰이 떠오르는게 일반적인 기업에 대한 생각입니다. 간혹 'MS'는 빌게이츠라며 특정 인물을 떠올리는 경우는 있어도 MS에 '빌게이츠의 딸'을 떠올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삼성'하면 생산품 보다는 이건희라는 이름과 그 가족들이 생각나는게 일반적이죠. 생산하는 물건은 워낙 많아서 뭘 제일 잘 만드는지 모르겠고 몸집이 워낙 커 거대공룡처럼 이것저것 마구 먹어치운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황금의 제국' 장태주(고수)가 윤설희(장신영)와 필리핀으로 가지 못하고 목적을 바꾼 이상 최서윤(이요원)과의 결혼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제국의 일부라도 차지하려면 어떻게든 제국과 가족으로 맺어지는게 가장 편리합니다. 정식 후계자인 최서윤이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둘째딸이고 못났든 잘났든 최원재(엄효섭)가 장남이고 평생 꿍꿍이를 감추고 살았든 어쨌든 최동성의 아내인 한정희(김미숙)와 사촌 최민재(손현주)는 재산을 다툴 자격이 있습니다. '가족 경영'과 '세습'을 특징으로 하는 재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입니다.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태주와 최서윤의 특이한 정략결혼.


독특한 기업문화인 '재벌'은 광복 이후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물러가며 남겨진 기업을 미군정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불하했고 초기 창업주들은 그 기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이 얻었습니다. 그리고 본래 지방기업 경영자던 삼성의 이병철은 한국전쟁 이후 고철 장사를 통해 기업을 일구기 시작했고 현대의 정주영은 영여영문학을 전공한 동생을 내세워 미8군의 공사 수주를 통해 기업을 키워나갔습니다. 미국의 자본력은 삼성과 현대같은 대기업의 큰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몸집을 키우고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뼈대를 갖춘 것은 군사정부 때입니다.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했던 군사정권의 보호 속에 재벌들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90년대를 거쳐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해왔습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기반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고 주식 순환투자를 통한 그들의 황제경영은 사건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지지않는다는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장태주처럼 결혼을 통해 재벌가에 입성한 손동휘. 최민재의 편에서 장태주를 옥죄는 듯 했으나.


초기 재벌들은 광복과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우리 나라에서 노다지를 캔 사람들이었습니다. 철이 부족한 일본에 고철을 팔아먹을 아이디어를 낸 삼성물산의 이병철 회장이나 남들이 못하겠다는 다리 건설을 자청한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돈버는 방법과 요령을 잘 알았죠. 그들의 그런 노력을 비난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워낙 우리 나라가 가난하고 힘든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그런 식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을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어디서든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하는 건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장태주가 극중에서 언급한 것처럼 90년대 신도시 개발과 97년 IMF, 기업통폐합과 구조조정, 벤처 투자 열풍, 부동산투기 등 요즘은 남의 돈에서 '노다지'를 찾는 시대가 되었고 이제는 그 마저도 힘들어졌습니다. 장태주의 결혼은 국내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셈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무시했지만, 혈연으로 이어진 성진그룹 가족들 사이엔 장태주와 똑같은 선택을 한 인물이 한 사람 더 있었죠. 바로 최정윤(손동미)의 남편 손동휘(정욱)입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정윤의 남편이나 그에게도 성진그룹에 대한 야심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장태주 만큼 가난한 집 출신인 검사 손동휘는 최민재와 최서윤의 치열한 경쟁에서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처지였습니다. 아내 정윤은 서윤과 민재를 잘 알기에 골프장이 아닌 백화점 하나에 만족할지 몰라도 손동휘의 야망은 성진자동차와 성진화학까지 얻어내는 것입니다. 장태주와 야망이 맞는 손동휘가 언제든지 장태주의 손을 잡으리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장태주의 예상대로 한정희는 장태주가 살인죄로 구속될 것같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민재를 회장으로 앉히겠다는 말도 손동휘에게 회사를 주겠다는 말도 모두 번복한 것입니다.

그 누구 보다 장태주의 입장을 잘 아는 손동휘. 재벌 혈연인 최민재 보다는 장태주와 한편인 것이 낫다.


장태주는 언제든지 살인 혐의로 장태주의 뒷통수를 칠 수 있는 최서윤이나 최민재를 막기 위해서도 윤설희를 김광세(이원재) 의원의 살인자로 만들 이유가 있었습니다. 손동휘는 장태주의 살인 혐의도 깔끔하게 세탁해주었습니다. 장태주를 구하기 위해 최서윤이 최성재(이현진)까지 엮어넣은 마당이니 한정희와 최민재의 연합은 다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일로 가족들 만으로 이루어진 '재벌'가에서 가족 취급을 받지 못하던 손동휘와 장태주가 한자리 차지하고 들어갈 이유도 만들어진 셈이죠.

우리 나라의 독특한 기업 형태 덕분에 기업드라마를 만들자면 어쩔 수 없이 재벌 가족 이야기가 섞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재벌가의 기업 드라마가 가족들 간의 반목,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장태주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최서윤의 가족들인 동시에 전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재벌입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 나라 경제사에 맞춰진 이야기 흐름이 긴박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기업 드라마가 가족 이야기로 변질될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은 역시나 볼 때 마다 씁쓸한 느낌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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