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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터, 생뚱맞은 늑대소녀 에피소드와 공존의 중요성

Shain 2013. 8. 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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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닥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제 방송된 '늑대소녀' 에피소드가 너무 쌩둥맞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더군요. 서번트 증후군 증세를 보이던 박시온(주원)이 병원 생활에 적응하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대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는 흥미가 가지만 도대체 늑대소녀 에피소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는 저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긴 했습니다. 그런데 소아외과에서 한번쯤 볼 법한 아동학대의 피해자이자 어릴 때 방치되어 언어배울 시기도 사회성 학습 시기도 놓친 아이가 실제로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다음 주가 되어야 '늑대소녀'와 박시온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서번트 증후군 레지던트를 내세운 '굿닥터'는 왜 늑대소녀 에피소드를 끌고 왔을까.


한편 왜 유독 박시온에게 냉정하냐는 차윤서(문채원)의 질타에 김도한(주상욱) 교수는 자신의 동생 수한이 '정신지체'였다고 고백합니다. 부모님들의 관심으로 증세가 호전되어 혼자 등교를 시켰는데 동생은 길에서 겁에 질려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도한은 어설프게 동생을 내보낸게 더 위험하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아무리 사회적응 훈련을 마치고 사회성 훈련에 성공해도 지적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하는게 최선이었다는 말 공감이 가더군요. 장애인을 보호하고 싶은 가족의 마음이 그럴 것입니다.


이 드라마 '굿닥터'는 자폐성장애 즉 서번트 증후군 증상의 박시온을 통해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증을 연기하는 주원의 연기 즉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위축된 자세로 걷거나 단조로운 말투같은 것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직접 자폐증 환자를 본 사람들은 저 정도면 의사는 커녕 다른 사회활동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또 실제 의사가 된 서번트 증후군 천재가 있긴한데 외과의는 아닐 거란 말도 하더군요. 대개는 서번트 증후군은 뇌의 발달이 비대칭적이라 예술쪽 천재는 많지만 의학 쪽은 드문 중에서도 드문 경우입니다.

혼자 등교하다 죽어버린 김도한의 동생. 김도한의 박시온을 향한 마음은 형의 마음이었다.


거기다 김도한이 쓰고 있는 '정신지체' 혹은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는 2007년 장애인복지법으로 인해 '지적장애'로 변경된지 오래입니다. 아무래도 흥미위주로 드라마틱한 설정에 신경쓰다 보니 세세한 부분을 신경쓰지 못하고 캐릭터를 과장되게 꾸민게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한가지 부분 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더군요. 박시온을 병원에 두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 말입니다. 김도한의 동생 김수한은 혼자 학교에 가다 사고를 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영원히 사회와 격리할 수 만은 없습니다.

박시온은 늑대소녀에게 개처럼 꼬리를 치기도 하고 앞발(?)을 내밀고 개밥처럼 음식을 주는 등 대화를 시도합니다. 늑대소녀는 소위 말하는 '사회성'이 전무한 상태로 깔끔하게 식사를 하고 깨끗하게 옷을 입어야하는 문명인의 눈높이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박시온에게는 조용하고 희한하게도 병원의 아이들이 만져도 가만히 있는 등 순한 모습을 보여주지요. 사회의 배려가 박시온이나 김수한 늑대소녀의 눈높이에서 이루어져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시온은 늑대소녀 뿐만 아니라 엄마도 알아듣지 못하는 예은(이장경)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아이들과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박시온과 늑대소녀.


소아외과 아이들의 부모와 의사들은 박시온을 불편해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하기에 사회에 혼자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지 않은 아이들과 학교를 다닌 경우 사회 적응을 쉽게 하는 장애인들도 많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리가 불편한 한 장애인을 백발의 어머니가 휠체어를 밀어 학교에 다녔단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죠. 당시 어머니의 도움을 다니던 그 학생은 조교 보다도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같이 입학한 학생들이 어려워했습니다. 반말은 커녕 편하게 대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나이만 많았지 한번도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본 적없는 그 학생은 한참 어린 입학동기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이 스무살이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동기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잘 봐달라 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잘해주는 방법은 그냥 마음에 없는 말로 맞춰주는 정도더라고 합니다. 어울린다는 말과는 차이가 있었던거죠. 그 학생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다 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대개의 학생들은 입시위주의 학교에서 몸이 불편한 친구를 보지 못했고 장애가 있는 쪽에서도 사회생활이 불편해 다른 사람과 맞춰본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늑대소녀' 에피소드는 아동학대나 장애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기 위해서라기 보다 화제성을 의식해 지나치게 과장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동물처럼 외딴 방에 가둬서 길렀다는 잔인한 뉴스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언어와 사회성을 배울 시기를 놓쳐 동물같은 상태였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처럼 야생이 발달한 아이와 박시온을 연결시킬게 아니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와 박시온을 대입시켰다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은데 꼼꼼하지 못한 디테일 만큼이나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네요.

지나치게 화제성을 의식한 에피소드는 아쉽지만 '의사소통'과 '공존'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늑대소녀 역할을 맡은 어린 연기자가 꽤 고생했을거 같았습니다. 김도한처럼 밖으로 장애가 있는 가족을 내보냈다가 상처받은 사람들은 격리와 보호가 최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차윤서나 최원장(천호진)처럼 그들도 사회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제 3자들은 아무리 나쁜 마음이 없더라도 늑대소녀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 의사들이 힘들어하는 것처럼 박시온과 대화하는 방법도 소통하는 방법도 모르고 불편해할 수 밖에 없겠죠. 격리도 답이 아니지만 무조건 섞이는 것도 때로는 정답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늑대소녀'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와 동생을 혼자 학교에 보낸 김도한의 후회를 함께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유사자폐의 일종인 반응성 애착장애를 보이는 늑대소녀처럼 의사소통이 안되고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박시온. 처음에는 힘들고 불편해도 같이 살아간다면 도무지 가늠이 안되는 아이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서로 맞춰주면 익숙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마지막회에는 병원에 있는 모두가 박시온의 방식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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