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맥도날드 할머니의 죽음과 TV 속에 방치된 타인의 삶

Shain 2013. 10. 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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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예능의 주된 테마가 되더니 요즘은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예능이 점점 더 늘어나나 봅니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모여 데이트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화성인'이나 '안녕하세요'처럼 남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일반인들을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비록 취향이 아니라서 보지는 못해도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의 사연을 볼 때 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싶어서 짜증도 나고 과연 어디까지를 인간의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받아줘야하는 것인지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의 순기능은 119구조대원의 생생한 일상을 담았다는 것.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사연은 분명 TV라는 매체의 특징상 과장되게 꾸며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조작 논란이 매번 불거지는 걸로 봐선 시청자들도 그들의 사연 모두를 믿지는 않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름'을 굳이 TV에서 보여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엔 이런 저런 사람이 있다는 취지에서 선정된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몇몇 출연자들은 비난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 TV 앞에 세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입니다.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여동생 집착남'같은 출연자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119 구조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심장이 뛴다'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고독사한 노인을 보여줬다고 하더군요. 이 프로그램의 순기능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현장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활약하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프로그램을 보진 못했지만) 고독사한 노인도 그 과정에서 등장한, 숙연한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고 애써 생각을 해봅니다만 자신과 세상의 마지막 만남을 TV로 중계당한 노인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더군다나 그런 연출 방식이었다니).

고독사한 노인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자 살면 다 저렇게 된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 장면 촬영은 충분히 모자이크처리가 되었고 또 방송에 유가족들의 허락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죽음을 예능에 끌어들였냐 안 끌어들였냐가 문제가 아니라 망자의 허락없이 죽음을 대중들에게 보여줬다는 부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혼자가 되어 죽음을 수습해줄 가족 조차 없는 사람들은 내가 시신으로 발견되더라도 촬영하거나 TV 중계하지말라고 유언장이라도 남겨야하는 걸까요. 고인이 된 본인의 의중을 묻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고독사 만큼이나 서글픈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TV 속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TV 안으로 옮겨진,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삶, 수많은 '타인의 삶'을 보면서 때로는 같이 슬퍼하고 때로는 같이 웃기도 하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이래서 좋구나 느꼈던 적도 있습니다. 남겨질 아이들의 생계를 걱정하는 시한부 엄마의 눈물도 대가족으로 힘들어하는 한 집안의 이야기도 공감하며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따뜻하고 온화했던 타인의 삶이 화제거리처럼 변질되고 출연자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시선도 함께 사라져

가더군요.

 

 

 

 

 

 

 

 

 

대중은 맥도날드 할머니를 비난할 권리가 있나?

 

어제 우연찮게 '맥도날드 할머니 사망'이라는 검색어를 클릭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뉴스나 TV 프로그램같은 곳에서만 접한 분이라 친밀감은 느낀 적은 없지만 돌아가섰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정말 돌아가신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냥 루머에 불과한지 해당 링크를 확인해봤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홈페이지에 무연고 사망자를 고시하는 공간이 있는데 지난 여름 사망한 그 분의 본명과 몇가지 인적사항이 올라 있더군요. TV에서 밝힌 정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본인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도 곧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겠죠).

한번도 만난적 없는 분이기에 또 개인적인 인연도 없는 분이기에 할머니의 죽음이 너무 슬프다거나 눈물이 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거짓말이겠지요. TV 속에 출연한 사람들과 현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얇은 브라운관 보다 훨씬 더 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특성상 시청자들은 TV 속 타인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느새 범죄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일반인들이 안타까움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느끼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갑작스럽게 읽게 된 맥도날드 할머니의 사망 소식.

 

현대사회의 그 흔한 개인주의가 맥도날드 할머니같은 TV 출연자들을 비난할 때는 증발한다는게 씁쓸 하더군요. TV에서 보여준 할머니의 삶을 두고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느니 된장녀의 말로라느니 결혼 안하면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온갖 비난을 퍼붓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가끔 할머니가 (엘리트) 여성혐오주의자들의 샌드백이 된 것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열변을 토하는 분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또 할머니와 전혀 상관없는 루머가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웹사이트는 버젓이 할머니에 대한 루머를 백과사전식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몇몇 '일반인 출연자'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리얼리티만 노리는 특이한 성격도 있고 방송분량을 뽑고 싶어하는 프로그램 PD의 연출을 그대로 따르는 출연자들도 있겠죠. 성형수술 30번 40번 했다는 출연자나 여동생에게 집착한다는 오빠를 보고 불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맥도날드 할머니'처럼 철저히 약자인 한 사람을 두고 기껏 할 수 있는 말이 '된장녀' 뿐이었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언제부터 TV가 한 개인의 인생을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곳이 되었나요?

'맥도날드 할머니'의 인생은 철저히 할머니 자신의 것입니다. '심장이 뛴다'에 등장한 고독사한 그 분처럼 '맥도날드 할머니'를 두고 떠드는 세상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단지 TV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감당해야할까요? 잘못 살지 않으면 지적당할 일도 없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반응을 보일 분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잘못 살았다 잘 살았다는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범죄가 아닌 이상 남들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할머니를 비난하는 쪽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었죠(인증 사건 같은 것).

 

우리 언론은 힘없는 한 할머니의 문제를 왜 가십처럼 다뤘던 것일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윤정 가족사를 공개하는 연예인 가십도 지겨운 마당에 일반인인 할머니를 두고 가정사가 어땠느니 직업이 뭐였느니 가십을 양산하는 언론은 직무유기를 한 셈입니다. 최근 '맥도날드 할머니' 만큼이나 언론에 오르내렸던 '중광할머니'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학력 독거노인들의 비참한 삶은 더이상 한 개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사회문제 입니다. 평범하게 늙어가도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는데 사회문제를 지적하기 보다 비난을 위한 먹이감을 던져준 언론에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시청자들 역시 TV 안에서 손가락질 받고 있는 일반인들의 삶이 넓은 의미에선 평범한 우리 삶의 한 단면이란 걸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지하철남, XX녀같은 검색어가 인터넷에 퍼져나가고 타인의 삶과 죽음이 구경거리가 되는 분위기가 퍼져나갈수록 삶의 가치는 점점 더 하찮게 취급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TV 속 타인의 삶이 바로 우리 모습이고 우리 이웃의 모습이죠. TV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맥도날드 할머니로 불렸던 그 출연이 어쩌면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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