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BC 드라마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제작 비용은 싸게 논란은 크게'인 듯합니다. 대표적으로 '오로라공주'는 출연료나 세트비용이 많이 든 것같지 않지만 늘 시끄럽고 시청률도 그만큼 높습니다. 나머지는 대작이라 할만한 드라마가 없습니다. 장편 '기황후'도 중국에서 촬영된 초반 분량을 제외하면 국내 촬영이고 벌써부터 MBC 사극의 고질병인 동네 운동회 전투신이 놀림거리가 되고 있죠. 게다가 2013년에 제작된 MBC 의학드라마는 '메디컬탑팀'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게 없습니다. 막장 드라마에 총력을 기울이느냐 의학 드라마(이하 '의드')를 방송하는 모험은 하고 싶지 않나 봅니다.
의드는 사극 만큼 시청률을 확보하기 좋은 장르지만 '병원에서 연애질'만 하면 질타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이미 미국 의드로 보는 눈을 높인 시청자들은 인기 미드 '하우스'나 'E.R', '그레이 아나토미' 등과 한국 의드를 비교하며 드라마의 품질을 평가합니다. '메디컬 탑팀'은 그런 의드에 대한 생각을 많이 의식하고 만들어진 느낌이 들죠. 특히 복잡한 로맨스와 갈등을 그린 '프라이빗 프랙티스'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의학적 상황 보다 네 명의 의사들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랑과 고뇌를 훨씬 중요시 한다는 뜻입니다.
몇년전 한국에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 열풍이 불면서 한국 드라마(이하 '한드') 제작 풍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드라마는 공중파 방송의 전유물이라 드라마 홍보용 포스터 촬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 케이블, 종편도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드도 미드처럼 광고용 포스터가 상식이 되었습니다. 미드가 많이 수입된 만큼 한드 수출량도 늘어나 포스터는 필수가 되고 최근에는 드라마 캐릭터의 프로모 픽쳐(Promo Picture), 스틸컷도 촬영 하더군요. 언론에 홍보용으로 배포하는 풍경까지 유사해졌습니다.
몇몇 프로모션 사진이나 포스터를 보면 과거 인기 미드 포스터를 모방한 것같은 사진들도 많습니다. 어떤 드라마 포스터는 몇년전 미국 The CW 채널에서 이용했던 드라마 포스터 형태를 거의 그대로 이용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미드'를 의식하고 그 장점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해도 '미드'같은 한국드라마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 입니다. 드라마가 한 나라의 문화를 담은 매체이고 보면 무조건 미드 취향을 따라가고 만든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죠.
'골든타임(2012)'은 환자에 집중하는 미국식 의드와 한국의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는 배경, 미국 미드처럼 캐릭터가 독특한 의사가 잘 어우러진 의드입니다. 미국 의드가 캐릭터면 캐릭터 상황이면 상황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골든타임'은 70분이라는 긴 한드 방송시간에 맞춰 미드 보다 많은 내용을 다룹니다. 또 한국 의드의 특징답게 환자 밖에 모르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걸 희생하는, 성인같은 의사가 존중받고 인기를 끌죠. 한국 드라마는 주인공이 착하지 않으면 호응을 얻기 힘든 경향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최고의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KBS에서 얼마전 종영된 어떤 면에서 '굿닥터'는 '하우스'같은 캐릭터 미드의 변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굿닥터'는 주인공 박시온(주원)을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의사로 설정했지만 '시온'은 한가지 일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너드와도 비슷합니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집중해 각종 문제 상황을 발생시키는 주인공과 그의 주변사람들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판타지입니다. 적당히 의학적 상황을 섞어두면서도 '선함'을 강조하는 구조가 한국형 의학 드라마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죠.
'메디컬탑팀'은 의학드라마로서 독특한 메인 캐릭터를 중시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응급실 환자 이야기를 긴박하게 다루는 'E.R'같은 드라마도 아닙니다. 또 시청자들이 비꼬기 좋아하는, '의학드라마를 가장한 흔한 치정극'과는 또 다릅니다. '하얀거탑(2007)'처럼 의사의 야망과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대립을 묘사하는 드라마도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주제를 이것저것 한가지씩 발을 걸친 이 드라마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을 굳이 꼽자면 젋은 의사들이 성장하기 위해 겪는 갈등과 인간적인 고민이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실력도 있고 성공하고 싶은 야망도 있는 서주영(정려원)은 병원 권력자인 부원장 신혜수(김영애), 장용섭(안내상) 사이에서 치이면서도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재벌 회장의 사생아라는 약점이 있는 한승재(주지훈)는 어떻게든 병원내 최고 실력자가 되기 위해 신혜수와 대립하지만 자신이 의사라는 점이 발목을 잡습니다. 전공의 최아진(오연서)은 의사가 된다는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사랑에 빠지면서 고민을 시작합니다. 고아 출신 박태신(권상우)는 어째서인지 확실치 않은 이유로 성공 보다는 환자를 중요하게 여기며 한승재, 서주영과 대립 합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메디컬 탑팀'의 이야기는 각종 의학적 상황에서 네 사람의 캐릭터가 부딪히는 내용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행동하는 동기와 목적이 불분명한데 갈등만 하고 있어서 공감하기 쉬운 내용은 아닙 니다. 한승재, 서주영, 박태신이 의사로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뭔가 애매모호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죠. 솔직히 말하면 인기 의학 드라마의 장점들만 하나둘 섞다 보니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언지 제작진 스스로도 잊어버린 것 같단 느낌이 강합니다.
권상우와 정려원이 의사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메디컬 탑팀'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비용에 상관없이 최고의 진료를 하기 위한 팀인지 아니면 병원의 수익과 이익증진을 위해 돈되고 홍보되는 치료를 하는 팀인지 싸우다가 벌써 14회까지 방송되어 버렸습니다. 부원장 신혜수와 한승재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고 왜 '메디컬탑팀' 의사들에게 동조해야하는지 보여주고 표현하지 않아 더욱 답답한 대립 이죠. 계속해서 정체성이 겉돌고 있습니다.
의미없는 권력 싸움을 보여주려고 그 많은 환자와 병원이라는 엄청난 무대를 동원한걸까. 2013년 하반기 유일한 의드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MBC '골든타임'의 호평은 MBC 조차 기대하지 못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골든타임'으로 인해 한국 의드도 발전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던 팬들이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KBS는 '굿닥터'가 새로운 스타일의 의드로 평가받았으니 하나는 건진 셈인 반면 MBC는 '메디컬탑팀'의 부진으로 2013년은 의학 드라마의 발전이 정체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한국 의드가 진화하고 있고 '메디컬탑팀'이 그 중간 과정에 있다는 점입니다. 의학 미드가 한드에 비해 월등했던 부분은 급박한 의학 드라마 특유의 장르 특성을 살린 것, 드라마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의사 캐릭터를 만들어낸 점 등입니다. 병원 안에서 의사들이 사랑타랑만 하던 의학드라마가 '프라이빗 프랙티스'같은 닥터 멜로물이 되든 괴짜 캐릭터 미드가 되든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하다 보면 한국에 가장 잘 맞는 의학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날이 오겠죠. 지금으로선 MBC가 그런 실험적인 시도에 공을 들일 것같진 않습니다만 언.젠.가.는 '골든타임'같은 의외의 명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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