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이인임에 휘둘리는 최영 자신을 경계하는 이성계

Shain 2014. 2. 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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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최영은 '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라 불릴 만큼 왜구들이 두려워하는 장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고려 말기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어떤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최영에 대한 묘사가 달라지곤 합니다. '정도전'의 최영(서인석)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공민왕(김명수)이 죽음에 백발을 휘날리며 개경으로 달려온 최영은 궁의 안전을 걱정해 무장한채 어린 우왕(정윤석) 앞에 나타납니다. 그의 충심과 진심은 절대 그릇된 것이 없지만 우왕은 부월을 휘두르는 최영에게 겁먹어 오줌을 싸고 간신 이인임(박영규)은 최영을 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싸움은 엉덩이가 무거운 쪽이 이깁니다' 전투에 대해선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이성계. 최영과의 차이는?

문무를 겸비한 완벽한 영웅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영 장군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아무리 최영이 정치인이 아닌 무장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더라도 이인임에 휘둘리는 최영에게 다소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원과 명나라가 갈등해야 고려에게 이롭다는 이인임의 말에 긍정하는 최영은 귀가 얇아 보이기도 하고 문관들에게 휘둘리는 무지한 무관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도전' 5화에서 정몽주(임호)의 스승인 이색(박지일)은 그런 점 때문에 정몽주를 나무랍니다. 

 

최영은 본인의 말대로 정치에는 서툴지만 민심을 장악하고 있는 영웅입니다. 고려 백성이라면 그 누구라도 최영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색은 '너희가 북원과의 화친을 막으려 했다면 이인임 보다 먼저 최영을 잡았어야 했다'며 정몽주와 신진사대부들이 이인임의 상대가 못된다고 합니다. 이인임은 최영을 경계하면서도 고려의 국방을 위해 가까이 둡니다.왜구나 오랑캐가 나타났을 때 정치적 잇속과 상관없이 가장 좋은 전략을 생각해낼 장군이 최영이고 몸소 뛰쳐나갈 장군도 바로 최영입니다.

 

 

 

 

이런 면모 때문에 최영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신진사대부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죠. 이인임의 칼이 되어 젊은 정치인을 위협하는 최영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나마 최영이나 되니까 이 정도나 버티는거지 다른 장수들은 임견미(정호근)처럼 이인임의 개 노릇이나 하는게 신상에 이로웠을 것입니다. 정도전은 이인임에게 도전했다가 처참한 백성들의 삶을 몸소 느끼게 됩니다. 정도전의 식솔들은 누더기 옷을 입고 정도전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정도전 역시 백성들과 함께 도둑질을 하다 노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인임은 정적 정몽주에게 이성계를 감시하게 할 정도로 노련하고 최영은 이인임의 칼 노릇을 한다.

노련한 정치인 이인임은 젊은 이성계(유동근)의 싹수도 한눈에 알아봅니다. 이성계가 뇌물을 가져다 주는 경처 강씨(이일화)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기를 쓰는 사람이었다면 다루기도 쉬웠을텐데 전장에서의 명성과는 달리 진심으로 백성을 걱정하는 모습에 이인임은 이성계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젊은 사자임을 알아봅니다 이인임 앞에 쉽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장군은 함부로 쥘 수 없는 칼 이며 아무 권력에나 복종하지 않는 영웅입니다. 왜구가 다시 침략할 것이라는 이성계에게 이인임은 '지금 고려에 왜구는 없다'며 눌러보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젊은 정도전과 정몽주는 자신들이 이인임에 맞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이인임에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신진사대부는 정치적으로 노련하지 못하고 그만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구를 섬멸하려 이성계를 부르면 안되겠냐는 젊은 우왕(박진우)을 눈빛으로 제압하는 권력자 이인임은 인상 한번 변하지 않고도 한발 앞서 상대를 밟아버릴줄 압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그에 맞춰 질질 끌려다닐 뿐이죠. 반면 이성계는 반발할 때는 반발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고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꿈 때문이죠.

이인임에게 맞선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휘둘리기만 한 정몽주, 정도전.

신궁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놀라운 활쏨씨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우전 20발과 유엽전 50발을 쏘아 왜구를 즉살시켰다는 이성계의 영웅담 은 다소 과장되어 있을 수는 있지만 탁월한 무예를 지녔음은 확실합니다. 정도전의 유배지에서 보여준 양지(강예솔)와 황연(이대로)의 고통에서 알 수 있듯 당시 비참한 생활을 하던 고려 말의 백성들이 왜구를 무찌르는 장수를 존경하고 우러러봤으리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죠. 이성계는 최영과 비슷한 젊은 영웅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실제로 조금 달랐습니다.

드라마 속 이성계의 경처 강씨는 이성계가 정치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지만 이성계는 단호하게 '정치가 두려운게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임금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무학대사(박병호)의 말을 곱씹고 있는 이성계는 '정치를 하는 내가 두렵다'고 덧붙입니다  좋게 말하면 한 나라를 세울 운명이란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려의 반역자가 될 운명이란 뜻인데 정몽주에게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라고 조언한 이성계는 자신이 가볍게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운명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도 내가 무서워' 뭐 이런 말이죠.

정치하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성계. '나도 내가 무서워'. 최영처럼 백성의 존경을 받는 전장의 영웅이다.

이성계 캐릭터가 최영, 정도전, 정몽주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도 이것입니다. 앞으로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합세하면 더욱 더 큰 차이가 생기겠지요. 변방의 장군인 이성계는 고려의 중심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인물입니다. 이인임이 고려의 위에서 아래를 한눈에 들여다 본다면 이성계는 고려의 주변에서 고려를 지켜보는 관점인 셈이죠. 아지발도(서건우)의 침략에 황산대첩을 준비하는 이성계는 침착하게 주변의 지형과 적들의 속셈을 따져보며 전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한 나라를 세울 왕과 책사의 만남이란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아직까지는 서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도전은 지략이 있으되 신중함과 안목이 없고 이성계는 신중하지만 정치판을 뚫고 나갈 지략이 없습 니다. 정도전이 유배갈 때 마주쳤던 두 사람은 왜구의 침입으로 한번 더 만났지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같은데 얼핏 보면 마치 물과 불처럼 섞이기 힘든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갈등할지 궁금하군요. 똑같은 역사서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이렇게 참신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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