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이후, 왕가엔 후궁을 두어도 세자가 탄생하지 않는다는 저주가 있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부인과 함께 억울하게 사사된 이후 왕조의 후계자는 정비에게서 거의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저주도 저주지만 드라마 이산에서도 묘사되듯 조선 왕조의 중전들은 정략적으로 결정되었고 왕위를 잇는 일도 순탄치 않았다. 왕이 백년가약을 맺어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보면 된다. 정치적으로 멀리해야할 아내가 있는가 하면 사랑했기에 수명이 짧아진 연인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왕의 사랑을 받아 간택당하는 후궁들이 자주 등장한다. 조선왕조 최고의 바람둥이일 지도 모르는 성종 임금을 묘사한 드라마, '왕과나'에서도 그 풍경은 여전하다. 그러나 자칫 여인들의 싸움으로 보이는 이 후궁의 다툼에 권력관계가 작용한다는 점을 이제는 알고 있다. 후궁도 정략적으로 간택되는 마당에 왕들이 순수한 사랑을 하고 편안한 인연을 맺기란 정말 힘들었다. 또 왕의 사랑을 받았어도 신분이 낮으면 중전이 될 수 없다. 과연 그들의 미묘한 관계는 어떻게 왕가를 뒤집어 놓았을까?
이전 왕들에 비해 후궁을 그리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정조는 후사를 낳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효의왕후를 두고 후궁을 얻었다(정순왕후가 간택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후궁들이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수빈 박씨이다. 중전은 원래 정치적으로 선택된다고 치지만, 원하는대로 얻어야할 후궁 조차 일종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정조는 사랑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인물인가 보다.
원래 화빈 윤씨의 처소 나인으로 알려진 의빈 성씨는 유일하게 정조가 마음에 두고 직접 선택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보잘것 없는 집안에 정치와는 티끌 만큼의 인연도 없는, 의빈 성씨의 집안은 당연히 노론이 아니다. 효의왕후는 노론가의 인물이고 나머지 후궁은 간택 후궁이니 의빈 성씨의 등장이 반가울 리는 없었을 것이다. 정조의 상당한 애정을 받았다는 의빈 성씨는 문효세자와 옹주 하나를 낳고 또다른 왕손을 임신 중이었으나 문효세자가 죽은 얼마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MBC 홍국영) 정조와 친하게 지내며 가끔 개혁적 인물로 묘사되는 홍국영은 어린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원빈 홍씨)으로 밀어넣는다. 그 탓으로 혜경궁, 효의왕후와 완전히 척을 진다.
임신한 채로 죽었으니 왕손을 셋이나 잉태했던, 사랑받는 후궁 의빈 성씨는 노론의 손에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파에 강경한 왕인 정조의 후사가 자신들을 외척으로 두길 바랐던 노론들이 의빈 성씨와 그 자녀들을 죽이지 않았겠냐는 정황이 있다는 것(정순왕후는 의빈 성씨 사후 교지를 내린다고 한다). 노론은 결국 자신들의 뜻대로 정조가 선택한 사람이 아닌 권력이 선택한 후궁이 정조의 후사, 순조를 낳게 하는데 성공했다(후에 수빈 박씨의 집안은 안동김씨의 권세를 나누어 가지게 된다).
가끔 자신의 남편은 후궁을 하나도 두지 않았다며 시할머니(양주 조씨로 자의대비, 장렬왕후)를 약올렸다는 명성왕후. 그녀 이외에 후궁을 둔 적 없는 왕이 있긴 있다. 단종, 예종, 경종 등 후궁을 둘 새도 없이 일찍 죽었거나 후궁을 두기 보단 목숨잇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랄까. 경종 경우엔 후사를 둘 수 없는 몸이라는 약간은 악랄한 루머가 돌긴 했지만(장희빈이 경종이 후사를 둘 수 없도록 패악을 부렸다는 야사) '영조'를 밀고 있던 노론들 덕에 오히려 후사를 낳지 않는 쪽을 장려당한 셈이다.
(SBS 장희빈) 패악을 부리며 죽었다는 기록은 '정사'는 아니라고 한다. SBS의 장희빈은 가장 사랑에 목숨 건 장희빈이 아닐까 싶다. 반면 김혜수의 장희빈은 반면 야망과 사랑을 모두 거머쥐고 싶어한 여인.
이 괄괄한 명성왕후의 남편,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현종이 왕위에 있을 때, 남인과 서인은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엄청난 접전을 치른 바 있다. 대개는 왕이 중립을 지키며 싸움질을 두고 보지만, 그 과정 중 몇몇 당파는 사화를 거쳐 몰락하기도 했다. 숙종 초기엔 서인이 잠시 몰락하고, 남인이 득세하게 되었는데 명성왕후는 자신도 서인 집안의 딸이었고, 며느리도 서인 집안의 인현왕후 민씨를 들였다(덤으로 집안좋은 서인의 딸, 귀인 김씨도).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싸움이 그토록 치열해진 이유 중 하나는 장렬왕후와 장희빈의 남인, 명성왕후와 인현왕후의 서인이 벌이는 다툼이 목숨을 건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백년이 넘게 이어온 싸움이 '죽지 않고' 끝날 리 없었던 거다. 장희빈이 인경왕후 생시에 명성왕후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후궁을 두지 않은 현종은 사실 부인과 이 궁안의 다툼이 몹시 무서웠던 것 아닐까. 대를 이어 싸운 왕비들과 일개 후궁의 싸움은 장희빈의 사약으로 끝났다. 숙종은 결국 사랑을 했다기 보단 파벌 사이에서 시소놀이를 한 셈이다.
(SBS 장희빈) 덕이 높은 여인으로 칭송되는 인현왕후는 서인 출신으로 어릴 때 중전이 됐다. 숙종을 잡고자 꽤 노력했으나 사랑에 빠진 숙종에게 정치 논리를 내세우는 중전이 예뻐보일 리는 없었을 듯 하다.
숙종도 제법 여자를 가까이 한 타입이다. 다만 서인 측에서 보낸 여성들은 거의 상대하지 않았다고 할까. 숙빈 최씨도 후에 아들을 위해 서인을 따른다고 한다(원래 인현왕후전 궁인 출신, 영조는 귀인 김씨와도 매우 친하다). 숙종은 숙빈 이후에도 후궁을 더 두었다. 장희빈 사후까지 숙종의 칼을 피해 끝까지 살아남은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노론은 또 시파와 벽파로 나뉘어 왕가의 자손들을 저울질하게 된다. 숙종은 후궁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명을 내린 왕이다(장희빈 덕에 사화까지 치른 인간의 선택이니 당연하겠지만 이 제도에도 문제가 많았다).
선조에게는 빈으로 불리웠던 후궁만 6명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일찍 사망)과 양화당으로 유명한 인빈(무려 4남 5녀를 낳았다)은 거의 조강지처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는 의인왕후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공식적으론 후사 문제로). 특히 선조가 명종비에게 후궁으로 추천받았다는 양화당, 인빈 김씨는 의인왕후와 동갑이다. 성격이 온화하고 광해군과도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 인빈은 꽤 많은 후궁을 두었던 선조 임금의 인목왕후 간택으로 중전이 되지 못한다.
영조 임금 역시 조강지처인 정성왕후 서씨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서씨는 소론의 인물, 사도세자는 정성왕후를 따랐다고 한다) 대신 궁녀 출신인 정빈 이씨와 영빈 이씨(선희궁)를 총애하게 된다. 정빈과 영빈에게서 각각 세자 한 명씩을 얻었지만, 정빈의 아들은 일찍 죽고 영빈의 아들은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된다. 영빈은 거의 궁의 안살림을 알아서 했지만 궁녀 출신으로 신분이 낮은데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이 후궁을 중전으로 올리지 못하게 한 까닭에 정성왕후 사후에도 중전이 되지 못한다.
(MBC 홍국영) 영조가 중전을 멀리 하고 사랑한 두 후궁. 그 두 후궁이 낳은 아들은 모두 죽고 후궁을 닮은 옹주들은 영조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비상식적인 화완옹주의 권력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영빈 이씨, 숙의 문씨, 그리고 정순왕후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음모론은 유명하다. 선조의 나이어린 왕비 인목왕후, 영조의 나이어린 왕비 정순왕후. 두 사람은 왕의 정략적인 왕비인 것 이외에 '윗어른'이란 명분으로 정통 왕위 계승자들을 위협한 왕비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왕의 실질적인 '아내'들은 다 따로 있지만 정략 결혼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다고 할까. 두 왕후는 인조반정과 세도정치라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조선왕조에 악영향을 끼쳤다.
성종의 첫째 부인은 공혜왕후 한씨(한명회의 딸)이다. 성종은 정희왕후 윤씨와 한명회의 정치적 이익이 맞물려 형과 사촌형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왕이다.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후궁을 들였던 성종은 조선 왕조 최고의 바람둥이란 별명이 있다. 또 나이가 어리고 어머니와 할머니, 장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탓에 초기 왕권이 약했다. 부인 만 12명에 자식이 16남 12녀라는 성종은 비슷한 시기에 윤씨성을 가진 후궁을 둘 간택한다. 한명이 폐비 윤씨(제헌왕후)이고 또 다른 한명은 정현왕후 윤씨이다.
(SBS 왕과나) 정치적인 정희왕후와 폭빈이란 별명을 가졌던 인수대비. 궁내 권력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특정 권력이 지지하는 중전을 둘 수 없었던 성종. 폐비 윤씨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정희왕후는 자신의 집안인 후궁 윤씨를 중전으로 올리고 싶어한 것으로 보이나 친정조카뻘인 윤씨는 입궁 당시 12살 밖에 되지 않았다. 정희왕후나 인수대비의 합의에 어울리는 중전 후보지만 너무 어렸다. 폐비 윤씨는 임신을 한데다 양반 가문 출신으로 승은 후궁인 엄씨나 정씨(천민으로 알려짐) 보다 신분이 높았다. 또 두 대비에겐 외척이 강하지 않은 중전을 자리에 올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성종 임금도 왕권을 위해 특정 가문의 아내나 후궁을 총애하진 않았으리란 짐작이 가능하다. 자신의 바람기 떄문 만이 아니라 권력 집중 문제를 봐서도 그러하다.
정치적 이점이 맞아 떨어져 중전이 된 폐비 윤씨는 그 이후엔 인수대비와 정희왕후, 그리고 성종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과 성종을 모두 요리할 만한 재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왕비가 되기 위해 입궁한 정현왕후(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잘 알았던 것 같다)에게 중전 자리를 '물려주는' 신세가 되고 만다. 성종에겐 명빈 김씨와 숙의 홍씨란 후궁도 있는데 그다지 실록이나 성종의 스캔들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숙의 홍씨는 성종의 자녀를 10명이나 낳았다. 몹시 사랑받았지만 신분이 낮아 죽지도 않았고, 무탈하게 잘 살았다. 성종에게 가장 사랑받은 여인은 어쩌면 이 뒤에 숨은 후궁들이 아닐까.
그리 좋아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외척이 득시글거리는 꼴을 보기 싫다고 세종의 외척이 될만한 사람을 모두 죽여 버린다. 그 영향을 받아 세종이 '단종'의 후견인이 될만한 왕족을 아무도 세우지 않고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연산군 이후 외척의 발현 보다 더 무서운 건 왕을 갈아치우는 신하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대부와 왕권의 싸움이 시작된 것 아닐까.
(SBS 여인천하) 신씨를 쫓아낸 중종에게 8명의 후궁을 밀어넣는 것도 꽤 잔인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언제 내칠 지 모르는 공신의 딸들을 말이다. 창빈(추존)은 팔선녀로서 입궁한 후궁이 아니다.
드라마 '왕과 나'에서 곧 연산군이 폐위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정현왕후(자순대비)의 아들, 진성대군이 중종에 즉위할 것이다. 박원종을 비롯한 반정 세력들은 중종의 조강지처 신씨를 내치고 자신들의 딸들을 중종의 후궁으로 줄줄이 밀어넣는다. 이 정도 인원이면 적당히 잘 골라줬으니 우리 세력권 내에서 중전을 고르란 뜻이렸다. 그 인원이 여덟이나 되어 팔선녀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이 상황은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묘사된 적 있다). 자순대비는 중전이 됐을 떄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진 않아도 간단한 정치는 아는 여자였다.
(SBS 여인천하) 신분이 좋아 중전이 된 윤임의 누이, 장경왕후는 팔선녀 덕에 일찍 죽었다는 말이 있다. 집안세력이 약했던 문경왕후는 파워 게임 때문이라도 대비와 왕의 옹호를 받게 되는 셈이다.
자순대비는 그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로 인종을 낳은 파평 윤씨(자순대비도 파평 윤씨)가 죽자 두번째 계비 역시 파평 윤씨 집안에서 골랐다. 명종의 어머니인 그 유명한 문정왕후이다. 팔선녀의 집안이 워낙 쟁쟁한(경빈 박씨는 잘 알려졌듯 박원종의 양녀이고 희빈 홍씨는 홍경주의 딸) 것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집안의 어린 딸을 골랐다. 그러나 문정왕후 윤씨는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까지 동원해 정권을 잡았다.
그 살벌한 궁궐 전쟁터에서 정권을 잡은 문정왕후도 대단하지만(문정왕후는 악행으로 더 유명하지만, 왕권 VS 신권의 부분에선 승자가 아닌가 싶다) 권력 싸움 틈에 사랑하던 경빈 등을 처벌했어야 했던 중종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파워풀한 군왕의 시대는 연산군 때 종료했던 게 아닐까. 드라마 '대장금'에서 중종의 사랑을 받아 첩지를 받은 것으로 묘사된 '숙원 이씨(연생이)'도 팔선녀로 입궁한 후궁이다. 아내를 내친 중종에겐 선녀들이 많아도 천국은 아니었던 셈이다.
참고 출처 :
네이버 뉴스 - [이한우의 조선이야기] 비극의 역사 왕좌를 빼앗긴 왕자들
네이버 백과사전 - 명성왕후 김씨
네이버 백과사전 - 장렬왕후 조씨
네이버 모자이크 - 왕의 후궁들
네이버 뉴스 - [포토]박은혜, "효의왕후로 돌아왔어요"
http://www.imbc.com/broad/tv/drama/isan/wallpaper/
http://www.imbc.com/broad/tv/drama/daejanggum/staff_note/index.html
SBS 왕과 나 - 포토갤러리
스타뉴스 - '연산군' 정태우, 카리스마 작렬
네이버 뉴스 - ‘이산’ 시청률 20%선 무너져… ‘왕과나’ 선두 유지
네이버 포토 앨범 - 홍국영
* 기억에 의존해 쓰다 보니 명칭 때문에 네이버를 자주 뒤지게 됩니다. 특히 존호를 '왕후'로 통일하려고 애쎴지만 생전에 쓰던 '대비' 존호를 섞어서 쓰게 되는군요(아무래도 살았을 적 일이니까). 참고로 명성왕후에게 헌렬대비란 존호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궁들의 첩지가 '명빈 김씨'로 표기됐더라도 후에 추존된 경우(숙종 시대의 귀인 김씨는 후에 영빈 김씨로 품계가 올라갔단 사실이 잘 안 알려져 있습니다)는 상당히 헷갈리더군요. 그리고 명성왕후 찾으면 명성황후로 검색 결과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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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좋아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외척이 득시글거리는 꼴을 보기 싫다고 세종의 외척이 될만한 사람을 모두 죽여 버린다. 그 영향을 받아 세종이 '단종'의 후견인이 될만한 왕족을 아무도 세우지 않고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연산군 이후 외척의 발현 보다 더 무서운 건 왕을 갈아치우는 신하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대부와 왕권의 싸움이 시작된 것 아닐까.
2008/03/13 17:05이방원인데 제목이..
엇 정말 틀렸군요. 무슨 생각을 하다가 저 드라마 제목을 바꿔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왕 세종' 내지는 '용의 눈물' 이라는 드라마 제목에서 헷갈린 거 같군요 ^^
2008/03/13 17:24태종 이방원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도 태조 왕건은 정말 엉뚱하네요 푸하하..
지적 고맙습니다 아르비드님 ^^
수정했습니다~
글 재밌게 봤습니다~
2008/03/13 19:47역시 권력의 뒤에는 여인들의 암투가....우리나라 드라마계의 마르지 않는 떡밥을;;;;
정말 역사 없었음 심심해서 어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극의 소재는 사골처럼 우려내고 또 우려내는데 볼게 있단 말이지요..ㅎㅎ
왕의 여인들의 이야기 재밌네요...
지성이 광해군으로 나오는 드라마에서, 양화당 김귀인은 상당히 표독스럽고 왕위에 욕심이 많은 후궁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는 인빈으로 품계가 오르고 광해군과 사이가 좋았군요....
인목대비나 정순왕후나 명성왕후 윤씨의 경우는 어린 새중전이 어떠한 풍파를 가지고 오는지
잘 보여주는 케이스 같아요..ㅡㅡ;
사실은 총명하고 세자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던 광해군도;;;
어린 인목대비의 대군생산과 함께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은 모양이니..ㅡㅡ;
암튼 조선왕조 500년 무수한 사골.... 전 계속 즐기렵니다~ㅎㅎ
(근데 왕과 나는 막장으로 치닫고 이산도 요즘 요상하고 대왕세종은 이제 화제에도 오르지 않으니...
사극열풍 다 어디갔나 싶네요;;;)
사극은 역사적으로 뻔한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2008/03/14 06:34관점 만 바꾸어도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정말 사극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사극도 여러편인데 그걸 전부 다 보고 났더니 해석의 다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더군요.
인빈이 아무리 사랑받았다고 한들 전쟁터같은 궁궐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권력자와 척을 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죠. 안하무인은 어떤 경우에도 제재를 받게 되어 있으니 저도 사이가 좋았다는 기록이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광해군과 틀어진 건 세자 지목 당시 뿐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윗전의 역할을 항상 강조한 인목대비,정순왕후같은 사람들이 그 윗전으로서 못할 짓을 저지르는 걸 보면, 역시 부인은 권력같은 걸로 골라서는 안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죠(이런 면에선 왕들도 딱해요)
사극 열풍은 2008년 중기 쯤 되면 아마 대 접전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은 대왕세종, 이산 경우 고정팬으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2008년 중기 쯤 되면 ^^ 선덕여왕이나 바람의 나라가 새로 시작할 거 같거든요~
이 호칭 문제가 꽤 복잡하더라구요..ㅎㅎ
2008/03/14 00:20오랜만에 재밌는 포스팅 보고 갑니다..ㅎㅎ
정치적인 이유로 선택된 왕비들이라 권력 문제가 꽤나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왕이나 왕비나 안됐기는 마찬가지지만,,어쩐지 왕 편을 들어 주는 것은 역시 그쪽이 주류의 역사이기 때문일까요..ㅎㅎ
물론 왕비들의 권력이란 게 대체로는 자신의 집안을 위한 것이긴 합니다만..ㅎㅎ
존호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죠. 정순왕후도 그냥 대비여야 하지만 정조의 호의로 인해 왕대비란 호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중간에 추존왕인 장조가 있거든요.
2008/03/14 06:44사극이 원래 왕의 입장에서 쓰이는 것이지만 기록도 무시할 수가 없어 장희빈이 아름다워 골랐구나, 중종이 희빈을 몹시 사랑해 80평생 장수를 누렸다거나, 경빈이 죽을 때 눈물을 흘렸다라는 기록이 있곤 합니다만, 이 기록된 표면적인 역사 보다는 훨씬 더 생존 경쟁에 가까웠을 지도 모르겠네요 ^^
이런 정략적인 측면은 현대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인 걸로 봐서.. 확실히 별개의 인종들인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이치를 잘 모르는지도)
비밀댓글 입니다
2008/03/14 09:09역사상 의빈 성씨에 관심이 집중된 적이 거의 없답니다. 수빈 박씨가 순조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 세도 정치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거의 정비처럼 집중조명되지요. 후에 기록에 남는 것도 그쪽이구요. 말하자면 의빈 성씨는 정조에게 사랑받는 건 사실인지 몰라도 중요인물인 수빈 박씨가 등장하기도 이전에 죽은 인물이란 뜻이죠 ^^
2008/03/17 10:49(정조의 등극 기간이 짧은 걸 생각하면 의빈과의 사랑기간도 몹시 짧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첨언을 많이 해서 워낙 길긴 길군요. +_+;;
폐비윤씨는 왕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기 전엔 조선초기라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아니네.. 조선후기의 장희빈도 있었으니..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장희빈은 이미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여자였네요. 노론 등살에 뭘해도 쫓겨났을 것 같습니다. 망할 넘들.. 전 노론만 생각하면 혈압이 절로 오릅니다.... 미친 것들..... 부글부글..
2008/03/14 09:12어쨋든 폐비는 참 어리석다는 생각뿐이 안듭니다. 그 당시에도 권력 투쟁 때문에 발끝만 잘못 디디면 절벽이었겠지만.. 그녀의 폐위는 그녀 스스로 부른 책임도 크다는 게 제 생각이라서요.
권력의 정점에 올라가면 자신의 사랑 만으로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걸 알려준 사례가 유사이례로 계속 있었다고 하죠. 장희빈같은 경우엔 뭐 희빈이 사랑받지 않았더라도.. 우리 죽을떄까지 싸워보자 모드로 가기 딱 좋은 상태였고(명성왕후가 너무 강경한 까닭에 그 싸움이 더 치열해진 것도 있습니다 - 장렬왕후가 조사석을 내세운 것도 그 탓이죠) 폐비 윤씨는 그 싸움이 어찌 되어가는 지도 모르고 사랑 밖에 난 몰라를 외친 셈이죠 ^^
2008/03/17 18:37투기가 나빠서 하지 않는게 아니라.. 목숨 보전을 위해서 권력 조절을 위해서 하지 않는거란 사실을 몰랐다는게 맹점 아닌가 싶네요..
권력 싸움이 긍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목숨 걸고 내 의견을 설득한다는 측면도 있는데 부정한 형태로 발전한건 과거나 현재나 안타깝군요..
분명히 어떤 부분을 읽을 때는 아.. 여기에 대해서 댓글 써야지 했는데....
2008/03/14 09:14그 아래 다른 내용 읽으면서 다 까먹어 버렸습니다.ㅠ
이 글도 예전에 장희빈 & 튜더스 글처럼 생각날 때 다시 와서
조금 읽고 조금 읽고 그러면서 문단별 댓글을 달아야겠네요.ㅋㅋ
아.. 그런 면에서 레몬펜이 참 좋은데... 레몬펜 너무 불편해서 못쓰겠어요.
로딩이 자꾸 느려지니까 무서워서 켜지도 못하겠더라구요;;
제 티스토리 인터뷰글에는 레몬펜만 켜면 에러가 납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편인데 ^^
2008/03/17 10:55저도 어쩌다 보니까 이걸 하나하나 다 적고 앉았더라구요.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면 역시 길이가 어느 정도가 되는 지 잊어버립니다. 노트에서 옮겨 적을 땐 사실 이거보다 더 길었답니다 ^^;;;
레몬펜이 에러가 나신다구요..
저도 최근에 동영상이 많이 들어간 글은 버벅거리기 일수인데.. 혹시;; 로딩할 글이 많은 게 않을까 싶네요..;
아까워라 레몬펜..!
왕과 나, 찌질한 성종 말고는 모두 이미지가 너무나 예상 밖이라서... 폐비 윤씨를 똑똑하고 자기 주장 강한 걸로 그린 게 뜻밖이었어요. 어쩌면 약지 못해서 죽은 걸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정현왕후와 사이가 좋은 걸로 나온 것도 좀 웃겼어요. 피차 서로 싫어했을 것 같은데... 인자한 할머니로만 나온 정희왕후나, 내시의 이간질에 갈팡질팡하는 인수대비도요.
2008/03/15 02:06궁중 암투는 여자들 싸움처럼 그려지기도 하던데... 따지고 보면 정치적인 도구로 쓰이다 희생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냉정하게 여자 대 여자 개인들의 싸움인 경우는 거의 없고요.
제왕이 존재하던 시절에 중전에게 교육시키던 여러가지 규율은 매우 유용한 구석이 있었죠. 후궁을 왕비로 삼지 않는데는 출신이나 권력 문제도 있지만 이런 권력조율 문제를 연습해보지 못한 사람이란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궁에서 원만하게 생활한 후궁이나 왕비 중엔 궁에서 어릴 때부터 자리잡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2008/03/17 11:01윤씨는 못된 사람은 아니라도, 사랑받으면 모든 걸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뒤에 쟁쟁하게 버틴 권력들을 몰라본 건 실수라고 봐야겠네요. 엄밀히 우리 나라는 여성의 정치적 욕구를 궁에서 많이 해소했다고 봐야하는 나라고, 정희왕후, 인수대비, 정현왕후는 각자 자신이 파워를 잡을 날만 기다린 여우들이죠. 후후..
여성 대 여성의 개인적인 암투를 벌이기엔 궁궐은 상당히 목숨을 걸어야할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 잘못하면 쫓겨나는 직장을 생각하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