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우왕의 구비삼옹주와 몰락을 앞둔 정치인 이인임

Shain 2014. 3. 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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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는데 사냥개 이성계(유동근)를 훈육시키는 정도전(조재현)은 여기저기 빈틈을 치러 다니는 모양새입니다. 이성계가 '정전제'라는 수수께끼의 답을 풀기 위해 이지란(선동혁)과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 너무 웃겼지요. 맹자, 공자같은 건 잘 모르는 장군들의 대화는 수십년 경력 사극 배우의 관록이 느껴졌습니다. 무게감있는 진지한 사극에서 이런 코믹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토라진 이성계가 이지란에게 '너 이제 고만 고향 가라'고 할 때는 유동근의 의뭉스러움에 배꼽을 잡았네요. 물론 이성계가 이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고려는 점점 더 망조가 들고 있겠지요.

권력의 정점에서 노체를 앓게 된 이인임은 최영과 동반 퇴진하고. 명나라식으로 뒤바뀐 관복이 인상적.

 

왕의 부덕함은 왕위 찬탈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됩니다. 고려 우왕도 그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는데 조선은 우왕의 성을 왕씨가 아닌 신씨로 적으며 처음부터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인물이라 평가합니다. 덧붙여 우왕은 여색을 지나치게 밝혀 구비삼옹주(九妃三翁主) 즉 아홉명의 비와 세 명의 옹주를 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공민왕의 비이자 자신의 어머니뻘인 정비 안씨와도 불륜이란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대로 우왕(박진우)이 정비 안씨(김민주)에게 '나의 후궁들은 어찌 모씨(母氏)와 같은 이가 없는가'라며 희롱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물론 우왕의 부덕함이 아니라도 고려는 정도전의 표현대로 오백년묵은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우왕이 사람을 괴롭히고 다니는 망나니인게 다행이랄까요. 공민왕처럼 개혁적인 인물이라면 배신하는 쪽에서도 마음아팠을 것이나 지나치게 본능에 솔직한 우왕은 쓸데없는 희망고문을 시키진 않았습니다. 이인임(박영규), 우왕과 함께 몰락할 징조로 임견미(정호근), 염흥방(김민상)이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귀족인 조반(차기환)의 땅을 빼앗고 관원들이 쓴다는 수정목으로 두들겨 팬 가노 이광(이설구)의 횡포는

최영(서인석)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우왕도 미쳤는데 염흥방, 임견미 무리의 횡포도 극에 달했다. 텅텅 빈 국고와 피폐한 백성들.

 

때는 1387년, 고려의 관복이 명나라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관복도 관복이지만 사모뿔의 꼬리가 휘어진 것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더군요. 곧 우왕은 아홉명의 비와 세명의 첩을 둘 것이고(1388년) 이인임도 함께 몰락할 것입 니다. 고려는 본래 처를 하나만 두는 문화였지만 원나라의 영향으로 처를 여럿 두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물론 아무 부자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 경처, 향처를 둔 이성계도 보통 위치는 아니었겠죠. 우왕이 국고가 비었는데도 돈드는 정비를 아홉이나 두었다는 것은 망조도 보통 망조가 아닙니다.

우왕은 미치고 이인임은 병들고 그 와중에 이지란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이성계.

 

우왕의 아내들 중 궁중에 남는 인물은 극중에서 창왕(김준성)을 낳은 근비(서이안) 뿐입니다. 나머지는 우왕의 몰락과 함께 사가로 쫓겨났는데 그 중 한사람은 영비 최씨로 최영의 서녀입니다. 우왕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우왕의 시신을 돌본 사람이 바로 영비 최씨죠. 돌탑을 무너트리기는 쉬워도 다시 쌓기는 힘들다며 주저하던 이성계는 정도전의 조언대로 이인임의 인척이 되어 최영이 이인임을 제거할 계기를 만듭니다. 정치 따위는 모르는 강직한 무장 최영의 눈에도 우왕의 미친 짓과 이인임 무리의 횡포는 도저히 두고볼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이인임은 최영의 손에 무너질 것입니다.



 

 

 

간신 이인임이 말하는 '상생'의 정치론 - 브루트스 너마저!

 

간단하게 생각하면 정적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편리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만장일치 제도처럼 아무도 절대권력자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않아야 더 많이 차지할 수 있고 더 큰 권력을 누릴 수 있죠. 그런데 정인임은 정몽주(임호)는 사신으로 외국에 보내면서도 최영은 그냥 놔두라고 합니다. 임견미와 염흥방의 욕심은 이인임의 눈으로 보기에도 지나쳤습니다. '같은 귀족의 땅까지 빼앗는 것은 자충수'라는 이인임은 '굽힐 땐 굽히라'며 '정치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은 유연할수록 좋은 것'이라 충고합니다. 언제 봐도 이인임의 정치론은 평범한 사람들 보다 한수 위입니다.

'정적이 없는 권력은 고인 물과 같다'는 이인임의 정치론은 참으로 탁월한 식견 입니다. 정치의 기본이 상생(相生), 즉 함께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방과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한 이인임은 경쟁하지 않는 죽은 권력은 곧 무너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병에 걸려 도당의 권력을 놓으면 이인임 자신이 곧 위험해지는 것처럼 상생하는 자연의 이치가 곧 권력이라는 걸 알고 있을 만큼 뛰어난 인물입니다. 역시나 고려라는 썩은 나라에 가장 알맞은 정치인답습니다.

이인임의 간계에 말려 결국 우왕에게 하직인사를 하는 최영. 정도전의 계획대로 이인임을 친다고?

 

결과론적인 해석이긴 합니다만 '권세와 부귀 영화를 오래 누리고 싶다면 정적을 곁에 두라'는 정치관은 장기적으로도 이인임에게 도움이 된 전략입니다. 최영은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무능한 편이라 이인임의 칼 노릇을 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이성계는 정도전의 지략으로 이인임과 사돈이 되긴 하되 이인임의 하수인 노릇은 하지 않죠. 어린 우왕(정윤석)에게 부월을 들이민 최영의 강직함은 최영을 믿어준 명덕태후(이덕희)나 허수아비 정적을 전략적으로 세워둔 이인임이 아니었으면 금방 제거되고 말았을 것 입니다.

자신의 병 때문에 권력에서 물러난 이인임이 우왕과 함께 제거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이인임의 목숨만은 구해준 당사자가 바로 최영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자세한 묘사가 없으나 이조년의 후예로 명문 귀족이었던 이인임과 역시나 고려 명문 귀족이었던 최영은 둘 다 왕과 사돈을 맺은 인척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서로를 쉽게 도모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인임이 최영에게 무조건 적대적이었다면 몰락했을 때 바로 사형을 내렸겠죠. 하지만 최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인임을 몰락시킨 건 최영이나 최영은 이인임을 죽이진 않는다. 흥미로운 건 둘 모두를 배신하는 이성계?

 

이인임이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록을 읽어보면 탐욕에 물든 간신이긴 해도 누군가를 뿌리뽑을 목적으로 적대시한 것같진 않습니다. 현대 정치인들이 배워야할 노련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인임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경계해도 망해가는 나라의 마지막 혼돈을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최영과 손을 잡고 이인임을 처단하는 이성계를 상상하니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이 떠오르네요(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인임은 몰락하더라도 이인임이란 이름은 명나라 사서를 통해 끝까지 이성계를 괴롭힐 것이고 하륜(이광기)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정사를 바탕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나온다는게 흥미롭습니다. 이인임의 몰락 오늘밤 곧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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